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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Feb 22. 2024

나의 캐나다 이민 이야기 2탄

도시락 싸는 캐나다 엄마

5시면 눈이 떠진다. 아침에 눈만 비비고 내려와서 남편 도시락을 싸고, 연달아 아들 셋의 도시락까지 싸야 한다. 남편이 다른 주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한식 메뉴로 점심을 싸주던 남편 도시락이 생략되어 아침이 훨씬 더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거의 10년간 한결같이 도시락을 싸고 있다.

아침에 도시락 쌀 재료가 없으면 난감하다. 별다른 메뉴가 없으면 보통은 샌드위치 식빵에 마요네즈를 펴 바르고, 로메인상추, 햄, 치즈를 올리고 샌드위치 시트지로 빵을 싼 다음 반을 갈라 도시락 통에 넣어준다. 주스팩 하나 넣고, 스낵 종류로 치즈나 크래커, 야채, 과일 몇 가지를 넣으면 된다.

파스타도 괜찮은 메뉴다. 저녁 메뉴로 파스타를 먹을 때는 다음날 도시락까지 생각해서 양을 더 많이 해서 덜어 놨다가, 다음날 아침 다시 볶아서 보온이 되는 용기에 담아서 넣어주면 된다. 파스타는 퍼지지도 않고, 학교에서 먹기 편하다.

가끔 중국마트에 파는 작은 새우 덤플링으로 만둣국을 해서 용기에 넣어줘도 인기가 있다. 간단하게 재료를 볶아서 만드는 미니 땡초 김밥이나 스프링롤을 넣어주기도 한다. 이도 저도 없을 땐 계란이랑 스팸 잘라 넣고 찬밥 넣고 굴소스 한 스푼 넣어 볶는 계란 볶음밥이 최고다.

가끔 코스코에 파는 갈릭 Naan으로 미니 피자를 만들어 길쭉하게 잘라서 넣어주면 집에 돌아온 아이들의 도시락 피드백이 좋다. 요즘엔 코스코에 반조리 냉동식품들 중에도 활용할만한 제품들이 많아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있다.

요즘 6학년인 막내는 친구들이 가끔 컵라면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면서 워낙 라면을 좋아하는 아들이 컵라면을 싸달라고 부탁하는데 아직은 그렇게 싸준 적은 없지만, 머리에 꽃 달고 다닐 만큼 바쁠 때가 오면 넣어주려나 ㅎㅎㅎ




내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급식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 때여서 아침마다 엄마들이 엄청 바빴다. 아마 캐나다 엄마들보다 훨씬 바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한국의 도시락은 밥과 반찬 종류 2가지는 기본으로 싸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 중에 형제가 5명인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 어머니께서는 아침마다 진주햄에서 나온 방망이만 한 커다란 분홍 소시지를 계란에 부쳐서 5개의 도시락통들을 주~욱 일렬로 나열한 다음 급식 배급하듯이 똑같이 숫자 맞춰 넣어 주신다는 말에 엄청 웃었다. 그때 유행하던 것 중 하나는 사각 도시락통에 밥을 넣은 후 계란지단을 얇게 부쳐서 밥 위에 노란 이불처럼 덮어주고 케첩을 뿌려주는 것이었다. 계란말이를 싸가면 친구들이 하나씩 집어 먹어버려 금방 없어지니까, 밥 위에다 얇게 펴서 올려주면 자기 자식이 온전히 다 먹을 수 있겠다 생각하신 거 아닐까? ㅎㅎ

인기 있는 반찬은 동그랑땡, 소시지, 쥐포무침, 감자볶음 등등이었고, 가끔 솜씨 좋은 엄마를 둔 친구들은 장조림 반찬이나 잡채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같이 먹자며 아주 인기가 폭발이었다.

우리 엄마도 일하시면서 세 아이들의 도시락을 싸느라 얼마나 분주했을까?

