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아가들
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날이 2019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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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떠나면 남은 아이 역시 먼저 간 아이를 따라간다는 말이 있기에 실제로 그렇게 될까 봐 겁이 많이 났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뽀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응급실의 입퇴원을 반복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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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이러지 말라고.. 제발 조금만 더 같이 있어달라고..
뽀는 사나이다운 아량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회춘을 한 것처럼 예뻐졌고 밥도 잘 먹고 건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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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을 가는 횟수가 늘어났고, 주기도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은 많았지만, 뽀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펫시터 아줌마는 뽀를 정말 예뻐했고, 매일매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생로병사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더라고요.
회사에 있는데 아줌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뽀가 혀를 내밀었는데 청색이라고요.
급히 응급실을 가라고 하고, 저도 퇴근을 해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 날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 뽀는 링거를 맞고 있었고, 코에는 산소호흡기가 끼워져 있었지만, 분명 앉아 있었고, 저를 보고 웃었습니다. 분명 웃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울면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뽀야~ 엄마 왔어~ 잘 견뎌야 해.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게..까까 먹어야지~"
그렇게 웃는 뽀를 본 것이 마지막일 거라는 상상도 못 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또 퇴원해서 집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라 믿었었지요.
그러나 그날 밤 뽀는 자는 것처럼 제 곁을 떠났습니다.
간호사 말로는 제가 그 방을 나가자마자 뽀가 고개를 떨구며 누웠대요..
그날도 우리 가족은 코코가 떠났을 때처럼, 뚜가 떠났을 때처럼.. 그렇게 목놓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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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픔은 세월이 흐르면 옅어질 것 같지만, 모든 추억과 함께 더욱 애절하게 다가옵니다.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요..
최근에 애정 하는 동생의 아버님이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서 소천하셨고,
홍콩의 지인 두 분의 어머님도 한국에서 소천하셨습니다.
그분들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조차 없습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강아지는 영혼이 없기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는 것 알고 있지만,
어쩌면 제사라는 것도 떠난 분들을 위한 것이 아닌 남은 자들의 마음 표시이듯이,
이렇게 남아서 살아가고 있는 개 어멈은 오늘도 눈물을 삼킵니다.
우리 모두 살아 숨 쉴 때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기를...
더 많이 아껴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