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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인도사 Jul 29. 2021

무인도 생활기 연재_팔라완무인도9

베터리ᅠ

# 베터리

ᅠ      

ᅠ하루에도 몇 번이나 충전기를 꼽는 시간과 멀어져서 이곳이 좋습니다.ᅠ전파도 기지국을 찾아 헤매다 포기하는 곳. 꼭 하루의 시간이 늘어난 것 같고 그만큼 내 시간도 더디게 가는 것 같아 좋습니다. 연락처에 있는 사람들을 한분씩 떠올리고도 남는 시간이니까요.ᅠ  

    

ᅠ죽기까지 99퍼센트 남았는데요ᅠ베터리가 줄어들수록 약간의 죄책감을 느낍니다.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숫자로 표기되니 나도 같이 생기를 잃는것 같았고 잔량이 2프로에서 1프로가 되면 나도 숨이 턱 막히곤 합니다. 숨을 이어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는것 같으니까요. 마치 중환자실에 심장박동수와 함께 남은 삶이 퍼센트로 표시되는 느낌이랄까요. 핸드폰을 오래 쓰다보니 이젠 1프로가 남았을때 버티는 시간이 늘 다릅니다.ᅠ5프로에서 꺼지기도 하더니 심지어 요즘엔 20프로가 넘은 상태에서도 꺼지곤 합니다.      


ᅠ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중환자인 셈이지요. 링거를 맞듯 보조베터리에 충전선을 폰과 연결해둔 모습을 보며 늘 '내가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핸드폰도 저를 환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무인도에 오면 일부러라도 핸드폰을 꺼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무관심하게 잘 내버려 뒀습니다.ᅠ      



ᅠ하지만 이번엔 두려웠나봅니다. 베터리가 없어져 핸드폰이 꺼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바람이 거세고 먹구름이 몰려오니 배는 제날짜에 잘 들어올까로 시작된 걱정이 안테나도 잡히지 않는 핸드폰을 자꾸 만지작거리게 했습니다. 섬의 높은 곳과 해안으로 가장 툭 튀어나온 바위를 다니며 안테나에 불이 들어오는 곳을 찾아 헤맸습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마리오 히메네스가 녹음기를 들고다니며 필사적으로 세상의 소리들을 녹음하려 했던 것처럼 제게는 이 일이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정해진 날에 안들어와도 좋으니 무리해서 오지 말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섬에 들어오기 전 배를 모는 친구에게 장난삼아 꼭 제날에 데리러 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자꾸 걸렸습니다.ᅠ      


ᅠ꺼지는 순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스스로를 먼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어느 순간 죽는 것이 두려워지는 것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눈앞에서 봤을 때 나란 존재가 보잘것없다고 느껴질때처럼 문득 내게 다가온 고립은 파도만큼 높고 크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무인도에 며칠 더 있다고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섬을 나갈때쯤 이렇게 날씨가 흐려지니 세삼 더 혼자라는 느낌입니다.ᅠ

      

ᅠ팔라완의 무인도에 들어와있는 동안 꼭 연락을 해야만 하는 몇 가지 일들이 맞물려 있었긴 했습니다. 사하라 사막을 달릴 때 길잃은 나를 찾아준 호주 친구가 시드니에서 팔라완으로 온다고 했고 이번주 중으로 강의 요청을 드리겠다는 전화도 두군데 있었습니다. 보험회사에 보냈던 진단서에 병명이 비어 있어 다시 연락이 올거라 했고 이사하기 전 집으로 택배를 주문하여 주소가 바뀌었다는 내용으로 택배아저씨와의 전화도 두 번 정도 해야 했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는 곳으로 간다고 모두에게 연락을 드리고 오긴 했지만 핸드폰을 켜는 순간 이마저도 궁금해집니다. 전원을 켜면 이 모든 것들이 진동과 함께 울릴줄 알았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습니다.ᅠ      


