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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Mar 25. 2022

사랑만 하고 살면 안 되니

인생은 성공을 향해 레벨 업하는 게임이 아니잖아

 "엄마, 버터가 오븐 안에서 폭발했어!"


 얼굴이 빨개진 딸이 방문을 열고 어쩔 줄 몰라 서 있다. 읽던 책을 덮고 나가봐야 하는데 심통만 올라온다. 9시가 다 되어가니 베이킹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는데도 부득불 금방 할 수 있다고 시작하고선 사고를 친 것이다. 내 입에선 차가운 잔소리가 나가고 분위기가 서늘하니 옆에 누워 휴대폰을 보던 아빠가 딸의 등을 밀며 부엌으로 나간다. 방 안엔 버터 냄새가 가득 찼다. 창문을 열고 애써 부엌을 외면하려 해도 시끄러운 그들의 소리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곧 다시 오븐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버터 타는 냄새는 더 고약해졌다.


 "오븐 안이 덜 닦였잖아. 다 태워먹을 작정이야!"

 딸은 오븐을 멈추고, 남편은 다시 오븐 안을 닦는다.

 "베이킹은 낮에 하라고 했잖아. 학교 갔다 와서 많고 많은 시간을 휴대폰만 들고 있더니  밤에 쿠키를 굽는 거야! 이제부터 9시 이후엔 베이킹 금지야."

 얼굴이 붉어진 딸은 입이 쭉 나와있다. 나는 휙 돌아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따라 들어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큰 아이를 독립시켰지만 나에겐 아들과는 또 다른 성향의 열세 살 된 딸이 있다. 아들을 키울 땐 제법 육아 유능감을 맛보기도 했다. 놀기 좋아하고 다정했던 우리 부부는 아들과 즐거운 하루하루를 함께 했다. 물론 힘든 일들도 있었겠지만 뒤돌아보면 아들 때문에 웃고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다. 그러나 딸은 무엇하나 예측하기가 어려운 아이였다. 보편적인 정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아이. 우리가 좋아할 거라 예상하고 권하는 것들 중 아이의 선택을 받는 것은 열에 셋이 되지 않았다. 달래고 얼래 보아도 자기감정에 충실한 아이는 쉽게 우리말에 응하거나 수긍하지 않았다. 조금 나아졌지만 그 성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딸은 진해에서 태어났다. 4월이면 온 동네가 벚꽃으로 덮이는 고장. 햇살마저 분홍빛으로 쏟아지는 듯한 그곳은 바람이 불면 환상적인 벚꽃잎이 날렸다. 당연히 그 아름다움을 아이도 즐길 거라 생각했는데 어린 딸은 바닥에 흩어진 벚꽃잎이 무섭다고 한 발자국을 떼지 못했다. 처음 보는 꽃이니 그럴 수 있겠다 귀엽게 여기며 이건 그냥 예쁜 꽃잎이야 설명하고 호들갑스럽게 밟아보며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어도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벚꽃이 날리는 날엔 항상 안고 다녀야 했다. 좀 커서 정말 벚꽃잎이 무서웠냐고 물었더니, 그땐 자기 앞으로 몰려드는 벌레떼 같았다며 웃었다.


 딸은 식성도 까다로웠다. 특히, 음식에 양파나 파가 들어가면 먹기 힘들어했다. 양념이 된 음식들도 좋아하지 않아 오이나 당근 같은 채소는 생으로 먹지 반찬으로는 먹지 않았다. 골고루 먹여보려 재료를 잘게 다져 넣으면 먹기 싫은 것들을 빼내느라 시간을 다 쓰고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는 걸로 식사시간이 끝나는 날이 많아 울화통이 터졌다. 좀 커서 이유를 물으니 특정 음식들의 냄새와 식감이 정말 싫다고 했다. 김치 먹기 힘들어 유치원도 그만둔 아이다. 지금도 김치가 상에 올라오면 식탁 끝에 가서 혼자 밥을 먹는다. 영양소와 맛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입을 닫고 먹지 않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10개월부터 걷고, 제법 말도 했던 딸은 자라면서 영특하다는 칭찬도 들으며 한글과 수를 익히고 영어노래도 곧잘 불렀다. 공부 습관만 길러주면 학업 성취에별 어려움이 없을 거라 짐작하며 기대도 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늘어가는 학습량에 힘들어했고 공부엔 흥미를 잃어갔다. 쉽게 지치고 힘든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딸을 보며 식습관, 학습관을 잡으려고 전쟁을 치르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나 아이의 저항이 거세 핵폭탄이라도 떨어뜨리지 않으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가 불가능했다. 웃음 많고 다정하고 사랑 많은 우리 가정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입히는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원치 않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고 두렵고 좌절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잘못된 아이의 행동에 단호하지 못한 나의 양육방식을 책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잘못된 행동 이전에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냉정하고 단호수가 없었다. 그저 예민한 아이가 가엽고 그럴 수밖에 없는 아이를 이해해 주고 싶었다. 바람직한 아이로 길들이려다 아이의 마음이 다칠까 그게 더 두려웠다. 딸을 붙들고 울기도 많이 했다. 엄마의 마음을 그렇게 모르겠냐고 하소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딸은 미안하다고 나도 이런 나라서 힘들다고. 그러게 나는 왜 태어났냐며 같이 울었다. 그때 든 생각이 엄마가 뭐 이래. 아이 마음 하나 행복하게 못해 주면서, 나를 사랑하는 엄마가 있어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아이가 그렇게 느끼게 해 주면 안 돼? 집 밖으로 나가면 지켜야 할 규칙과 규율이 가득한데 집에서만은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하고 싶은 대로 자유를 허락하면 왜 안돼? 그런 자책과 의문이 들었다.


