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게 반했어.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새끼 오리 마냥 춤에 대한 열정과 용기를 가슴 속에 꾹꾹 눌러두었던 소녀는 어느새 대학에 입학했다. 가슴속에 꾹꾹 눌러담았던 근원모를 포부와 흐릿하지만 원대한 야망을 담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이루어진다는 착각과 기대 속에서.
그 포부와 야망과 착각과 기대 중에는 춤이라는 키워드도 있었다. 몸은 움직일 줄 몰랐지만 머리속에서는 그 누구보다 현란하고 화려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가수들 공연을 보며 그들을 막연히 동경만 하는 시절은 지나갔다. 현실에서 구체화하고 싶었다.
춤을 춰 보고 싶다는 나의 직감을 느낀 것은 대학 입학 때부터였다. 입학 OT 때 동방을 구경하면서 이 학교에는 어떤 동아리가 있는지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다. 후배들이 몰려들자 춤 동아리 방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 시작한 선배들이 생각난다. 한 언니는 상체를 예술적으로 양 옆으로 움직였고 한 오빠는 꺽기 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입이 떡 벌어졌고, 연예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선배들의 춤사위를 관람 후 그 동아리에 꽂힌 나는 바로 회원 등록을 했다. 마지막 4학년때는 공부하느라 동아리 활동을 못했다 치더라도 3년 동안은 죽자사자 그 동아리에만 매달렸다.
우리 동아리는 조금 특이했다. 내 지인 중 어떤 사람은 이상하다고 하기도 했다. 기수 간의 엄격한 규율을 굉장히 중시했으며 선배 우선 문화가 강조되었다. 그 일례로 동아리 회의 시간에 고작 신입생인 내가 의자에 앉아있었더니 “아이두야, 너 다리 많이 아프니?” 라는 짧지만 굵직한 메세지를 들었다.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윗 기수이면 언니, 오빠, 형, 누나라는 호칭을 써야 했다. 혹자는 군대식 문화라고도 했다. 군대를 갔다와 보지 않은 나는 군대식 문화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간 나는 나와 나이가 같은 사람은 말 그대로 동기,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언니나 오빠가 될 수 있었기에 위화감이나 되물음 없이 동아리에 안착할 수 있었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되고, 카리스마 있는 언니와 오빠들의 몸짓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동아리를 시작했다. 비록 의자에 앉지 못했더라도, 동아리에서 뒤치닥거리나소일거리를 도맡았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