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to - 여행 에세이
머물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곳이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닌, 여러 번 그렇게 갔던 곳. 스쳐 지나가는 곳에게는 미안하지만 머물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마치 대기실과 같은, 그리고 메인 홀과 같은 두 도시. 오사카와 교토는 나에게 그런 장소이다.
서울에서 교토에 가기 위해서는 오사카 간사이 공항으로 들어가는 것이 시간으로나 거리로나 최적의 루트이다. 교토로 가려면 오사카를 거쳐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사카도 충분히 좋은 곳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사카는 항상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다. 머무른다고 해봤자 반나절, 아니면 하루. 이상하게도 그 이상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와 성향이 맞지 않기 때문일까. 구체적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데에는 꼭 이유가 필요 없지만,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하나쯤은 있는 법인데도, 오사카는 이상하게 나에게 그저 그렇게 별 이유 없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다.
그에 비해 교토는 도착지, 목적지, 머물고 싶은 곳이다. 나지막하고, 고즈넉하고, 정적이고, 아날로그이다.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고, 그 어디보다 일본다운 장소이지만 그 어디보다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글로벌한 도시이기도 하다. 글로벌하지만 일본다움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고, 그 고집스러움 때문에 전 세계가 사랑하는 도시. 왠지 교토는 도시라는 단어보다는 동네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나름 교토 타워도 있고 헤이안 신궁도 있으며, 엄청나게 큰 교토 역도 있는 당당한 일본 내 주요 도시 중 한 곳이다.)
혼자 간 적도 있었고, 남편과 둘이 간 적도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한 것은 지난 4월이 처음이었다. 물론 모두가 마음에 들어 했고, 나는 처음부터 그럴 줄 알고 있었다. 비행기, 도시 간 연결 기차, 토롯코 열차, 버스, 택시를 골고루 타며 뚜벅뚜벅 도시를 누볐다. 갈 곳은 정했지만 도착 시간은 정하지 않고 눈에 들어오는 곳 어디든 들리고 구경하며 천천히 잔잔하게 움직였다. 특히 일본 국보 불상이 한 곳에 모여있는 광륭사는 정말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원래 광륭사는 교토 내에서 가장 큰 절이었는데, 권력을 차지하려는 가문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과 폐불훼석으로 인해 거의 절반이 없어져 버렸고, 주변에 그대로 가옥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정말 작은 공간만 남아있는 절이 되었다. 하지만 그 상징성으로 인해 한 전각 안에 국보로 지정된 불상들이 모셔지게 되었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일본 국보 1호인 목조미륵반가상을 만나게 되었다. 마치 우리나라 금동 반가사유상을 그대로 나무로 깎은 것과 같은, 주변의 다른 불상과 확연히 다른 우아함을 뿜어내는 조용한 존재감에 그만 그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아이들도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지 한참을 바라보고 그 공간에 머물렀다. (원래는 한 공간에 절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교토 안에서도 좋은 공간에 많이 들렀지만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공간은 바로 그곳이다. 떨어지는 마지막 벚꽃을 실컷 보고 강 위를 스쳐가는 바람을 한껏 느낀 토롯코 열차도, 언제 몇 번을 와도 항상 감동적인 옛 거리와 기요미즈데라도, 눈을 푸르르게 물들여버린 치쿠린도 그 자그마한 공간이 갖는 아우라를 밀어내지 못했다. 조용한 존재감.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존재함을 드러내는 곳. 교토는 그래서 나에게 목적지가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놓고 부산스럽게 존재함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을 뿐인데 존재감이 드러나는 그런 것. 일상 속에서 여행이고 휴식이고 다 머릿속을 떠나 있을 때에도 문득, 아주 가끔씩, 의도치 않게 생각나는 그런 곳. 혼자 갔던 여름의 교토는 한증막 속을 걸어 다니는 듯 뜨거웠고, 남편과 둘이 간 겨울의 교토는 나름 매서운 추위를 뽐냈지만 다정함 만은 잃지 않았었고, 이번에 가족과 함께 간 봄의 교토는 벚꽃과 푸르름을 선물로 주었다. 이제 가을의 교토를 만날 일만 남은 건가. 가을의 교토는 누구와 함께 가게 될까 궁금해진다. 그때에도 여전히 오사카는 스쳐 지나가는 곳이 될 것 같다. 미안.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나의 목적지는 교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