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새끼 오리
요즘에야 온라인이 워낙 발달된 시대이니 검색창에 보고싶은 가수의 무대나 공연 제목만 치면 5초 이내로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24년 전, 외국 유명 가수들을 영접하려면
1. 공중파 방송사에서 녹화 혹은 생중계 해준다는 예고편을 찾아낸다.
2. 방송시간에 맞추어, 그 시간이 심지어 새벽이어도 TV를 켠다.
3. 원하는 가수가 나올때까지 기다린다.
이 세 가지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했다. 그렇게 14살 중학생 소녀는 브리트니스피어스의 한 시상식 무대를 보게 되었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2000년 미국의 Video Music awards라는 시상식의 'Oops! I did it again' 이라는 무대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노래부를 때 음정은 불안정하게 흔들렸지만 춤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처음에 양복 차림으로 나와서 조용히 노래를 시작하다가 마술쇼를 진행하듯 상자속 손과 맞추어 춤을 추더니 그 양복을 벗어 던졌다. 상상하기 힘들었던 파격적인 란제리 룩이었다. 그런데 외설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댄서들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그녀의 화려한 춤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몸으로 동작을 표현할 때 힘을 줬다 빼는 강약 조절을 정확히 하며 골반을 쉴 새 없이 흔들어 대고, 마치 감전에 당한 것 같은 몸짓을 표현해 내고 있었다.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강력함, 몸의 빠른 회전 속도는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고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무대를 압도하고 있었다.
마지막 대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상체와 머리를 상고머리 돌리듯 돌려대는 춤이었다. 인간의 몸이 어떻게 저렇게 탄성있게, 용수철이 이리 저리 휘듯이 움직일 수 있을까? 바로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따라해 보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허리를 삐끗할 뻔한 대 참사였다. 역시 그녀의 춤은 아무나 따라하는게 아니라고,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느꼈다. 다시 보고 싶은 무대였지만 재방송을 해 줄리도 없고, 녹화도 못했다. 머릿속에 잔상으로만 남았다.
때마침 그 해 여름에 부모님이 인터넷이 연결되는 컴퓨터를 사주셨다. 그 때 이후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무대 공연을 다운받아 영화 작품 감상하듯 감상했다. 실제로 나는 한시간 넘게 스토리가 전개되는 영화보다 5분 이내로 사람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가수의 공연에 더 사로잡혔고, 친구들과도 배우들보다 가수들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멋지게 무대를 수놓을 수 있는 그들을 동경했다.
이건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렸을 때, 가족 다 나가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에는 혼자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음악 테이프를 카세트 플레이어에 집어넣고 의자를 거실 중앙에 갖다놓았다.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그녀를 따라한답시고 의자 위에 홀라가서 혼자 심취한적도 많았다. 하지만 안경 쓴, 여리고 소심한 소녀는 내면에 들어있는 폭발적인 힘을 분출할 용기가 없었다.
그때는 오로지 공부만 해야하는 줄 알았고 취미로라도 이런 것을 할 수 조차 없는 줄 알았다. 엄마가 갑자기 집에 들어와서 뭐했냐고 물어볼 때 아무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해서 엄마를 답답하게 만든 딸이었다. 가족들도 춤을 향한 나의 열정을 몰랐는데 친구들이 알 리 만무했다. 나는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내 상상 속에서만 춤을 좋아하고 잘 추는 새끼 오리 한 마리였다.
출처 : 유튜브,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