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And fields of flowers grow

by Surf the world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과 크게 관련 없는 글입니다.


Coldplay - feelslikefallinginlove를 들으며 작성했습니다.



2017년 8주 차,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시험기간에 포항부터 서울까지 공연을 보러 갈 친구는 없었기에 학교 커뮤니티에 익명 오픈 톡방을 만들어 올렸다.

만나서 같이 점심 먹고 공연까지 기다릴 명목이었다.


오픈 톡방에 몇 사람이 모였고, 그중 한 명의 말투가 꼭 내가 아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2015년도, 학교에 입학하여 동아리 면접을 보던 나는 같이 면접 보던 사람에게 큰 호감을 느꼈다.


지금 말을 안 걸면 아쉬울 것 같아 면접이 끝나고 붙잡아 잠시 대화를 나누고 연락처를 얻어왔다. (편의를 위해 J라 부른다)


며칠 후 같이 밥을 먹었지만, 자신감이 넘쳐 보이던 J와 달리 나는 떨려 헛소리만 하다가 기숙사에 돌아왔다. 자신감이 없어서 였던 것 같다.

이 후 연락을 다시 하지 않았고, 동아리에도 떨어진 나는 길에서도 J를 마주칠 일이 없었다.

다만 페이스북에선가 J가 밴드 몽니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그때부터 밴드 몽니 노래를 듣기 시작하며 좋아하게 되었다.




오픈 톡방에서 공연 후 포항행 버스를 같이 탈 사람을 찾았다. 한 사람이 같이 탄다고 해서 누군지도 모른채 버스를 예약했다.


기다리던 공연 날이 되고, 잠실종합운동장에 오픈 톡방 사람들이 모였다. 몇 사람이 일정이 생겨, 날 포함하여 총 3명이 모였다.


처음본 사람, 그리고 J였다. J는 날 보고 약간 당황한 듯했다. 나는 첫 만남 때 마냥 엄청나게 떨렸지만, 그래도 콜드플레이에 대한 기대감 덕에 같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A Head Full of Dreams 공연은 기대 그 이상이었고, 행복한 기분으로 J와 같이 포항행 버스에 탔다. 꼭 영화 같았다. J와 나는 졸린 눈을 하고 첫 만남 때 이야기를 하고, 공연 이야기를 했으며, 몽니 이야기를 했다. J는 내가 몽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되자 아주 반가워했다.


그때부터 J와 나는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산책하고, 학과 공연을 보러 가고, 새벽에 몰래 동아리 동방에 불러 같이 놀고, 학교가 내려 보이던 언덕에 올라가 같이 기타를 쳤다. 밤에 돗자리와 편의점에서 산 과자를 챙겨 비밀 장소에 가서 같이 영화를 보고 새벽까지 꾸벅꾸벅 졸던 게 생각난다.




문제가 생겼다. 내가 너무 좋아하고 큰 은인이던 형이 J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그 형이 주변 모든 사람에게 이미 J를 좋아한다고 말해놓은 것이다. 형과 내 관계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내가 J를 만난다는 것은 그림이 너무 이상했다.


당시 나는 J와 만나면 다가올 일들을 피하고 싶었다. J에 대한 마음을 일순간에 닫았다. 사실 마음이란 게 그렇게 쉽게 닫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난, 마치 J가 나에게 있어 단순 친구였던 것처럼 대했고, 일순간에 변한 내게 J는 당황했다. 나는 당시 J와 거리를 두기 위해 일부러 관심 가는 사람을 만들어서 J에게 도와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랑 J는 그렇게 멀어졌다.




2019년도 말, 대학원에 이미 합격했던 나는 학교생활을 정리하고 있었다. J는 항상 내 마음에 걸렸었고, J를 만나 그 당시 나의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다.

우린 꽤 멀리 있던 김치찌개 집까지 굳이 걸어가며, 식당에서,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J는 담담하게 나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줬고, 우리 관계는 거기서 마무리되었다. 아주 가끔 서로 DM을 남기는 것 외에는


그날 밤 J가 하루 종일 울었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다.




J는 2021년에 갑자기 날 찾아왔다. 당시에는 왜 하필 그 시점이었는지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가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른 뒤였다.


사실 J는 그 전부터 내 소식을 꾸준히 챙겼던 것 같다. 내가 연애하고 있을 무렵, "너 여자 친구 있다는 소문이 나한테까지 들린다"고 DM을 보낸 적이 있었다.


당시엔 무심코 넘겼지만 그때 나는 대학원 친구 몇 명 외에는 연애 사실을 알리지 않았었는데 J는 어떻게 알았던 걸까?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신경 써주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막 새로운 인연이 생긴 참이었다. 멀리까지 와준 J에게 그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J는 계속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며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왔다.




2025년도, 콜드플레이는 8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 듣는 플레이리스트의 부분 부분에 J와의 기억이 남아있었다.


공연장에선 혹시 J가 근처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Music of the Spheres 내한 공연의 가장 큰 주제는 사랑이었던 것 같다. 크리스 마틴은 계속해서 사랑을 외쳤고, 나에게 사랑은 뭘까에 대해 고민하며 공연을 봤다.


집에 들어온 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다 J도 공연을 보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J의 스토리에 DM을 남겼고, 더 이야기 하고 싶어 통화를 하자고 했다.


J와는 항상 대화가 잘 됐다. 잠깐의 공연 후기를 즐겁게 떠든 후 근황을 물으려는 찰나 J에게 목감기로 통화를 길게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눈치를 챘다. 공연을 누구와 갔냐 묻자, J는 남자 친구와 갔다고 했다. 좀 더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통화로 난 J와 다시 잘해보고 싶은 것이었을까? J는 꼭 비포 선라이즈의 줄리 델피 같고, 리틀 포레스트의 하시모토 아이 같다. J와의 함께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어쨌든 나는 J의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다. 무심하고 무신경했던 내가 J에게 큰 상처들을 줬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J가 지금 만나는 사람과 J의 연애를 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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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30 업데이트

J와 통화를 했다. 3시간 19분동안 우리는 그간의 기억을 다시 돌아봤다.

내 기억 중 순서가 틀린 것도, 잊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J에게 나는 항상 특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J는 항상 내 마음이 궁금했고, 끝까지 내 마음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J는 나와 찍었던 사진을 몇장 가지고 있었다. 사진 속 J가 입고 있는 옷들은 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내 옷들은 너무 낯설었다.

J는 일기를 적는 버릇이 있어, 나와 한창 연락할 때의 일기들을 펴서 부분 부분 읽어줬다. 내게 고마운 점과 나의 좋은 기억만 담아줬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제서야 서로 속 마음에 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J와 내가 연락하던 그 때는 우리 둘다 너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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