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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Jul 14. 2021

돈의 노예였던 날들

오아시스 글쓰기 프로젝트의 두 번째 글 (2020.08.16)

 대학생 때 첫 용돈은 30만 원이었다. 한 달에 10만 원이 넘는 교통비와 5만 원의 휴대폰 요금을 제외한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해야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신입생이 되었으니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학교 안과 밖의 곳곳을 탐방하는 3월의 일상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재미와 별개로, 용돈을 받은 지 이주가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통장 잔고를 보니 남은 2주를, 보낸 2주와 같이 보낼 수가 없는 잔고였다. 친구들이 학교 앞에서 쇼핑을 하고 옷, 신발, 화장품 등을 구매할 때도 나는 구경만 하고 사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여느 대학보다 비싼 등록금을 자랑하는 대학에 입학했고, 내가 입학했던 학과는 대학 안에서도 타 과에 비해 더 비싼 편에 속하는 과였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퇴직이 몇 년 남지 않았고, 고등학생인 남동생도 있었기에 30만 원으로는 내 또래의 친구들과 같이 생활할 수 없었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올려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입학금 고지서를 본 부모님께서 4년의 학비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걱정하시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등록금은 부모님께 의지하더라도 생활비와 책값이라도 벌어야겠다고 시작한 나의 첫 돈 벌이는 과외였다. 이미 통학 시간만으로 4시간을 쓰고 있어, 시간당 벌이가 좋은 건 내게 과외 밖에 없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과외 3개를 학기와 병행하다 몸에 무리가 왔다. 중간고사 기간인데 몸이 너무 아파 친구들과 도서관에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부도 많이 못했는데 몸이 아픈 내가 화가 나면서도, 과외 3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서럽고 속상했다. 그 이후, 과외를 아예 그만두지는 않고 개수만 줄였다. 통장에 잔고가 쌓이는 것을 보며, 내가 모은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할 때의 설렘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다. 100만 원을 모아 계절학기 등록금을 내고, 영어 학원을 등록하고, 남은 돈으로 배우고 싶었던 춤을 배웠다. 통장의 출금 내역을 보면서 어찌나 나 자신이 뿌듯했던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았더라면 금액으로는 그게 더 크고 더 보람찬 일이었을 텐데, 눈에 보이고 손에 쥐어지는 돈의 느낌이 더 좋았던 것일까? 지난 대학생활을 돌아보면, 4년 동안 과외를 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수험 생활을 하면서도 시험 몇 주전까지도 과외를 하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시 과외를 시작했다. 수험생활을 할 때도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 혼자 힘으로 공부하려고 했고, 제일 싼 중고 수험 책들을 구입하려고 관련 인터넷 게시판을 들락날락했었다. 세일하지 않는 옷과 신발, 화장품 등을 사본 적도 없었고, 세일 상품도 구매하기까지 몇 번을 고민했는지, 식당과 카페에서 메뉴를 고를 때에도, 문구점에서 문구를 구입할 때도, 모든 나의 일상에서 돈을 생각해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진로를 고민할 때도 ‘돈’은 나의 고려 요소 중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돈에 전전긍긍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지나간 일기를 보다가, 내가 썼던 글 중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난 꼭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엄마, 아빠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걸 어찌하니.”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당시에 울면서 글을 썼었는지 글씨가 번져있었다. 전문대학원 입시에 실패하고 부모님과 언쟁을 높였던 날 쓴 일기였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했었는지 모르는 부모님이 야속해, 다른 수험생들은 돈벌이를 하지 않고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도 다 결제하고, 학교 앞에서 자취하면서 수험생활을 했다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부족한 걸 어찌하냐며 언성을 높였었다. 자식에게 부모가 능력이 부족해 그런 걸 어떡하냐고 말하는 심정을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당시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했을지 알게 되었다. 돈에 너무 전전긍긍하지 않았더라면, 서럽고 부모님이 야속해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돈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기에 너무 전전긍긍하지 말아야겠다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적으면 적은 대로,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고 요즘은 생각한다. 고정적인 월급이 들어오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물건을 살 때, 세일 상품만 들여다 보고 세일 상품도 잘 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싫었었지만 지금은 그런 내 모습이 싫지가 않다. 취업준비 시기도 길었고, 월급쟁이 생활을 한 기간도 길지 않아 모아둔 돈이 많지도 않다. 다른 일을 준비하고자 회사를 퇴사하고 일 년이 지났으니 통장 잔고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다. 집도, 직장도, 돈도 없고 미혼인데 남은 미래에 어떻게 할 거냐고 한심하게 현재의 나를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돈과 상관없이 내 삶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언젠가 또 돈에 전전긍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다. 그럼에도 지금은 돈에 전전긍긍하며 고민하고 결정했던 일들로 인해 후회하는 일들을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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