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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섭 Jun 10. 2021

지금 당신은 유의미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삽질을 하고 있습니까

머릿속으로 실험을 하나 해보자. 누군가 당신에게 장난감 블록을 조립하면 3천원을 주겠다고 한다. 누구나 손쉽게 조립할 수 있는 수준이다. 블록을 완성하면 다른 블록을 주며 2천 8백원을 보상으로 제시한다. 완성된 블록이 하나하나 쌓일 때마다, 보수는 조금씩 줄어든다. 당신은 언제까지 그 일을 할 것인가? 이제 조금 다른 상황을 생각해 보자. 블록의 종류나 보상은 앞선 사례와 동일하다. 단, 이번에는 다음 블록으로 넘어갈 때마다 조금 전에 완성한 블록은 해체하는 조건이다. 당신은 언제까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삽질 / 출처 : Pixabay


이는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가 실제로 수행한 실험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전자의 경우 평균 11개를 조립한 데 비하여 후자는 평균 7개에 그친 것이다. 애리얼리 교수는 전자를 의미 있는 상태(Meaningful), 후자를 시지프스 상태(Sisyphic)라고 불렀다. 또한, 블록 조립을 좋아하는 사람은 의미 있는 상태에서 블록에 대한 호감과 완성 개수가 정적인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다시 말해 블록을 더 좋아할수록 더 많은 블록을 조립했다. 반면에 시지프스 상태에서는 호감과 완성 개수가 아무런 관계를 나타내지 않았다. 


이 실험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먼저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의미가 있고 없음은 매우 중요하다.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거창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일이 유의미하다고 느낄 때 좀 더 몰입할 수 있다. 반대로 제 아무리 열정이 넘치더라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일에 몰입하거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실험실을 떠나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 보자. COVID-19은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ESG가 경제, 정치, 사회를 아우르는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국내외 선진 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기업 구성원의 세대 교체와 맞물리며 HR 분야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회계·컨설팅 기업 EY에 따르면, 2025년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전 세계 노동 인구의 7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직장을 구할 때 눈에 보이는 처우 못지않게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계속해서 추구할 수 있을지 고려한다.  이에 구성원이 수행하는 업무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개개인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드러낸다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일에 대한 욕구와 실제 일터에서의 경험 간에는 차이가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회계·컨설팅 기업 PwC가 영국 직장인 2,000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과반수(58%)가 목적을 내세우면서도 그러한 목적에 기반하여 행동하지 않는 조직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McKinsey)가 미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서베이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응답자 대다수(82%)는 목적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 목적에 기반하여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42%에 그쳤다.


즉,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는 의미 / 출처 : Pixabay


구성원에게 일의 의미를 부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 연구에서는 담당 업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업무를 혁신하고자 하는 시도가 강조되었다. 최근에는 일 자체가 가진 속성을 넘어, 구성원이 원하는 업무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게 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리더는 일의 의미가 개인적·감정적인 요소로서 정해진 답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리더 스스로가 먼저 구성원 개개인이 중요시하는 가치에 귀를 기울이고, 조직 내에서 유의미한 업무 경험을 공유하고 되새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러한 분위기가 갖춰질 때만이 비로소 어떠한 지표를 기준으로 하여 일의 의미와 사회적 가치를 확인할 것인지, 시스템과 프로세스에는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내 영화가 돈을 벌기를 원한다. 하지만 돈은 로켓에 필요한 연료일 뿐이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로켓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다.

I want my films to make money, but money is just fuel for the rocket. What I really want to do is to go somewhere.

– 픽사(Pixar) 브래드 버드 감독 -




참고 자료


김나래·이기학「일 자유의지와 일의 의미의 관계: 자기회귀교차지연 모형을 적용한 종단관계」

Dan Ariely「What makes us feel good about our work?」

EY「Work-Life Challenges Across Generations」

McKinsey「Innovation lessons from Pixar: An interview with Oscar-winning director Brad Bird」

McKinsey「Purpose: Shifting from why to how」

PwC UK「The Purpose 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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