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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Jun 17. 2024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커피를 즐겨마시고 좋아한다.

아침에 눈뜨면 책을 읽고, 아이 도시락을 싸고, 그러고 나서는 조금 여유가 생길 즈음에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는데 그건 일종의 주문과도 같은 것이다. 오늘 하루를 잘 지내기 위한 첫 스타트와도 같은..


커피를 언제부터 마셨나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 자판기로 사 먹던 밀크 커피가 처음이었던 거 같다. 100원이면 마실 수 있던 저렴이 커피였지만, 에이스 크래커 하나를 사서 찍어먹으면 한 끼 식사가 될 정도로 배가 든든했다. 괜스레 종이컵에 담긴 커피 한잔은 낭만이 있었고,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고3 시절, 야자시간에 몰래 나와 마시는 커피 한잔은 자유였다. 독서실에서 친구꺼 한잔, 내꺼 한잔 서로 정을 나누기도 좋았다.

한동안, 커피믹스가 유행처럼 인기를 끌면서는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인스턴트커피를 주로 마시다가, 커피숍에 드나들게 될 즈음 알게 된 아메리카노 맛에 달달한 믹스 커피를 마시는 일이 자연스레 뜸해졌다.

나는 설탕, 크림은 전혀 넣지 않는 아메리카노가 좋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로지 커피콩으로만 걸러낸 보기에도 사약 같은 검은 커피가 왜 그렇게 맛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중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가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일본 가정식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와 그곳에서 알게 된 여성들이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이다. 사치에가 커피를 주문받아 핸드 드립을 할때 커피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코피루왁"이라고 중얼거리며 일종의 자기 암시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온전히 커피를 내리는데 집중하며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그 장면이 내겐 아주 인상깊었다.   

셋째 동욱이를 가졌을 때였나 보다. 육아에 지친 어느 날, 친구와 통화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드르륵 원두를 갈고 있는 소리에 한순간에 나의 뇌가 깨어나며 카모메 식당의 코피루왁 장면이 떠올랐다. 그 즉시 뇌로 전달된 신호는 맛있는 커피 한잔을 당장 먹어야 한다는 명령어였다. 과장이 아니고, 정말 그랬다. 그날부터 좀 더 맛있는 커피를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싶은 마음에 핸드 드립 커피를 위한 기본 입문 장비들을 들이고,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 및 공부를 한 후 직접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 보았다.

당시 주문했던 핸드드립 입문 장비들

핸드 드립 커피는 커피 메이커로 내려 마시던 일반 커피와는 차원이 달랐다. 혀끝에 닿는 느낌이 훨씬 풍부하고 리치했으며 진했다. 드리퍼, 서버, 잔 데우기를 하고, 뜸 들이기 후 물의 추출 속도, 온도, 물 내리는 시간 등을 계산해야 하며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레시피에 따라 또, 원두에 따라 신맛, 단맛 나는 커피를 골라 마셔볼 수 있다. 특히나, 신선한 원두를 사와서 직접 갈다 보면 집안에 퍼지는 원두향에 한번 취하고, 그 원두로 내린 진한 커피향에 또 한 번 취하게 된다. 이렇게 로스팅한 지 2주 내의 신선한 원두를 사와 정성들여 내린 크레마 풍부한 커피를 한잔 마시면 짜릿한 감동과 함께 몸은 벌써 이태리의 작은 커피숍에 가있는 기분이 든다. 그 당시는 신선한 원두를 매번 사 먹기가 부담스러워 생원두를 사서 집에서 직접 레스팅을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원두를 수동으로 가는 것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맛의 차이가 난다고 해서 늘 수동으로 갈아 마셨지만, 사실 이게 보통 귀찮은 게 아니다. 전동으로 휘리릭 버튼만 누르면 끝인데, 수동으로 갈다 보면, 두 잔 분량만 되어도 팔이 떨어져 나가고 이마에 땀이 난다. 특히나, 아침 일찍 곧바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다 만들어질 때까지 인내를 요하는 방법이다.

핸드 드립이 주는 맛은 너무나 고품격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탓에, 결국 바쁜 아침에 마시는 모닝커피를 위해서 타협한 것이 비알레띠였다.

이태리 가정집에는 냄비처럼 사이즈별로 다 갖추고 있다는 비알레띠는 가성비 및 편리함으로 따지자면 최고의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는 도구다. 평생 고장 날 걱정 없는 에스프레소 장비인 셈이다.

멋들어진 고가의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에 대한 온갖 유혹을 떨쳐 버리고 한동안 비알레띠 하나로 쭈욱 만족하며 살고 있었는데, 또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놈의 게으름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아침에 비알레띠보다 좀 더 신속하고 빠르게 카페인을 섭취하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버튼하나만 누르면 크레마 가득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는 네스프레소 캡슐 머신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편리함을 쫓다 보니 욕심 하나를 더 들여놓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캡슐 머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세 달 만에 고장이 나서는 현재는 repair center에 가있다. 어쩌다보니 나의 아침은 현재 다시 비알레띠로 돌아왔다.


한국에 살때는 부모님 댁에 가면 무조건 달달구리 맥심 커피믹스로 입가심을 하게 된다. 엄마는 밀크 커피보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서 특별히 맥심에서 나온 가루 커피를 넣어서 연한 블랙커피를 만들어주시곤 하셨다. 약간 보리차 느낌도 나는 정겨운 엄마표 커피였다.

아버지는 우리 친정 근처에 있던 신라 대학교를 거쳐서 올라가는 등산로로 아침마다 약수터를 다니셨다. 그곳에 가실 때마다 학교 건물 1층에서 뽑아 먹는 자판기 커피를 너무 좋아하셨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자판기마다 커피맛이 다 다르다. 아버지가 그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워낙 자주 하셔서, 나도 한번 아버지를 따라 약수터에 갔다가 아버지가 뽑아주신 커피를 마셔보았다. 아버지 말이 빈말이 아니라, 확실히 다른 커피에 비해 왠지 더 진하고 맛있었다. 아버지는 본인이 즐겨 마시는 커피를 막내딸도 인정해 준다는 것에 기분 좋으셨던지, 환하게 웃으시던 그날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니, 그마저도 못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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