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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윤 Nov 23. 2023

어질러진 방과 어질러진 마음

공간과 마음

바쁘다는 핑계로 난 늘 내 마음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 아니 어쩌면, 날 것 그대로의 내 마음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다른 것들에 주의를 돌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외면하고 거부한다고 그 마음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밀어내고 밀어내다 보면 종국에는 더 큰 인력이 작용해 제때 봐주지 않던 마음이 이리저리 뒤섞여 더 큰 힘으로 나를 집어삼키려 든다. 그렇게 얽혀버린 마음 안에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이 얽혀있어 나는 또 한 번 도망치고만 싶어지고, 그럴수록 내 마음은 제발 좀 들여다보라고 아우성치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책장 위 그리고 침대 아래 수북이 쌓인 먼지를 못 본 체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듯, 결국 나는 내 안의 나를 마주해야만 이 마음을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천은 어렵기만 하다.

*

공간을 점유하는 건 물건이지만, 실질적으로 그곳을 지배하는 건 언제나 마음이다. 휴학하고 집에 돌아와 이곳저곳에 채워 넣어 꽉 차버린, 그래서 무슨 옷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된 옷장을 정리하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이 불안할 때 다소 충동적으로 취향에 맞지도 않는 옷을 샀고, 그렇게 입지 않게 된 옷이 저 안쪽 깊은 곳에 쌓여있었다. 새 옷을 사려면 일단 무슨 옷이 있는지 알고, 입지 않는 건 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비우는 게 귀찮았던 나는 계속해서 채우기만 해버렸고, 어느새 옷장은 가득 차버려 꽉 낀 옷들이 서로를 밀쳐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당시의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은 내적으로 엄청난 불안을 느끼면서도 아닌 척, 모른 척,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하고 지냈던 그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 공간에 그대로 투영되어 이리저리 제멋대로 흩어져 있었다.

*

결국 정돈되지 않은 마음은 겉으로 어떻게든 드러나게 된다. 충동적인 의사결정, 도파민 중독, 어질러진 방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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