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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Apr 06. 2024

계절의 미련

벚꽃의 계절이 왔다. 회사 옆 탄천에도 흐드러지게 피어나서, 점심시간에 팀원들과 산책을 하고 왔다. 만개한 벚꽃과 선선할 날씨가 만나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돗자리 위에서, 계단에 앉아서, 천을 따라 걸어가면서 저마다의 봄을 느끼고 있었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사람들의 물결에 따라 걷고 걷고 걷다가 조용한 벤치에 닿았다. 어느새 벚꽃은 뒤통수 너머로 희미해지고, 황량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 단풍나무들은 화려했던 가을을 잊지 못했는지, 겨울이 지나고 봄의 아름다움이 피어나고 있을 때까지도 빛바랜 잎들을 차마 떨어트리지 못하고 있었다. 흩날리는 벚꽃의 터널에도 큰 감흥이 없었던 마음이, 이 미련한 미련에는 금세 흔들렸다.


나도 아직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봄이 한 달도 더 지난 4월인데도 아직 춥다. 보통 몸에 열이 많으면 추위를 잘 안 탄다는데, 나는 몸에 열이 많은 타입인데도 추위를 엄청 탄다. 내적으로 열이 높아서 외부와의 온도차를 크게 느끼기 때문이라는데, 역시 세상 모든 건 해석하기 나름인가. 아무튼, 그래서 아직도 바닥 난방의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내 방의 봄은 언제 올까.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년의 4분의 1이 지났다. 시간 참 빨리 간다. 나 뭐 했지. 요즘 주변에서 종종 들리는 말이다. 사실 시간은 빨리 가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간은 가지 않는다. 우리의 인지가 빨리 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볼 때 풍경이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세상이 뒤로 간다고 하진 않는다. 시공간도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존재한다. 우리의 인지가 흐를 뿐이다. 그렇기에 각자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과거에서 미래로 걸어가는 속도는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게 된다.


시각장애인 김재왕 변호사는 <타인과 함께 천천히 보폭을 맞추는 삶>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타인과의 공존은 전체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속성상 효율성을 추구하고 속도를 중시하는데 이게 사실 피곤한 일이거든요. 장애인, 노인, 어린이, 임신이나 출산을 겪는 여성 등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좀 느립니다. 속도가 빠르지 않은 사람들을 포용하면서 자신의 빠르기를 좀 늦추고 주변을 둘러보며 같이 간다면 조금 덜 피곤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김재왕, <타인과 함께 천천히 보폭을 맞추는 삶>


요즘 강지님이 커버한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노래를 자주 듣는데,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 했던 건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야
침대 위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나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어

강지,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해야 우리는 과거의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답은 보폭에 있을 수도 있다. '벌써'라는 말은 내 인지가 달려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더 급하게 앞으로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가져다준다. 어쩌면 이 '벌써'라는 단어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나에게, 과거의 자신이 보내는 도움 신호이지 않을까? 시간이 빠르게 간다고 느껴질 땐, 앞이 아니라 오히려 뒤를 돌아봐야 할 때일 수도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공존하면서, 서로를 돌보면서, 같이 미래로 나아간다면, 적어도 자신에겐 떳떳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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