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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Aug 29. 2022

수영이 뭐 별거라고 그지?

나의 진심이 너에게 가닿길!


"이제 수영 시작한 지 3주 차야! 벌써 그만두는 건 곤란해."


아홉 살 다솜이는 친구 별이와 함께 수영강습을 시작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위치와 저렴한 강습료로 체육센터 초등 수영은 언제나 인기였다. 아이들이 수영을 다니기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자 강사님의 지도 방식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다. 수업 방식이 거칠어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평소 예민한 다솜이가  그렇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그러나 다솜이는 신나게 수영장에 가고 강습이 끝나면 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 일상을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한 주, 두 주 잘 적응해 갔다. 강사님 소문이 괜한 걱정이었나 안도할 때쯤 다솜이는 우는 소리를 뱉어냈다. 다니기 시작한 지 3주 차가  지나는 시점이었다.


“선생님이 막 소리 질러! 음파 음파 배우면서 물속에 머리를 집어넣는데, 고개 들면 손으로 막 눌러. 숨 막혀 죽을 거 같아! 나 이제 수영 안 갈래.”

꾸준히 배우면 좋겠다고 기대하던 차에 그만두겠다는 말을 들으니 참지 못한 한숨과 잔소리가 튀어나왔다.

“같은 반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강습받고 있잖아! 힘들다고 다 그만두지 않아! 별이만 봐도 그래. 그만둔다고 하지 않았지?”

아뿔싸! 아이 마음 읽어주기가  먼저여야 했는데 내 마음 읽기를 해버렸다.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비교까지 하니 다솜이의 실망과 분노는 그 자리에서 다시는 강습을 받지 않겠다는 우격다짐으로 막을 내렸다. 퇴근한 남편은 다솜이의 이야기를 듣곤 호흡법을 익히는 과정이니 참고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다솜이는 아빠와도 맞서며 절대! 다신! 하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빠와 다솜이의 대치 상황을 보며 당황한 나는 애써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물어보았다. 다솜이는 힘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다며 울었다.  


다음 날 별이 엄마와 차 한 잔하며 마주 앉았다. 같이 의지하며 다니길 바랬는데,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수영을 그만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저...... 별이는 수영 배우는 거 어때요? 힘들어하진 않나요?”

주저하며 묻는 말에 별이 엄마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힘들죠. 처음 배우는 건데 안 힘들 수 있나! 익숙해질 때까지 참고야죠.”

“아...... 다솜이는 선생님께서 고함치고 머리를 물에 집어넣어서 무섭다고 하던데, 별이는 그런 말 없었나요?”

“왜요! 애들 똑같지. 그래도 어쩌겠어요. 배우는 과정이고, 한 선생님 밑에서 여러 아이들이 함께 배우려면 어쩔 수 없죠. 힘든 고비 잘 넘기도록 다독여야죠.”

별이 엄마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고집 센 아이를 다독여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오기는  힘든 일이라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솜이가 많이 힘들어해요?”

“네. 너무 무섭다고 하네요. 이제 아홉 살인데 무서움을 극복하며 수영을 배워야 하는지 조금 고민이에요.”

“고민되겠어요. 하지만 쉽게 그만두면, 그런 습관이 들까 봐 별이는 계속하게 하려고요. 같이하던 다솜이가 그만두면 우리 아이도 맘이 약해질 거 같긴 하네요.”   


별이 엄마는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녀의 말은 남아 마음을 헤집었다. 다솜이가 무엇하나 제대로 못하는 아이로 자랄까 봐 불안했다. 다솜이가 그만두면 혼자 다닐 별이에게 미안해서 불편했다.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은 결국 하교한 아이를 붙들고 또 잔소리를 터뜨렸다. 끈기를 가지고 좀 더 해 보면 안 되겠느냐고. 힘든 상황을 같이 극복할 친구가 없어진 별이 생각은 안 하느냐고. 딸은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다.

"엄마는 별이가 더 소중해? 무서워서 수영하기 싫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다고!"


 아홉 살 딸이 수영을 배우고 그만두는 일이 서로 갈등을 쌓을 일인지 여러 상황들을 생각해 보았다. 시작했으니 참고해 나가야 한다는 별이 엄마의 말. 숨이 가쁜 아이들 머리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 강사를 보며 굳어지는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멋지게 물살을 가르며 수영하는 다솜이도 그려 보고, ‘힘들 줄은 알았지만, 무서울 줄은 몰랐어!’ 울먹이며 뱉어내던 딸의 말도 다시 떠올렸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좋은 습관 들이기에 앞서 상처받은 아이 마음을 먼저 다독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환경이 열악해도 수강생들에게 거친 말과 행동을 하는 건 선생님 잘못이다. 부당한 행동에 거부할 권리가 다솜이에겐 있다. 멋있게 수영하는 딸을 내가 보고 싶은 거지 다솜이가 원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시작할 땐 미처 알지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현재 다솜이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다솜이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눈물을 닦으며  현재 아이의 상태에 집중해야 함을 깨달았다.


 결국 다솜이는 3주 만에 수영강습을 접었다. 아이에게 공포스러운 강습을 이어가는 대신 아빠를  잘 설득했다. 다솜이는 주말마다 실내 수영장에서 아빠와 함께  물에 뜨는 법, 잠수하는 법, 물에서 재미있게 노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별 걱정거리도 아닌데 집 안이 들썩대도록 한바탕 난리를 겪을 때도 있다. 당시는 괴롭지만 그 과정을 치열하게 통과하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믿음을 쌓고 애틋해진다. 매일 꾸준히 몸과 마음이 자라는 아이와 예측 불가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한 가지만 기억하려 한다. 나는 아이와 지금, 오늘을 살고 싶다. 때로 좌충우돌하는 엄마지만, 마음은 언제나 너의 편이고 싶다. 엄마 진심이 다솜이 마음에 흘러들길 바라본다.




"엄마, 다솜이가 누구야?"

"엉?" 운전하던 나는 뒷좌석에 앉은 딸의 말에 당황했다.

"너, 엄마 블로그 읽었어?"

"내가 좀 보면 안 되는 거야? 다솜이가 나인 거지?"


예전에 쓴 글이 블로그에 남아 있다. 자기 이야기를 싫어할 거 같아 가족들에겐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딸이 어찌 내 블로그를 알고 들어갔나 보다. 예민한 딸이기에 자기 이야기를 쓰고 있는 엄마를 알면 어떤 반응을 할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야기도 그렇고 다솜이가 난데 그지?"

"음... 엄마가 네 이야기 쓰는 거 싫어?"

"아니, 괜찮아. 읽으면서 엄마가 많은 생각을 한다고 느꼈어."

아이의 목소리는 밝고 구김이 없다. 안도가 되었다. 갈등의 순간마다 아이의 말과 진심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엄마인 나는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딸과 쌓아온 시간이 믿음의 시간이었음을 콧노래를 흥얼대는 딸을 보며 느낀다. 나의 마음이 너에게 가닿아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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