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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Aug 20. 2023

적응의 건축, 오동숲속도서관

AFTER-A04


입구에서부터 풍기는 나무냄새와 그 사이로 스며드는 빛
좁은 회랑과 넓은 회랑, 그리고 어디에서나 연결되는 회랑


더운 여름날, 높은 경사로를 따라 걸어간 끝에 오동숲속도서관에 도착했다. 역시나 사람은 많았고 몇 바퀴를 둘러본 후에야 자리가 생겨서 앉을 수 있었다.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가 몇 개 있었는데, 쉽사리 자리는 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책을 읽다가 뒤늦게 공간을 천천히 지켜보고 나왔다.


우선 네 가지가 떠오른다. 틈과 회랑, 조닝의 방식과 선홈통.


틈(빛과 책의 기능 속에서의 틈)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나무 향기가 먼저 코를 자극한다. 한껏 들이마신 후에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나무로 가득한 공간과 저 위에서 내려와 공간을 밝히는 빛이 눈에 띈다. 자연 속의 도서관은 많은 틈을 가지고 있었다.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매스가 점차 상승하고 있었는데, 높음과 낮음의 사이에서 틈이 생겨나고 이는 지붕이 산의 굴곡을 묘사하면서 좀 더 역동적으로 변한다. 은은한 빛이 저 높은 창에서 스며든다. 도서관이라는 기능은 어쩔 수 없이 빛과 책이 조우해야 한다.


회랑(불완전한 복도공간)

도서관의 주변으로 처마가 불쑥 나와있다. 일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든 면에 처마가 생기면서 매스 전체를 둘러싸는 회랑이 생겨났다. 이는 다양한 방향에서 오는 접근성을 받아들이고 자연과 기능의 사이에서 하나의 켜를 형성한다. 사실 자연과 직접적으로 마주한 부분을 제외한 세 면은 회랑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멈춤의 공간을 만들긴 힘들다. 하지만 애초에 회랑의 공간이 다양한 접근성을 수용하기 위해 창출되었다는 점에서 멈춤과 움직임이 적절하게 조율되었다고 생각된다. 회랑은 강한 직사광과 거대한 자연을 필터링해주고 공간의 깊이를 만들며 경험과 감각의 다양성을 만들고 있다.


틈과 회랑에 대해서 적다 보니 두 개념 모두 어딘가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완벽하지 못한 벽에서 완벽한 것이 흘러들어오고 막힌 것도 아니고 열린 것도 아닌 공간에서는 그제서야 모든 감각이 되살아난다.


조닝의 방법

안쪽으로 돌돌 감은 형태의 매스 안에서는 그 형태에 맞게 벽이 세워지고 공간이 나누어지고 있다. 조닝 또한 그에 맞게 분류되어 있었는데 가장 바깥에는 입구와 인포데스크, 북카페와 화장실, 사무실이 배치되어 있고 자연과 맞닿은 회랑부터 공간의 중심까지는 독서공간이 위치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다양한 자연환경에 둘러싸인 바깥에서부터 공간의 중심을 향해 켜를 만들어가는 형식의 공간에서는 어떠한 조닝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1. 바깥-부가적인 기능/중심-핵심적인 기능

첫 번째 방법은 자연, 외부, 소음과 맞닿은 부분에 부가적인 기능(인포데스크나 화장실, 사무실, 북카페)을 배치하여 내부의 독서공간을 감싸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도심 속에서 적절하게 기능할 것 같지만 외부 지향적인 공간구성을 추구하는 땅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도서관이 이런 형식의 조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산을 내려다볼 수 있는 회랑 부분에만 독서공간이 확장되어 있고 테두리에 위치해 있는 인포데스크는 다소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2. 바깥-핵심적인 기능/중심-부가적인 기능

두 번째 방법은 자연의 곁에 대부분의 독서공간을 배치하고 공간의 중심에 부가적인 기능들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자연의 곁에 많은 독서공간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첫 번째 방법보다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땅의 주변에는 자연적인 요소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독서공간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배치되고 중심에 배치되는 부가적인 기능들이 환기나 채광에 불리한 환경으로 구성된다.


3. 하나의 모서리-부가적인 기능/나머지-핵심적인 기능

세 번째 방법은 자연환경이 아닌 길이나 도로에 맞닿은 일부 모서리에 부가적인 기능을 집약시키고 자연환경과 맞닿은 나머지 공간에 독서공간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는 첫 번째, 두 번째 조닝의 절충안처럼 보여지는데 주변의 다양한 접근성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랑과 공간의 중심을 향해 켜를 형성하며 공간을 만드는 도서관의 초기 컨셉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조닝의 방법이 공간을 순환시키지 않는다.


선홈통

외부에서 건축을 바라봤을 때, 모든 기둥에 붙어 있는 짙은 회색의 선홈통이 시선을 자주 빼앗아갔다. 박공의 형태로 물결치는 지붕은 어쩔 수 없이 우수의 집중을 유발하고 그 빗물들은 지붕의 끝으로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많은 수의 선홈통을 노출시킨다. ’구조적인 역할을 하는 목재 기둥과 선홈통을 하나로 엮고 그 겉부분을 또 다른 목재로 감쌌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구조의 진실성을 숨기는 것만 같아 금방 고개를 저었다.


글의 제목을 생각하다 보니 ‘적응의 건축’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건축은 땅의 맥락을 받아들이기 위해 접근성을 수용하고 자연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회랑을 만들었고 건축은 기능의 수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매스의 고저차를 만들고 공간 내부로 빛을 끌어들였다. 건축은 외부와의 적절한 분리를 필요로 했기에 테두리에 부가적인 기능을 삽입하였고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선홈통은 아쉽게도 기둥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건축은 그 땅에 적응한 채로 그려졌고 그대로 공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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