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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Jun 24. 2024

제주도.. 그리고 김건모

나의 특별했던 그때 그 앨범

나에게 최애곡을 하나만 고르라면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해마다 최애곡이 새롭게 생겨나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OST에 끌려 작품이 끝난 지 한참 뒤에도 닳고 닳도록 듣고 다니는 성향인 나인데 어떻게 한곡을 고르지?

내 음악 취향은 여전히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다. 영화 라라랜드 OST는 1번부터 마지막 곡까지 다 좋아하는 앨범이고, 가디언즈 어브 갤럭시 OST는 한때 우리 가족의 주말 아침을 책임져주었다. BTS 앨범들은 전 앨범, 전 수록곡들을 다 알며 운전할 때 골라가며 듣는다. 최근 여자 아이돌 중에는 뉴진스 곡이 좋다. 힙합도 워낙 좋아해서 우리 애들의 Spotify playlist에 올라와 있는 아주 힙곡들함께 즐겨 듣는다. Sunflower, Peaches 같은 리드미컬한 곡을 좋아하며, 70/80년대 올드팝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좋. 한때 마이클 잭슨, 조지 마이클, 휘트니 휴스턴의 광팬이었고, 들국화, 김현식, 김광석, 김장훈, 이은미, 이문세 콘서트는 빠지지 않고 보러 다녔다. 성시경표 발라드는 내 노래방 애창곡들이었으며, 지금도 첫 소절부터 여전히 설렌다. 요즘은 성시경의 뒤를 이어 싱어게인 3 나왔던 소수빈의 목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수들 노래뿐 아니라, 뉴에이지 앨범의 피아노 연주곡들도 좋아하고, 피아노뿐 아니라 일본 기타 듀엣인 데파페페의 기타 연주곡들도 즐겨 들었었다.

나는 결론적으로 그다지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을 좋아하는 리스너이자, (단, 트로트는 아무리 노력해도 끌리지가 않는다) 또 부르기도 좋아하는 사람이다.(이제는 노래실력이 형편없어져서 슬프지만 ㅜㅜ)


최애곡을 하나만 고르는 것은 이쯤에서 포기하고, 그저 어떤 특별한 노래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해 보련다.

얼마 전 북클럽 모임 때 우리가 살면서 어떠한 시점을 기억할 때 그 당시 듣던 노래, 일어난 사건등을 시점으로 기억하게 되더라는 대화를 나누며 크게 공감했었다. 나도 잠깐 내 일화를 들려주었었는데, 2001년 여름..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의 이야기다.

 

건희, 정은, 그리고 나 셋은 함께 여행을 참 많이 다녔었다. 대학졸업 후 27살에 만난 친구들인데, 만나자마자 아주 찰떡처럼 통했고, 셋이 만나면 늘 배꼽 빠지게 웃었다. 서로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웃음 포인트가 더 많았다.

건희가 알고 지냈던 혜진언니는 당시 제주도 어느 실업 고등학교에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름 방학 때 여행을 온다면, 그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게 해 줄 수 있으니 놀러 오라고 몇 번 이야기를 했다. 혜진 언니가 일하는 낮동안은 언니 차도 맘껏 쓰게 해 주겠다는 옵션도 함께.

우리는 이런 기회는 놓칠 수 없다며, 신나게 여행 준비를 하고 제주로 출발했다. 부푼 마음으로 공항에 내려, 언니가 일하는 학교 기숙사로 짐을 풀러 갔다. 학교 기숙사 건물은 방학이라 학생은커녕 개미새끼하나 보이지 않았고, 우리가 이 건물을 통째 전세 냈네 하면서 우리끼리 농담하며, 날씨마저 최상의 조건이었던 행운을 누리며 여행을 시작했다.

언니가 그때 우리에게 빌려준 자동차는 예전에는 회장님들만 탔다는 1세대 각그렌져. 지금 보면 레트로의 끝판왕이었을법한 자동차인데, 당시만 해도 각그렌져는 한물간 자동차였다. 내가 과연 저걸 몰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올드카로 보였다. 운전을 할 줄 아는 건희와 내가 나눠서 운전을 하기로 하고, 내가 먼저 핸들을 잡고 도로로 나왔다. 뭐가 됐든 제주도의 뻥 뚫린 해안 도로를 처음으로 달려 본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흥분했고, 이 멋진 드라이브에 음악이 빠질 수가 없지~ 하며 차에 꽂혀있던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보았다.

그때 혜진언니가 했던 한마디 당부가 생각났다.

