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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Mar 10. 2024

여섯째 주의 밤들

2024.02.05-11


아주 보통의 이별이 어딨을까

240206


주변 사람들의 이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들이 그저 보통의 사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들의 이별이 짧은 시간으로 수렴하다 못해 하나의 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저 그런 이별처럼. 하지만 아주 보통의 이별이 어딨을까. 그 하나의 이별 안에도 엄청난 부딪힘과 넘어짐이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나의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자. 그것은 결국 길고 짧은 하나의 생채기이고 그것은 아주 긴 시간으로 확장하다 못해 영원한 아픔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묵묵한 울림들,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똑같이 있다. 모두의 이별은 그저 그럴 수 없다.


이별의 근처에서 내뱉은 말들

240207


이별의 근처에서 내뱉는 모진 말들을 보았다.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여온 아주 깊은 진심인 듯, 억지로 쥐어짜낸 거짓인 듯 모호하고 혼란스러우며 날카롭다. 어딘가를 거치지 않고 새어 나온 그 말들은 쉽게 상대방을 상처 입히고 그들이 나누던 대화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피를 잔뜩 흘린 채로 쓰러진다. 그렇게 어떤 사랑은 져버린다. 낮이 밤이 되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밤이 아침이 되는 그런 의문들로 가득 차버린 채로. 이미 늦어버린 후회를 가득 껴안은 채로.


감정을 덧씌우는 상상의 힘

240209


내가 주체가 아닌 어떤 부정적인 상황을 상상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상상일 뿐일지라도 그것이 무서운 이유는 나의 생각과 감정을 상상했던 그 상황에 맞게 바꾸어놓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최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실인 것처럼, 이미 최악의 상황인 것처럼 지레짐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력에는 분명 힘이 있다. 그것에 깊게 몰입해 버려서, 마치 사실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힘이 있다. 마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 속에서 나는 그 상상이 동시간대에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상상력에 의해 덧씌워진 감정은 곧바로 현실의 감정이 되어버린다.


공허

240210


엄청난 공허 속에 놓여있다. 뇌에 안개가 낀 것 같다. 뇌 어디에선가 무엇을 꺼내와야 했었던 것 같은데 가는 도중에 계속 길을 잃는다. 슬픈 노래가 계속 흘러 들어오는데 괜히 가슴 한켠의 차갑고 시린 부분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남아있던 온기마저 빼앗아간다. 어디에 있든지 시선은 창밖에 무던히도 놓여있는데 내가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시선이 창밖의 차가운 바람에 흩어진다. 잠에 들기 전, 보통은 모든 불을 끄고 그 어둠이 싫어서 재빨리 눈을 감아버리지만 언젠가부터 희미하게 보이는 천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는 어둠 그 자체에 동화되어 버린다. 공허의 대립항을 찾을 수가 없다. 뇌 어디에선가 그것을 꺼내왔어야 했는데 안개가 자욱해서 다시 길을 잃었다.  


숨어서 슬퍼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240211


언젠가, 아버지의 주름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있다. ’ 저렇게 길고 깊었나 ‘라고 되뇌이면서 결국 저것들도 상처가 남긴 흉터가 아닐까 생각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표정에 따라서 주름들이 바삐도 움직인다. 내가 모르는 그의 시간 속에서 아빠는 억지로 웃고, 숨어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그것들이 반복되는 동안 아픔엔 무뎌지고 흉터는 그 깊이를 더해갔으리라. TV를 보다가 잠에 든 아버지의 찡그린 표정과 미간을 따라 구불거리는 그 깊은 주름들을 보니 괜시리 마음 한켠이 차가워진다. 내가 그날, 집을 나오면서 아버지를 향해 밝게 웃어주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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