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 않으려 하는 일
# 외롭지 않으려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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ᅠ이 무인도에서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 것은 외로움을 더는 가장 비중있는 일이다. 외로운만큼 뭔가로 속을 달랜다. 무인도에 있는 3주의 시간은 결국 세상은 혼자란 생각을 하게 했고 먹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20일이 넘는 시간을 무인도에 혼자 있다면 무슨 일도 좋으니 규칙적으로 해야할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된다.
ᅠ다른 무엇보다 먹는 것은 매일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이었고 여기엔 준비하고 뒷처리를 하는 과정까지 포함되어 있어 혼자라는 생각을 잠시 잊게 한다. 때문에 불을 피우거나 장작을 모으는 일, 먹을 것을 잡는 것과 익기를 기다리는 것 등이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오늘도ᅠ다정한 아침을 모아 만조의 저녁까지 나는 스스로를 위한 식단을 차린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매번 세끼를 챙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지만 부지런히 몸을 놀려본다. 비상 식량으로 가져온 스프는 버티다 버티다 먹기로 했으므로 아예 보이지 않는 가방에 넣어두고 주섬주섬 첫끼를 준비한다.ᅠ
ᅠ첫주의 식단은 조촐하기 그지 없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해 배를 졸여야 했던 시간들은 나의 무기력함을 제대로 증명해주었다.ᅠ바위에 붙어 있는 고동과 나무에 대롱거리는 잭푸룻이란 과일을 먹는다. 잭푸릇도 섬의 야생원숭이가 조금 파먹어 반대쪽의 멀끔한 부분만 먹을 수 있을 뿐이다.
대게 첫주의 점심은 물에 들어가서 조개와 뿔소라, 원뿔 모양의 조개를 주워와 삶는 것이었다. 바위 틈사이로 갑오징어가 있었고 작살로 위에서 내리찍었지만 단단한 껍질 때문에 관통하지 못했다. 새벽이면 스믈스믈 해변의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게를 잡아 볶는 것이 저녁이자 야식이다. 모닥불로 달구어진 솥 안으로 게를 넣고 돌 위의 소금을 긁어 모은 뒤 간을 맞춰주는 것이 레시피의 전부. 손바닥만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물 위를 뛰어다니고 날라다녀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첫 주에 한 가장 큰 일은 어디에 고기가 많은지, 몇시부터 몇시까지가 물이 차는지와 물고기들이 많은 시간은 언제인지를 살펴보는일 뿐이었다.ᅠ
ᅠ둘째주부터는 물고기를 잡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에 바위에서 줄을 내려 낚시를 하면 이따금씩 큰 고기들이 잡혔다. 미끼는 뿔소라의 속살. 왼쪽편의 산호 군락지는 많은 고기들이 있었고 밤이면 사이사이로 잠을 청하는 고기들이 많이 보였다. 섬에 오기 전 수산시장에서 봤던 종류의 물고기들이 나와 눈을 몇 번 마주쳤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제자리를 고수한다. 다행히 이 시간에는 작살을 몇 번 빗맞춰도 고기들이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물고기의 정면보다는 위에서, 위에서 보다는 옆에서 작살을 쏴야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을 체득하는 시간. 손질한 나뭇가지에 잡은 생선을 꽂고 모닥불 옆 모래에 꽂아 고정시킨다. 구워도보고 쪄보기도 하고 회로도 먹어 본다. 마야마야라 불리는 다금바리류의 물고기나 앵무새 무늬의 생선은 회로, 쥐치와 같은 생선이나 가시복은 구워먹는 식이다.ᅠ
ᅠ셋째주는 그야말로 풍년이다. 3주라면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닌만큼 어느정도 섬의 생태를 파악하고 먹을 것을 잘 잡으며 보관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바위색과 똑같은 전복을 척척 건져올릴 경지는 아니지만 새벽녘 물이 가장 많이 찼을 때 랍스터가 해변 바위틈까지 올라온다는 것쯤은 안다. 렌턴을 비추면 주홍색의 형광눈이 바위틈에 박혀 있다. 해변 위까지 물이 차니 물에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다. 물에 들어가면 이제는 맛있었던 고기들만 잡는다. 회를 뜨고 내장을 빼는건 능숙해졌고 밤에 잡은 고기를 숯에 초벌구이를 해두어 다음날 먹는 것도 가능하다. 조개나 소라를 삶아두는 여유도, 구울 때 어느 정도의 화력을 주어야 적당히 익는지도 체득했다.ᅠ
ᅠ물론 완벽하진 않다. 바다에 한 번 나가면 여러 마리의 고기를 잡기 때문에 어망을 들고가는데 잡은 문어를 넣어두었다 놓치기도 했다. 어망의 크기에따라 문어가 제 몸의 부피를 조절해 빠져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문어를 잡으면 바다에서 머리를 바로 뒤집어 죽인 뒤 어망에 넣는다고 했다. 부리가 긴 트럼펫피쉬의 부리가 어망 밖으로 삐져나와 잠수를 하는 동안 엉덩이가 많이 찔리기도 했다. 나무 꼬챙이에 꽂아 익히던 고기가 익으면서 살이 연해져 재 속으로 떨어져 버려 눈물을 머금은적도 여러번이었다. 조개와 알리망호라 불리는 게들이 많이 서식하는 정글 늪지대인 망그로브(Mangrove) 숲. 바다와 만나는 육지의 최전방에서 숲을 형성하며 어마어마한 양의 산소를 배출한다는 망그로브 숲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한번 들어가 봤을 때 늪에 빠져 슬리퍼가 터지고 모기 수만마리와 마주했기 때문이다.ᅠ
ᅠ외롭지 않게 누군가를 떠올렸다가, 그 감정을 덜기 위해 몸을 부단히 움직였다가 마지막은 먹는 것으로 혼자를 달랬다. 내가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먹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결코 만족은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외로운 감정에 대한 만족은 외롭지 않다인데 결코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추운 겨울밤 차가운 방문을 열고 혼자 불을 켤 때처럼 먹고 나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 외로움이여서 결국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눈을 감곤 했다. 그래서 정말 평생을 이곳에 살아야 한다면 나는 무언가를 계속 먹기 위해 움직이다 지쳐 쓰러졌을 것 같다.ᅠ
ᅠ무인도에서 산다는 것은 곧 무엇인가를 계속 해야한다는 것이다. 살펴보면 해야하는 것의 절반 이상이 먹는 일이고 한끼를 먹기 위해선 때론 그 이상의 노동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이럴꺼면 차라리 먹지 않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고 다시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무언가 해야 불안하지 않고 존재의 이유를 느끼는 것이 천성인지 아니면 학습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모쪼록 지금도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외로움은 먹는것을 넘어 생존과 직결되어 결국 사람들은 외롭기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또 냉장고보다 더 크고 싱싱한 바다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ᅠ
ᅠ혼자여도 괜찮은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잠시 후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한껏 더 외로울 새벽3시부터의 밤과 아침 8시까지의 햇살까지 무엇을 할지 고민하면 될 일이다.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