분주해도 도시락이 좀 만 이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내 도시락은 인기가 없었다. ㅎㅎ

한 번은 도시락의 반찬통을 여는데, 시커먼 고사리 나물이 잔뜩 들어있다가 튀어나와서 너무나도 부끄러워 얼른 반찬통을 닫아버린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고사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뭘 해도 아기자기 이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장사하시느라 바쁘셔서 집에서 먹던 색이 진한  반찬이나 나물류를 급하게 넣어주시거나 하셨으니,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을 위한 이쁜 도시락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나마 감자볶음, 멸치볶음은 고급이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 어떤 걸 하든지 비주얼을 중요시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한국 아이들에게는 급식이란 게 생겨서 여러 가지 메뉴를 다양하게 먹고, 덕분에 엄마들이 편해져서 좋은 것 같다. 나나 우리 아이들은 급식을 전혀 누리지 못했기에 그건 참 부럽다.


이민의 나라 캐나다에서는 급식이 생길 수 없는 구조다. 워낙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도 너무 많으니 그걸 학교에서 일일이 체크하고 맞춰서 메뉴를 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특별식으로 미리 주문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두어서 다양한 푸드 프랜차이즈에서 제공하는 햄버거, 샌드위치, 피자 등을 시켜 먹을 수 있다. 그날은 엄마들이 도시락에서 해방되는 이며, 아침 커피도 여유롭고 더 맛있다 ㅎㅎ


처음 서스캐처원 리자이나라는 도시에 이민을 갔을 때는 한 번도 안 본 아이들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해서 참 난감했었다. 어떤 걸 싸야 할지도 몰라 검색도 해보았고, 혹시라도 냄새가 나는 한식은 엄두도 못 냈다.

그때는 샌드위치를 하나 싸더라도, 로메인 상추, 오이, 토마토(샌드위치가 젖으니 물기도 다 빼고), 베이컨, 햄, 치즈 등 하나라도 빼지 않고 뚱뚱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냈다. 샌드위치 종류도 어떤 날은 감자를 으깨어 당근, 오이 등을 절여 넣어 감자샐러드를 넣고, 어떤 날은 계란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었다. 반잘라서 이쁜 단면이 나오게 꼭 맞는 통에다 넣어 보냈다. 빵 종류도 지겹지 않게 늘 변화를 주었다. 가끔 김밥을 싸서 보내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필리핀 아이들이  치킨하나랑 김밥 한알을 바꿔먹자고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볶음밥을 할 때도 색깔을 중시해서 최소 3가지 이상의 채소는 넣어서 볶아 주었다. 간식으로 사과를 싸줄 때는 색이 변하지 않기 위해 설탕물에 담가놨다가 보내 줄 만큼 정성을 들였다.

하루는 큰 애가 자기 샌드위치를 반 아이들이 아주 특별하게 본다는 거다. Jackson's special sandwich라면서 이름을 붙여 줬단다. 알고 보니, 여기 아이들은 진짜 심플하게 샌드위치에 상추 하나, 햄 하나, 치즈만 넣어서 오거나 아예 잼이나 누텔라만 발라서 싸 오는 아이들도 많으며, 10대가 되면 엄마들이 싸주지 않고, 자기가 먹고 싶은 걸 직접 싸서 오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집 샌드위치가 조금은 특별해 보였나 보다.

그렇지만 아무리 내가 정성을 들인다 해도 한국의 80년대 엄마들의 도시락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침에 기름에 지지고 볶고, 정성스레 밥과 반찬을 꾹꾹 눌러 담아주셨던 엄마들의 정성에 비할 수가 없다.


이제는 도시락 10년 차가 되다 보니 갈변되는 사과는 아예 넣지 않는 영민함을 선택하고, 샌드위치의 내용물도 많이 간소해졌다. 나름 친구들 도시락과 비슷해지자 하는 마인드로 바뀌는 거라며 그저 나의 편리함을 애써 변호해 본다.


오늘은 불고기를 볶아 로메인 상추와 함께 불고기 크로와상 샌드위치를 만들어줬는데, 학교 다녀온 세 녀석들에게 오늘 점심 너~~~ 무 맛있었어요~ 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ㅎㅎ

너~~ 무가 아주 길면 길수록 맛있었다는 의미다.

그럼 또 그게 뭐라고 아주 보람되다.


도시락 싸는 캐나다 엄마들.. 이거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거다.

어쨌든 힘내자!  (난 아직 6년은 남은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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