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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하루 Dec 20. 2022

한 사람의 시작을 보는 것

노년 내과 



현재 직급이 4개월에서 6개월마다 담당 분야를 옮겨다니는 자리이다 보니 1년에 최소 두 곳을 돌게 된다. 크게는 내과와 외과로 나누어진다. 내과는 노년내과, 감염내과, 내분비내과, 소화기내과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과는 신경외과, 심장외과, 간담도췌외과, 정형외과 등이 있다. 처음 배정받은 과는 노년내과이다. 노년내과는 사실상 거의 모든 과의 집합체라고 할 정도로 복잡한 환자들이 입원한다. 열의 아홉은 이미 기존 병력으로 여러 번 입퇴원을 반복하셨거나 복용 중인 약이 여러 개 이기 때문에 할 일도 많고, 배울 점도 많은 곳이기도 하다.


약사가 병원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은 조제국에 있는 약사만 떠올린다. 그러나 조제국에 있는  직업의  부분일 뿐이다. 약사는 약의 전문가로서 병원의 모든 곳에서 일한다. 약물 복용력과 알레르기를 확인하고 혈액 검사, 세균 배양 검사, 체중 변화 등을 보면서 처방된 치료의 정확성과 타당성을 찾는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용량을 조정해야 하는지, 제형을 바꿔야 하는지, 약물 간의 상호작용은 없는지, 치료 기간을 조정 혹은 중단해야 한다는 지를 결정하고 조언한다. 환자가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갈 , discharge summary letter (퇴원 보고서) 의사와 함께 작성하는  또한 약사의 일이다. 퇴원 보고서에는 입원 동안 받았던 치료와 투약 기록, 퇴원 전과 후에 약의 변화, 외래 예약, 지역 보건의와 약국 약사가 유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  등이 기록된다. 이는 환자의 장기적인 치료 계획에 가장 중요한 서류로 사용된다.


노년내과의 경우 이 모든 것이 다른 연령대보다 더 중요하다. 노년이 되어갈수록 신체의 활동성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다른 연령층에서는 하루 이틀 정도 앓고 넘어갈 일들이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장 빈번한 예시가 배변과 배뇨 장애이다. 듣기에는 대수롭지 않지만 노년에게는 특히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장의 운동이 떨어지면서 변비가 생기고, 대변이 장에 차게 되면서 복통을 유래하며, 그 복통은 환자가 밥을 먹는 것도, 물을 마시는 것도 힘들게 만든다. 이는 무분별한 진통제 사용, 특히 변비를 더욱 악화시키는 오피오이드 성분의 진통제 처방을 야기한다. 줄어든 식사량과 음수량으로 변비는 더욱 악화되고 이는 체내의 칼륨 수치를 높여 신장과 심장에 무리를 준다. 배뇨 장애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방광의 근육이 제대로 이완, 수축을 하지 못해 소변이 체내에 오랜 시간 머물게 되면 염증을 일으키게 된다. 떨어진 면역체계로 인해 다른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에 취약해지며, 이는 종종 섬망으로 나타난다. 누구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노년에게는 죽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노년 환자들을 보게 되면서 좋은 습관이 생겼다. 바로 0부터 보는 것이다. 노년 환자의 경우 많게는 20개의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런 약을 드시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고, 0개에서 20개까지 복용약이 늘어나는 데까지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처방을 하는 의사의 입장에서는 그때그때 나타나는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약을 추가하는데 중점을 두겠지만, 약사의 입장으로서는 하루에 20개의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의 심리도 고려야 해야 한다. 20개의 약이 모두 필요한 것일까, 20개의 약 때문에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 많은 약물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없었을까 등을 생각하며 약들의 중요도를 정리한다. 노년 계층의 치료 목적은 주로 완치가 아니라 삶의 질이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선 후로도 남은 생에 불편함이 없도록 돕는 것이 약의 진정한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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