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나의 일상 편 -
챗GPT에게 '강원도 양양에서 과학과 요리를 좋아하고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의 5학년 아들, 식물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2학년 아들, 항상 행복하고 자기 전에 오늘 하루도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6살 딸을 키우는 육아전담 아빠의 일상을 수필로 써줘'라고 했더니 양양일보 12와 같은 글을 써 주었다.
아무래도 챗GPT는 한국에서는 아직 현지화가 덜 된 모양이다.
진짜 나의 일상은 이런 느낌이지..
오늘도 큰아들 A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아마도 내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거실에 나가 몰래 핸드폰을 하는 모양이다. 사실 알고 있으면서도 좀 너무 타이트하게 하나 싶어서 모른척 하는 중. 둘째 B와 셋째 C는 아직 꿈나라에 있다. 나도 좀 더 누워있고 싶지만 아침밥을 먹여야 짹짹이들을 내보낼 수 있으니 어거지로 일어난다. 오늘 아침은 그나마 어제 저녁에 백숙을 해 먹어서 그 남은 것들을 모아 죽만 끓여내면 되니 어렵지 않다. 매일 아침 차리는 것은 정말이지 곤욕이다. 거꾸로 쓰면 늉군.
A는 눈 깜짝할 새에 밥을 후루룩 마시고는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B를 채근한다. "빨리 안 먹으면 두고 간다-!" 사실은 절대 두고 가는 일이 없으면서도 괜히 재촉하는 형의 심술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B는 울상을 짓고 서둘러 밥을 먹는다. A는 B의 밥이 한 숟가락쯤 남아있을 때 신발을 신기 시작한다. 한층 더 B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면서. B는 허겁지겁 형의 뒤를 따라 나선다. "형 기다려-" 맨날 투닥투닥거리지만 속내는 서로 그렇게나 좋은가보다.
아직 유치원 버스 시간이 넉넉히 남은 C는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고구마도 먹고 오렌지, 복숭아,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먹는다. "아 이제 배터져 못먹어.."하고는 남은 것을 내게 내민다.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는 "아빠, 머리 빗어줘-" 하고는 돌아다닌다. 좀처럼 빗을 수가 없다. 머리를 묶어줄까 말까 물어보니 묶어 달라고 하고서도 계속 돌아다닌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묶을 수가 없다고 하니 "할머니는 그래도 잘만 묶던데!"라고...사실 어떻게 묶어줘도 유치원에 가면 선생님이 새로 해주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버스 시간이 되어 C와 함께 양양이를 데리고 나선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유치원 친구들을 만나 인사하고, 양양이도 친구 고래, 로이를 만나 으르렁(인사)한다. 버스가 떠나면 양양이와 동네 한바퀴 산책을 하고 돌아와 식탁을 치우고 커피를 내린다. 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콩을 갈고, 필터에 커피를 담아 내려 마시는데 사실 작년 말 코로나인지 독감인지에 걸린 이후로 후각과 미각이 가출해서 무슨 향인지, 맛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웬지 마시지 않으면 불안하다고나 할까...맛이 안 느껴지지만 맛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커피를 마시며 집안을 둘러본다. 역시나 엉망진창. 아무리 치워도 끝이 없으니 최소한의 청소만 하게 된다. 어지르는 사람 4명에 1마리 VS 치우는 사람 1로는 상대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치우는 쪽은 '청소는 해봤자' 패널티에 걸려 있는데 어지르는 쪽은 '아무것도 안 해도 어지럽힘' 버프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못 이긴다. 그래도 청소기는 돌리고..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한 쪽으로 밀어 놓은 뒤에 뭔가로 덮어 놓으면...깨끗해 보인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몬 드 보부아르의 '초대받은 여자'를 읽으며 오전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1시쯤 되면 보통은 '저녁을 뭘 하지'강박증이 시작된다. 오늘은 다행히 저녁메뉴까지 구상해 놓은 것이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서너시쯤 시작해서 저녁 시간에 마무리만 해서 먹으면 될 정도로 저녁 준비를 끝내 놓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C를 맞이하러 나간다. 날이 너무 덥기 때문에 놀이터는 생략하고 바로 집으로 들어와서 포도를 씻어 먹인다. 유치원에서 뭐 했냐고 물으면 "그런 것 좀 물어보지 말랬지!"하고 화를 내기 때문에 물어볼 수 없다. 그렇게 많이 물어보지도 않았던 거 같은데...
A와 B는 학교 수영부이기 때문에 수영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면 5시 30분쯤 된다. 가방 정리를 하고 잠시 숨을 고르고 나면 저녁시간. 나는 오늘 러닝크루 정기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저녁 먹을 채비만 마쳐두고 집을 나선다. 이 정도 뒷정리는 아내에게 부탁해도 무리는 아니겠지...해가 진 후라도 습기가 엄청나서 별로 달리지 않았는데도 땀이 온몸을 흠뻑 적신다. 속초의 청초호를 한바퀴 달리고 크루와 헤어진다. 차를 몰고 다시 집이 있는 양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맥주를 한 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다가 맥주를 계속 마시기도 한다...엄청나게..
그 다음은 이제 첫 줄로 돌아가서 다시 읽으면 거의 완벽하게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지난 3년간의 일상이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삶의 회의가 생기기도 했고, 난 앞으로 뭘 하지 하는 걱정과 불안에 떨기도 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지겹고, 아이들을 잘 돌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 양양으로 이사 온 3년 전의 사진 몇 장을 보니 새삼 느껴졌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내 하루하루는 정말 행복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