ᅠ섬 여기저기를 두시간 가량 헤메고 다니니 베터리가 33프로로 줄어 있더군요. 핸드폰을 켜뒀다고 무인도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한건 아니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이 드는건 쫓기는 기분 때문인가 봅니다. 20프로가 넘게 있어도 언제든 꺼질 준비를 하는 핸드폰이었으므로 베터리가 줄어들때마다 압박감이 들었었습니다. 그런 압박으로부터의 해방이 있어 무인도가 좋았으면서 베터리의 67프로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소진시키는 것이 또 아쉽기만 합니다. 평소같았으면 이쯤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듯 보조베터리를 연결해 본래의 호흡을 유지하게 했을텐데 이마저도 무의미하기만 합니다.ᅠ      



ᅠ원래 저는 유독 숫자에 무감각한 편입니다. 여윳돈이 있으면 바로 써버린다거나 더치페이로 음식값을 나누어 낼때도 딱딱 나누지 못합니다. 누군가 확률이 어느정도 되냐고 물으면 몇 퍼센트라기보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란 기대 이하의 답을 내놓곤 합니다. 운전을 한다면 계기판에 몇 킬로미터를 더 달릴 수 있는지 계산된 숫자보다 연료 게이지를 보고, 무수한 통계의 오류를 알면서도 또 의심없이 신문 기사를 믿어버립니다.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정신없이 고르고 나서야 잔고를 확인한적도 한두번이 아니기도 하고요. 하지만 늘 핸드폰 베터리만큼은 촉각을 곤두세워 철저했던것 같습니다.ᅠ그래서 무인도에서만큼은 핸드폰 베터리에게도 무감각하게 지내려 노력했고 다행히 지금까지 잘 버려둔 것인데 오늘 다시 집착을 하고 있습니다.      

ᅠ67프로의 베터리가 증발하는 동안 파도는 거세져 섬을 성벽처럼 둘러쌌습니다. 쏴한 비는 섬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합니다. 하긴 이런 상황에 전화벨소리나 문자의 진동소리는 안어울리긴 합니다. 전파가 잡히고 인터넷이 된다면 어디에서든 연락하고, 일도 할 수 있으므로 무인도의 기준은 전파가 잡히지 않는 곳이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할 즈음 또 베터리가 1프로 줄었습니다. 베터리가 줄어들때마다 저는 혼자 더 먼 곳으로 떠내려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ᅠ31프로로 남기 전에 허겁지겁 전원을 꺼버렸습니다.ᅠ      

ᅠ이내 파도가 잔잔해지고 비가 그쳐 배를 타고 섬에서 나왔습니다. 항구가 보이는 순간부터 전원을 킨다면 전파가 잡힐테지만 미뤄두기로 합니다. 하염없이 울릴 진동대신 한번뿐인 마지막인 파도를 느끼기로 합니다.ᅠ



책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중


[윤승철]

주로 사람이 많지 않은 곳들을 찾아다닌다.

키르키스스탄 대초원이나 사막, 아마존, 남극 같은 곳. 그리고 무인도까지.

대한민국 실크로드 탐험대 청년탐사대장으로 실크로드의 3대 간선을 모두 횡단했고, 히말라야에 올랐으며

세계 최연소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대한민국인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환경부장관상과 헌혈유공표창, 서울특별시장상, 경희대총장상, 박영석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무인도로 떠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무인도섬테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섬과 쓰레기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 [섬마을봉사연합]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시를 전공했으며 저서로는 [달리는 청춘의 시](문광부우수도서), [여행이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공저), [마음을 만지는 만지도], [실크로드 길 위에서 길을 열다](공저) 등이 있다.

현재는 무인도체험 및 생태 프로그램 운영과 기관 및 방송 자문, 섬봉사단체 운영에 매진하고 있다. 


*무인도섬테마연구소 : www.islandlab.co.kr

**섬마을봉사연합 : www.with-ivu.com

***유튜브 채널 : 무인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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