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을 배우는 일
주말에 딸 홍시가 왔다. 그간에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참고용으로 홍시가 찍은 사진도 보다가 하얀 사진 앞에서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이날 정발 눈 많이 왔거든. 그날 나 아빠한테 감동받았잖아.
그래? 무슨 일인데?
그날 아빠가 밥 하기 귀찮다며 피자를 주문했단 말이야. 그 배달 직원 분이 좀 늦게 왔는데 문을 열어 보니 눈을 뒤집어 썼더라고. 아빠가 피자 받고 계산하고 그 배달 직원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길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서 내려가세요...라고.
좀 어리둥절했다. 딸이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받았는지 모르겠고, 나도 맨날 그렇게 인사하는데 왜 특별히 남편에게 감동을 받은 건지도 의아했다.
그런데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받은 거야?
보통 나도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정도는 인사할 줄 안단 말이야. 그런데 눈 많이 오는 날 길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하라는 말까지는 생각을 못 했거든.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다정함을 느꼈어. 그 분도 느꼈겠지? 느꼈으면 좋겠다.
진심은 전달됐겠지. 그랬을 거야.
다들 그 정도는 인사하는 거 같은데 그런 보통의 인사에도 감동을 받는 너란 아이가 나는 신기했다.
그날 학교에서 애들끼리 거친 말들이 오고 가는 일이 있어서 뭔가 마음에 차가워져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아빠가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따뜻함을 충전한 기분이었어. 나도 앞으로 그렇게 인사해야지.
어릴 때부터 감성이 풍부한 홍시였고 청소년기가 되어서는 낭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가끔 작은 것에 쉽게 감동 받는 홍시가 부럽기도 하고, 나도 예전엔 그랬을까 기억을 헤집어보기도 한다. 홍시가 이미 너무 메마르고 차가워진 내 가슴에 가끔 찾아와 노트하는 덕분에 잊고 있던 내 안의 옹달샘을 찾아 목을 축이기도 한다. 한편 어미로서 대개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더 많이 실망하고 좌절할 날들이 그려져 미리 안쓰럽기도 하다. 이미 그런 일들이 많아 가끔 험한 세상에 나가기 전 예방주사랍시고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는둥, 학교는 그나마 순한 맛이라는둥, 사람은 선과 악을 오고가는 존재이니 너무 기대하거나 너무 실말하지도 말라는둥 떠들곤 했는데 그날은 따뜻했다는 홍시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 없어 가만 듣기만 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가 노벨상 강연 마지막 즈음에 던진 두 질문이 홍시에게도 유효할 것이다. 앞으로 두 질문이 치열하게 팽팽하게 갈등하고 투쟁하고 순위가 전복되고 전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겠지. 그렇게 살아갈 홍시의 세상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