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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Mar 02. 2024

다섯째 주의 밤들

24.01.29-02.04


오만

240130


타인의 삶을 살짝 엿본 정도로 마치 그의 삶을 전부 먹어치웠다는 듯이, 이해한다는 말을 쉽게 내뱉어버리는 그 무게 없는 오만이 싫다. 나는 절대 그가 될 수 없음에도, 내가 본 것은 그의 삶에 수놓여진 수많은 별들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사람을 이해해 줄 수 있다는 그 오만,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온전하게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그 오만, 당신은 당신의 고민을 하고 선택을 했음에도 감히 너의 삶을 흔들리게 하는 말을 내뱉어버리는 그 오만.


당신의 우주는 온전히 당신만이 볼 수 있다. 나의 것도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타인의 우주를 들여다볼 수 없고 그래서 타인의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 그곳에 놓인 별을 그저 헤아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240131


아마 그 마음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마음을 모아놓는 방이 있다면 사랑했던 마음들은 그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과거의 박제된 시간이 되어 덕지덕지 붙어 있을 거예요. 저는 그것을 쉬이 없애려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천천히, 하나하나 떼어서 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려고 해요. 너무 힘들 때에는 하나씩 꺼내보고 미소 지어보려고 해요. 그리고 그 마음의 방에는 다시 다른 마음들이 덧붙여질 겁니다. 그 방은 유한하니까,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고이 접어서 서랍에 넣어두세요. 시간이 다른 마음을 방으로 초대할 수 있게.


잠과 죽음

240203


나는 지금까지 죽음이 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이 무서웠다. 항상 잠에 들기 전에는 죽음과 비슷한 잠의 곁으로 떠나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잠은 깨어나기 위해 드는 것이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다. 죽음은 그저 떠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떠나는 것이다. 잠에 들어있는 나를 생각해 보자. 감은 두 눈의 근처에서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같은 것이 있고 현실과 상상, 그리고 어딘가에 내버려 둔 마음의 조각들이 뒤섞여서 상영되는 꿈이 있고 잠깐 깨어난 밤의 차가운 어둠이 있고 일어나기 직전의 달콤한 무의식이 있다. 죽음은 아무것도 없지만 잠은 너무나도 많은 것으로 채워져 있다.


폭죽

240204


환상의 일시성, 부질없음, 피곤함, 후회, 부끄러움


아, 분명 폭죽의 일시성에 짙은 허무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그것은 환상이었구나. 그 아름다운 색깔들이 내 안의 시커먼 것들을 닦아내는 것 같았고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그 힘찬 돌진이 내 안의 답답한 것들을 밀어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빛의 향연이 끝나고 매캐한 화약 냄새가 온 거리를 뒤덮은 후,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했을 때 나는 분명 그것의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기대했던 것을 후회하고 그것을 알면서도 폭죽을 뚫어지게 바라봤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 다시 한번 일시적인 것들이 싫어진다. 공허한 폭죽 소리, 나의 바깥에서 일시적으로 덧씌워지는 페르소나, 그리고 사랑 없는 아주 가벼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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