 아이를 이해하고 잘 키워보려고 열심히 찾아 읽던 육아서들을 덮었다. 그 속엔 참고할 조언들도 많았지만 좋은 엄마에 대한 부담과 불안이 나를 흔들었고 자꾸만 우리 아이를 실패 없이 키워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었다. 나는 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건강한 음식을 억지로 먹이기보다 그 음식이 먹기 힘든 이유를 이해해주려 했고, 학습을 강요하기보다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 너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거 하나면 조금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힘든 일임을 수시로 깨닫는다.


 오늘도 정신과 의사가 쓴 에세이 한 꼭지에 그만 마음이 흔들렸다. 그 책엔 자녀에게 별다른 통제를 하지 않는 허용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적절한 통제를 받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립심이 약하고 자제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 독립심이 약한 탓에 성취하려는 욕구도 별로 없고 이 유형의 부모는 무시하는 유형의 부모가 될 가능성이 큰데 그럴 경우 자녀들이 스스로 자라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장에는 아주 좋지 않은 환경이라고 적혀있었다. 무심히 읽은 문장들이 무의식에 깔려있던 나의 불안을 건드렸다. 딸의 미래를 망치는 자유를 주고 있나? 이 책의 문장처럼 나이가 들수록 더 나빠지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다시 규율을 잡고 규칙을 정하고 아이를 관리해야 하나?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아이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나의 오판으로 망쳐버린 거면 어쩌지? 조바심이 일었다.




 "엄마, 쿠키 다 구워졌는데, 요즘은 베이킹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 "

 딸은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건네는 말인데 이미 걱정이 자리 잡은 내 마음은 또 잔소리를 쏟아낸다.

 "그럼, 쉬울 줄 알았니! 베이킹이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리고 직업의 세계로 가면 안 힘든 일이 뭐가 있니. 쉬운 것만 하고는 세상을 살 수 없어. 너 잘 생각해야 된다."

 "엄마, 오늘 또 말이 기네." 딸은 문을 꽝 닫고 나간다.

 "저 버릇부터 고쳐야 되는데!"

 아! 갑자기 고칠 버릇이 너무 많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하다. 날카로운 나의 목소리에 남편은 베개를 들고 냅다 아들방으로 피신한다. 홀로 앉은 방엔 거듭 뿜어대는 나의 숨만 가득 차 있다. 한 숨엔 염려가, 두 숨엔 후회가, 세 숨엔 자책이, 네 숨엔 반성이......


 열세 살 아이는 그저 제 손으로 쿠키 굽고 빵 만드는 게 신기하고 재미날 뿐이다. 어쩌면 파티시에가 되어도 좋겠다 꿈꾸는 아이에게 인생이 마치 어려운 시험 인양 인내해야 한다고, 선뜻 시작할 용기재미마저 꺾는 말을 했구나!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지 못하면서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처럼 자꾸 조바심이 난다. 눈부신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공부만이 답이 아니라고, 실패 없는 인생에 목적을 두고 전전긍긍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겨우 에세이 한 꼭지에 무너지다니! 내 마음의 연약함을 어쩌면 좋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이의 미래가 엄마 양육의 질에 달려있지 않다고. 아이는 자기만의 삶을 살도록 태어났다고. 그저 아이를 사랑할  억지로 되지 않는 것은 그냥 놓아둘 거라고. 아이가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조바심 내지 않을 거라고. 무엇보다 나에게 딸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잊지 말자고. 


할멈이 말했다.
사는 건 후회와 실패의 반복이라고.
나는 빈정거렸다.
그럴 거면 살아 뭐하냐고.
할멈은 다시 말했다.
더 멋지게 후회하고 실패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니 쫄지 말라고.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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