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들어 더운 날이 이어진다. 에어컨과 선풍기, 얼음물을 마시며 가급적이면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한다. 문득 옛 조상들은 이 더운 여름을 어찌 버텨냈는지 궁금해져 조선시대 피서법을 검색해 보았다. 그중 내 눈길을 끈 것은 정약용 선생의 소서법(消暑法: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다. 대나무 자리를 깔고 바둑 두기,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빈 누각에서 투호 놀이하기,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달밤에 발 씻기. 읽다 보니 어찌할 수 없는 더위에 순응하며 자연과 더불어 여름의 정취를 즐기는 선비의 품격이 느껴진다. 그러나 달마저 녹아내릴 듯 더운 한여름 밤에도 발만 담그고 있을 수 있을까? 보는 이가 없다면 정약용 선생도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지 않았을까? 물속에 들어가야 여름 맛이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6월에 다녀온 맑은 삼척 바다. 차갑던 바닷물의 감촉이 내 머릿속에 쓱 들어찼다.
여름 바다는 매력적이다. 특히 일렁이는 파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며 시원하게 부서지는 동해바다는 떠올려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러나 우리가 간 삼척 바다는 호수라고 해도 될 만큼 잔잔했다. 6월 중순이라 물놀이를 할 수 있을까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온 터라 튜브나 수영복을 준비하지 않았다. 날이 덥고 물이 따뜻하면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도 뛰어들 수 있기에 바다는 자유롭다.
일단, 삼척 장호항에 가니 카누와 스노클링이 가능했다. 우리 가족은 4인 카누를 타고 각자 하나씩 받아 든 노를 저으며 바다 위를 떠다녔다. 장호항엔 길게 이어질 듯 끊어지며 갯바위들이 솟아 있는데 그 사이로 카누를 몰아 절경을 구경하고 갈매기랑 눈 맞추는 것이 재미있었다. 또 모터보트가 지나가며 일으키는 파도에 쿨렁대는 카누는 우릴 환호하게 했다.
카누가 재밌었는지 딸은 스노클링도 같이 하자고 졸랐다. 장호항은 물이 깊어 반드시 구명조끼를 입어야 하는데 가까운 갈남항은 물이 얕아 아이들이 수영하고 스노클링 하기에 좋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장비만 사서 그곳으로 갔다. 갯바위로 이루어진 장호항과 달리 갈남항은 작은 모래사장이 있고 물속이 밝게 비치는 투명한 청자빛 바다였다. 딸은 입고 온 그대로 바다에 들어가 아빠를 불렀다. 옷이 몸에 척척 감기는 습하고 더운 날에 지쳐 멍한 눈을 한 남편은 아무 의욕이 없어 보였지만, 딸의 재촉에 마지못해 바다로 들어갔다. 그러나 스노클 마스크를 쓰고 물속을 들락날락하던 남편은연갈색 미역을 따고 바다 고동을 채집하며 생기를 되찾았다. 딸도 물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뒤로 자빠지고 하더니 기어코 야들야들한 미역을 따오며 입이 함박만 해졌다. 딸보다 더 신이 난 남편은 잠수했다 떠오르면 손에 바다 고동과 미역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이른 더위에 한동안 멍하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더위 따위 제대로 즐겨 주겠다는 호기로움마저 풍기며자맥질을 즐겼다. 수족 냉증이 심한 나는 아직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는 건 무리인지라 사진만 찍어주고 있었는데 그들을 보고 있으니, 불청객을 맞은 바닷속 생물들이 우르르 쏟아내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잡겠다 잡히지 않겠다 물속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숨바꼭질. 남편은 아이의 마음이 되어 첨벙거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숨는 바다 생물들은 꿈틀대며 고요하던 바다가 역동적으로 살아나는 상상에 웃음이 났다.
역동적인 바다. 조개의 아우성.
나에게도 그런 여름 바다와 아빠의 기억이 있다.
아빠를 생각하면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한 기억도 있지만, 또 좋은 추억들도 많다. 특히 여름이면 아빠와 다닌 물놀이가 자주 생각난다. 정확하게 몇 학년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빤 우리에게 동해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여행길에 올랐고 그날 엄마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멋을 내셨다. 엄마는 동해로 가는 7번 국도길을 좋아하시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길을 보여주고 싶어 계획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아빠는 그렇게 엄마를 사랑했나 보다. 어쨌든 길고 긴 드라이브 끝에 바다에 들어간 나는 들이치는 파도에 놀라고 발을 물어대는 조개에 또 놀랐다. 그해 여름 동해바다엔 비단조개가 모래알만큼 많았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파도가 들이칠 때마다 발에 힘을 주고 버둥거렸고 그때마다 파르르 일어나는 모래에 섞여 비단조개가 튀어올랐다.
그 비단 조개는 민박집 마당에서 맛있는 조개탕이 되어 내 입에 들어왔고, 근심 걱정 많았던 아빠 엄마가 행복한 얼굴로 웃고 계셔서 그 모든 것이 낯설고 흥미롭고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아빠의 웃는 얼굴이 생명의꿈틀거림으로 소란하던 그 여름 바다, 나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엄마, 이거 봐. 아빠와 나 넘어져서 여기 다 까졌어!"
물속은 바위들로 울퉁불퉁한데 아쿠아슈즈도 신지 않고 맨발로 들어간 우리 집 부녀는 넘어지고 미끄러져 팔꿈치가 까지고 발이 베였다. 그럼에도 상처를 보여주는 그들의 얼굴이 햇살처럼 빛나고 물빛처럼 맑다. 아프지 않냐고 물으니 재밌어서 괜찮단다. 그리곤 컵 가득 잡아온 바다 고동을 보여준다. 숙소로 돌아가 삶아먹자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 일정이 있어 바로 숙소로 갈 수 없고 그동안 차 안에서 고동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요한 바다 생태계에 두어 시간 소란을 피웠으면 되었지 더 욕심내지 말고 방생하고 떠나 주자 했더니 둘 다 어이없는 표정이다. 남편은 넘어지고 까이며 잡아 온 소출로 맛난 한 끼 먹어보나 하는 속내가 있었던지 아내의 시큰둥한 반응이 야속해 샐쭉해졌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딸도 살아있는 생명인데 죽으면 안 된다고 방생하자며 아빠를 부추기니 시무룩해진 남편이 고동들을 바다에 놓아주었다. 아빠가 끓여 준 비단 조개탕의 기억을 가진 나이기에 일정을 바꿔 숙소로 돌아가 애써 잡은 고동을 삶아 줄 걸 했나 하는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나는 그들을 살던 곳에 놓아주는 것이 훨씬 좋았다.
6월의 바닷물은 아직 차가운지 딸은 연신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더 놀고 싶다고 버텨보려 해도 몸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간이 샤워장에서 따뜻한 물로 씻고 갈남항을 떠날 때 딸은 많이 아쉬워했다. 나는 내년 여름에 다시 오자며 딸을 달랬다. 우리는 바다를 향해 만나서 반가웠다고, 돌아서면 그리워질 마음을 못내 흘려 두며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