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누구나 한번쯤 돌아가고픈, 두고 온 시절이 있을 겁니다. 다시 돌아가면 더 나은 선택을 통해 상위 버전의 삶으로 현재를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꿀 때도 있고요. 지금의 깨달음, 앎을 가지고 과거의 미숙함을 수정, 보완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 완벽에 가까운 것이 될까요? 실제 그런 가정을 픽션화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옵니다. 이런 회귀물이 인기를 끄는 데는 아마 이런 모두의 소망과 호기심, 안타까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사실이 있습니다. 내 나이를 앞질러 가는 지혜가 과연 그 순간의 행복과 몰입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요? 이 사랑의 결말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 덤비는 사랑이 순수하고 무모할 수 있을까요. 이 돈을 다 잃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피하는 사업, 투자, 모험 등이 만드는 내 삶의 이야기는 어쩌면 지루하고 다 읽어버린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 아니 이야기조차 되지 못하는 하나의 평서형 문장들의 나열이 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헤어지고, 어차피 늙어 죽을 거라는 사실을 강하게 인지하고 시작하는 그 모든 삶의 체험들이 어떤 식으로 내게 다가올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사랑하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네"라고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자본주의의 눈으로 보면 한없이 무모한, 어리석은, 치기어린 사랑 이야기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재력이나, 겉모습을 지니지 않은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일이 어떤 희생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다시 돌아가 재구성하는 "다시쓰기"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수가 열광하고 걸어가는 길에서 벗어나 그 길을 고독하게 외길로 걸을 때에 우리의 젊음이 감당해야 했던 그 고통과 더불어 그 대가로 얻게 되는 환희에 대한 아름다운 산문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경험, 그 시절에만 겪을 수 있는 어리석은 선택들, 고뇌, 좌절감들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환기할 때 다시 써지는 그 서사가 가지는 무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모든 어리석음을 소거할 때 남는 것은 결코 이야기가 될 수 없음을 온몸으로 토해내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시간은 가고 우리는 결국 어떻게든 패배하게 됩니다. 그 패배는 죽음이기도 하고, 그렇게나 거부했던 다수가 무심코 따라가게 되는 사회의 잣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차피 실패할 사랑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까요? 이 이야기는 단연코 거기에 대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항변서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넘어질 길을 다시 몇 번을 구르며 눈물로 상처로 범벅이 된 스무 살로 다시 돌아가는 일의 그 가치를 이렇게나 아름답게 영업한다면 우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밖에요.
삶이라는 것은, 언제나 모르고 함부로 덤벼야 진행되는 사랑과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네요.
다시 스무 살이 되어도 또 그 사람을 만나러 나갑니다. 그 시간들이 결국 덧없고 아픈 처절한 이별을 예비한 것이라 할지라도요. 그 슬픈 시간들이 결국 내 삶의 하나의 이야기로 자리할 것을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