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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박 Feb 24. 2024

넷째 주의 밤들

24.01.22-28


미움받을 용기 같은 것은 없다

240122


그 누구도 미움받는 것이 싫겠지만서도, 나는 그것이 너무도 싫고 무서워서 바보같이 웃고 그저 이해했다. 쉽게 상처받지 않는 척,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척, 그리고 쉽게 품어줄 수 있는 척했다. 그럼에도 나는 미움받는다고 느껴버리고 만다. 마음속의 미묘한 울렁거림이 계속해서 파도를 일으켜서 온몸을 철썩이며 때린다. 다른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바닷가의 파도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눈과 귀의 주도권을 쉽게 빼앗기는 것처럼. 그 누가 미움받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에겐 아직 미움받을 용기 같은 것은 없다.


참고 견디어내는 삶

240124


자주 인내하며 살아낸다. 잔뜩 움츠리게 하는 추운 계절, 이해하기 힘든 인간의 마음, 사랑이 떠나간 자리와 그곳에 들어차는 슬픔, 새카만 밤의 곁에 있는 적막함 같은 것들을 인내하며 살아간다. 생각해 보니 인내에는 시간이 들어있고 침묵이 들어있다. 무력함과 고독도 섞여있다. 다른 감정들에는 없는 것들을 모아서 인내를 만든 것만 같다.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거슬리고, 조용한 듯싶지만 안에서는 소란스럽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저 참아내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외로운 감정이 또 있을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할까.


무겁지 않은 삶과 죽음이 어딨을까

240125


죽음을 마주하고, 위로하고, 삼켜내는 곳에 다녀왔다. 들어가기 전, 화면 속에 다양한 삶들이 천천히 지나간다. 나는 그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하고 화면 속 사람들의 삶을, 그 시간을, 그 시간 속의 무겁고 진중하고 날카로운 것들을 상상해 보았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그대들의 삶이, 그 부피와 두께와 무게가 한 번에 느껴지자 속이 더부룩해졌다. 아마 그대들의 삶이, 그 질량이 나에게 흘러들어온다면 나는 ‘펑’하고 터져버리겠지.


떨어져 있던 것을 이어주는 무언가

240127

함께하던 어느 날 구와 나 사이에 끈기 있고 질펀한 감정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메워주는 퍼즐처럼, 뼈와 뼈 사이의 연골처럼, 그것은 아주 서서히 자라며 구와 나의 모나고 모자란 부분에 제 몸을 맞춰가다 어느 날 딱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딱 맞아떨어지며 그런 소리를 낸 것이다.

- 구의 증명, p.88


떨어져 있던 것들을 이어주는 무언가가 있다. 뼈와 뼈 사이의 연골처럼, 높은 탑에 갇힌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탑 밖으로 툭 떨어트린 옷가지들 사이의 매듭처럼, 벚꽃과 푸르름과 낙엽과 눈꽃처럼. 이런 것들이 없다면 나는 움직일 수 없고 하늘과 땅 사이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으며 계절이 멈춰 서서 시간은 흐르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무언가 역시 있다. 서로가 자신의 형태를 조금씩 바꾸어서 딱 맞는 사랑의 형태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낯선 존재들을 이어주는 따뜻하고 끈적한 감정 한 방울이 그들 사이에 떨어지기도 한다. 마치 신의 손길 같은 그것을 지금까지는 몰랐었다. 나의 사랑의 형태도 그것이 매듭지었을까.


마음 속엔 파편만이 남아 계속 덜그럭거린다

240128

몸 속에서 뭔가가 빠져나가고 빈자리는 메워지지 않은 채 그냥 순수하게 텅 빈 상태로 방치되었다. 몸이 부자연스럽게 가벼웠으며 모든 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 노르웨이의 숲, p90


그렇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는 그저 허공에 맺혀있고 몸은 이상하리만치 가볍다. 마치 딱딱한 나무조각들이 얼기설기 묶여있는 허수아비가 된 듯하다. 분명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지만 겹쳐진 눈동자에 의해 잔뜩 흐려진 세상 앞에서 그 생각들은 쉽게 휘발된다. 어느 하나에 몰입할 수 없다. 세상이 그만큼 흐려졌다. 사랑을 잃은 마음의 빈부분에서 뭔가가 계속 덜그럭거린다. 성숙하게 꺼내지 못한 기다란 마음은 결국 부서진 파편을 남겼다. 난 눈을 감고 파편 위를 걸으며 무색의 피를 흘린다. 축축하게 젖은 마음은 무언가에 마취가 된 듯하고 난 이 시간이 끝난 후에 찾아올 고통과 고통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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