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이 공항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A330 항공기가 길고 조용한 활강 끝에 천천히 베이로 들어왔다.
큰 진동 없이 부드럽게 멈춘 항공기. 랜딩기어엔 쵸크가 고여지고, 익숙한 정적이 기체 주변을 감쌌다.
"멜버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파킹 브레이크 오프 합니다. 항공기 좋습니다."
오늘은 기분 좋게 비행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조종석에서는 가벼운 농담과 인사가 오갔다.
"날씨 좋은 날 오셨네요. 즐거운 저녁 되세요."
그 순간, 조종사의 말이 살짝 걸렸다.
"엔지니어, 다 좋은데… 로그북에 한 가지 적혀 있어요."
"그래요? 뭔데요?"
로그북을 펼치자 단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하드 랜딩으로 예상됨.’
단정한 글씨였지만, 그 한 줄이 오늘 저녁을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부기장이 물었다.
"Load Report 볼 수 있을까요?"
속으로 ‘아이고, 오늘도 뭔가 걸렸구나’ 싶었다.
하드 랜딩이 맞다면, 이 항공기는 오늘 다시 이륙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MCDU를 열어 Load Report를 출력했다.
오랜만에 보는 수치들, 낯설고 복잡한 숫자들이 잔뜩 찍혀 있었다.
"지금은 확답드리기 어렵습니다. 데이터를 해석해 봐야 해요."
조종사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항공기를 떠났고, 나는 사무실로 향했다.
매뉴얼을 펴고 데이터를 하나씩 비교해 나갔다.
VRTA, RALR, GW, MLW…
0.125초 단위로 기록된 20개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최댓값과 최솟값을 구해 Delta 값을 산출하고, 기준치를 넘는지 확인했다.
항공사 본사의 Maintenance Control Centre에 데이터를 전송했고,
혹시 모를 지연에 대비해 공항 지점장에게 상황을 알렸다.
30분 내 결과를 통보하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외부 검사를 위해 추가 인력을 요청했다.
랜딩기어, 기체 하부, 스트럿… 천천히, 조심스럽게 점검했다.
다행히 항공기 상태는 양호했다.
하드 랜딩은 아니었다.
한숨 돌리며 로그북에 상황을 매뉴얼에 따라 정리를 마쳤다.
그리고 이 항공기는, 무사히 다시 떠날 준비를 마쳤다.
비행이란, 언제나 바람과 수치, 그리고 규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강한 착륙도, 조심스러운 이륙도 모두 그 하루를 안전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작은 싸움이다.
오늘도, 항공기는 무사히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