"자동차 스테레오 안에 카세트테이프가 하나 꽂혀있긴 한데, 고장이 나서 뺄 수가 없어. 다른 테이프로 교체가 안 돼. 음악 들으려면 그거만 들어야 됨!"

우리는 무슨 노래인지도 모른 채 일단 테이프를 틀어보았다. 김건모였다. 김건모의 유명한 노래들은 대부분 아는데, 이 앨범 곡들은 처음 들어본 조금 생소한 곡들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대체할 수 있는 음악이 없으니 하루종일 그 카세트테이프와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 처음 듣던 곡들도 익숙해져서 흥얼거리게 되고, 앨범 중에 나름 좋아하는 곡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나중엔 후렴구 가사정도는 외워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특히, 조금 빠른 곡인 "기분 좋은 날" "괜찮아요" "Mr. Flower"가 나오면 갑자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떼창이 시작되었다. 그 순간 우리들의 도파민 수치는 최상이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찾아보니 우리가 틀었던 앨범은 곡의 퀄리티에 비해 앨범 판매가 저조해서, 비운의 명반이라 불리는 김건모 6집이었다. 이렇게 좋은 곡들이 왜 인기가 없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루종일 차를 몰고 다니면서 그 테이프를 몇 번이나 돌려 들었는지 나중엔 현타가 와서 "야~ 우리 도대체 이 노래 몇 번째야?" 하면서 웃었다. 저녁 즈음이 되어서 혜진 언니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지겨울 정도로 듣고 또 들은 그 테이프 이야기로 우리는 또다시 배꼽 빠지게 웃었다.

기숙사로 다시 돌아온 우리. 그러나 아뿔싸.. 그 기숙사는 밤이 되면 여고괴담에 나오는 복도가 생각나는 곳이었던 거다. 그 큰 건물에 달랑 우리 여자 셋뿐인 데다가 씻을 수 있는 목욕탕은 따로 떨어져 복도 끝으로 가야 했다. 건희는 용감하게도 혼자서 냉큼 다녀오고, 겁 많은 정은이랑 나는 함께 물대야로 물을 퍼서 목욕을 하는데 커다란 공간에서 첨벙첨벙 물소리만 너무 크게 울려서 어찌나 무섭던지 후다닥 씻고 뛰어온 기억이 난다~

김건모 6집 앨범, 특히나 3번째 곡 "기분 좋은 날"을 들으면, 2001년도의 제주도 해안도로, 협재 해수욕장, 유부초밥 만들어먹고 자전거 타던 우도, 각그렌져 타고 드라이빙하며 목청껏 김건모 노래를 따라 부르던 우리들의 모습이 그냥 눈앞에 주르륵 펼쳐진다.


옛 추억에 잠겨 건희에게 우리 제주도 갔을 때 들었던 김건모 앨범 기억나? 했더니

김건모를 들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이런 젠장 ㅜㅜ

유튜브에서 "기분 좋은 날" 노래를 찾아서 공유해 주니... 그제야 기억이 난다고..

그리고 덧붙이는 말 "우리 더 많이 여행 다닐걸... 후회되네"


글을 쓰다 이렇게 잊힌 기억들을 소환할 수 있다니..

다시 그 노래도 찾아 듣게 되고.. 지금 다시 읊어보는 가사는 그때 마음과는 또 다른...

왠지 뭉클해지는 밤이다.


"기분 좋은 날" - 김건모 6집 수록곡-


어쩐지 좋았어 오늘은 왠지 뭔가 좋은 일이 있어 줄 것만 같은 기분이야

여행을 떠날까 이제껏 내가 바래왔던 일들 오늘 하루에 모두 걸어볼까

쇼윈도에 비친 사람들 너무 너무나 행복해 보여

나만이 간직한 추억이 되살아 날 때면

눈물이 많던 그 소녈 울리던 내 어린 시절 자꾸만 떠오르는데

돌아봐요 우리가 잊고 지낸 사랑 느껴봐요

언제나 함께 했던 기억 잊지 않게

되돌아갈 순 없지만 이젠 결코 외롭진 않아


참 좋은 날이죠 언제나 지금처럼만 하루를 시작할 수만 있다면 행운인걸

햇살이 가득해 혼자 있어도 괜찮을 거야 누구도 이런 기분 모를 거야

지나치는 저 담장 너머로 시끄런 교정을 바라보면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내 어린 시절

선생님 눈을 피해서 짓궂은 장난을 치던 그때가 떠오르는데

돌아봐요 힘들게 느껴질 때면 한번 생각해요

아무런 걱정 없었던 그 시간들을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나만의 추억들


생각하면 너무 그리워 난 눈물이 나

아주 잠시라도 되돌아가고 싶은 내 지난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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