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말해주세요 #예쁘다!
분하다.
그때의 난 정말 몰랐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100%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흔하진 않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고백하자면, 난 오랜 시간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채 살아왔다.
미디어에서 주입하는 미에 대한 획일화된 기준 때문인지, SNS에서 보이는 수많은 ‘예쁜’ 사람들과의 비교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얄팍한 자존감 때문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콤플렉스는 상당히 심각해서 난 내 2,30대의 대부분을(그리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나 자신이 ‘너무 못생기고 뚱뚱하다’ 고 되뇌며 살아왔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의 얼굴은 지나치게 크고 코는 너무 두툼하며 턱은 갸름하지 못했다.
그뿐이랴, 어깨는 넓어서 ‘가녀린’ 이미지를 풍기기에 적합하지 않았고
허벅지는 두꺼워 예쁜 바지핏을 날려버렸으며
결정적으로 비율이 나빠서 사진만 찍으면 땅딸막해 보였다.
나는 이런 내 외모에 대한 스스로의 성적표를 신념처럼 마음에 굳건히 품고 살아왔는데
그래서인지 어디에서나 ‘외모로‘ 위축되어 있었다.
누구를 만나도 내가 저 사람보다 뚱뚱한 것 같아, 못생긴 것 같아 하고 자동으로 비교했고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면 보다 뒤에, 작게 나오기 위해서 애썼다.
누가 내 외모에 대해 작은 언급이라도 하려 하면 극도로 예민하게 굴었고
반대로 칭찬은 모두 빈말로 취급하며 튕겨냈다.
솔직하게- 괴로웠다. 긴긴 세월 내내.
애를 써도 내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데
내 얼굴을 제일 많이 봐야 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였으니까.
내 외모에 대한 성적표를 만든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건 까맣게 잊어버렸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책꽂이 정리를 하다가 예전 앨범을 촘촘히 꽂아두었던 걸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예전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예뻤다. 내가 참 예뻤었다.
막상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예뻤다.
특별한 날도 아닌, 그냥 매일의 일상이 담긴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신이 난 나. 큰 소리로 수업하는 나. 집 앞 카페에서 폭소를 터뜨린 나.
봄 꽃을 잡아보려 달려가고 이국의 바다에서 춤을 추고, 전시회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졸업식 후 눈물이 그렁그렁한 나.
가족들과 함께인 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나.
심지어 잔뜩 예쁜 척, 분위기 있는 척 , 세련된 척하는 나까지.
전부.
그 모든 날의 ‘나’들은 정말 예뻤다.
물리적인 생김새가 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날들의 ‘나’에게는 나 자신도 몰랐던 어떤 것이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반짝이는 눈이나 쑥스러움에 붉어진 뺨 같은 것.
함께하자며 끌어당기는 손, 흥겨워 들썩이는 어깨,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큰 웃음.
그리고 그 모든 걸 가진 ‘나’라는 사람만의 정체성. 나의 생명력과 그로 인해 빛났던 환희.
분하고 억울했다.
내가 이렇게 예뻤던걸, 이렇게 사랑스러웠던 걸 모르고
스스로를 못났다 여기며 움츠러들었단 말이야? 하는 마음.
긴 시간 나 자신에게 내 ‘외모 성적표’를 들이대며 못생긴 녀석, 뚱뚱한 녀석 혼냈는데
사진 속의 ‘나’ 였을 때도 나는 늘 거울을 보며 한숨 쉬기 바빴는데
그래서 너무 고통스럽고 초라했는데.
사실 그때도 나는 예뻤던 거다.
실제와 상관없이 나를 못나고 초라하게 만든 건 나였다.
성형외과를 들락거릴게 아니라 나 자신을 들여다봤어야 했다.
너 참 예쁘다, 사랑스럽다, 다독였어야 했다.
어떻게 보일지 고민할게 아니라 그 순간들을 즐겼어야 했다.
그게 진짜 예뻐지는 방법이었는데, 나만 몰랐다. 나만.
거울을 봤다. 여전히 내 맘에 들어차지 않는 부분을 찾게 된다.
내 눈빛을 깊숙이 응시해 봤다. 사진에서조차 돋보이던 눈빛.
궁금해하고 즐거워하던, 따뜻하고 촉촉했던.
그리고 여전히 명랑한 내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 오늘의 나도 나중의 내가 보면 진짜 예쁠 테다.
그러니 그동안 품어왔던 못난 성적표는 던지고, 자주자주 말해줘야겠다.
너 예뻤어, 그리고 지금도 예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