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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h J Jun 30. 2024

다락방의 기억

나는 평소 잠을 잘 자는 편이라 이것 또한 복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다.

여행을 가서 갑자기 잠자리가 달라지거나,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고 밤 10시가 되면 일단 하품이 쏟아진다. 시차적응에도 힘든 경우가 별로 없었다. 캐나다에서 열몇 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더라도 도착한 그날부터 바로 한국 밤시간에 적응해 잠이 온다. 다시 캐나다에 돌아와서도 시차 때문에 밤낮이 바뀐다거나 밤잠을 설치는 일도 딱히 없다.

소리나 빛으로 인해 방해받는 경우는 예외다. 캠핑사이트가 기차역 바로 옆이어서 밤새 기차소리를 내던 캠핑장에서는 아주 고된 밤을 보냈었다. 한국 찜질방에서 여행 중 1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밤새 틀어둔 오락기의 윙윙소리, 완전히 꺼지지 않은 불빛으로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새운 적도 있다.

이런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자는 편이다.


엄마는 늘 내가 어릴 때 베개만 베면 잠을 잘 자고, 한번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는 아이였다고 말씀하신다. 갓난아기였을 때조차 한 번도 힘든 적 없이 순했다며 나를 거저 키웠다고 하신다. 하도 오래 자서 일부러 깨워보기도 할 정도로 순둥이어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아기가 있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갓난아기가 하도 잘 자니 엄마가 밖에 잘 데리고 나가질 않아서 피부가 엄청 뽀얗고 하얘서 별명이 백설기였단다. 그 순둥함 덕에 납작한 뒤통수를 갖게 되긴 했지만 ㅠㅠ 라리 엄마를 좀 괴롭혀서 동그랗고 볼록한 뒤통수를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만 ㅎㅎ 게다가 지금 내 얼굴은 뽀얀 피부와는 거리가 먼 오히려 까무잡잡한 편에 속한다.


평생 잠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것 같은 나도 한때 잠자기가 엄청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현재의 친정집으로 이사를 왔었다. 당시 새롭게 지어진 단독주택이었는데 80년대 벽돌식 2층 양옥집에 가장 많은 구조였던, 거실 중간에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는 2층 다락방이 있는 집이다. 천장이 많이 낮았던 그 다락방은 왠지 아늑해 보이고 좋아서 언니와 내가 같이 자는 방으로 골랐었다.

그런데, 그 방에서 잠을 잘 때면 나는 유독 가위를 많이 눌렸다. 눈을 감으면 뭔가 모를 찌르르 한 느낌에 갑자기 손가락조차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몸이 마비된 듯 옴짝 달짝 못하게 된 내가 다시 눈을 뜨고 싶어 아무리 용을 써도 눈이 떠지지가 않고, 엄마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목소리가 안 나왔다. 겨우겨우 힘을 내 악~ 소리와 함께 잠에서 빠져나와 눈을 뜨면 깜깜한 밤이었고, 옆에는 언니가 자고 있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 언니 등에 꼭 달라붙어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 눈을 감을 때마다 다시 그 느낌이 되살아나는 거 같아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밤새 그러기를 여러 번 하다 지쳐서 겨우 잠이 들곤 했다. 손을 가슴에 얹고 자면 가위를 눌리기 쉽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도 조심해 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몇 년을 그 방에서 지내다가 오빠가 결혼하고 분가를 하게 되면서, 내가 오빠방을 차지하게 되었다. (언니는 계속 다락방에 남았다) 다락방을 떠나게 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가위눌리는 일이 없었다. 아마도 그 다락방의 터가 안 좋았을 거라 믿었다.


언니가 몇 년 전 캐나다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우리 자매는 옛날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한참 수다를 떨다, 내가 다락방에서 가위눌려 힘들었던 기억을 이야기했더니, 언니는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 할머니를 봤잖아. 한 번은 내가 자고 있는데 내 가슴 위에 앉아 계시더라고"


악~~ 이게 무슨 말이야!!


그 다락방은 참으로 신기한 기운이 흐르는 곳이었던 거 같다.

언니는 그 방에서 혼자 지내면서 별별 체험을 다했는데, 가위눌리는 주범이었던 그 할머니를 만난 것부터 시작해서 어느 날은 책상에서 어떤 이유로 울고 있던 언니를 뒤에서 안아주는 하나님을 만났다나? 언니가 20대 대학생이었을때, 아주 방황하고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언니 등 뒤에서 꼭 안아주시며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는 그날 이후, 언니는 혼자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우리 집은 불교집안이다. 나는 종교가 없긴 하지만)

그 뒤로는 언니는 다락방에서 잠을 자도 가위 눌리는 일 따위는 없어졌다고 한다.

언니는 그후로 지금까지도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우리 집에서는 유일하게 기독교다. 언니집에 가면 매일 새벽 찬송가가 들리고, 말씀을 전하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늘 내 카톡에 "사랑한다 정희야~ 매일 기도하고 있어" 하면서 하트를 날리고,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할렐루야~!"를 외치는 언니다.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그 다락방을 올라가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과 유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엄마가 그 옷들을 정리하고 계셨다. 예전보다 훨씬 작아 보이고, 어두워 보이는 그 다락방이 나는 전보다 더 음산해 보여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 방에서 잠도 자나?"

"내는 여기서 잘 때도 있고, 아랫방 침대서도 자고~ 더울 때는 거실에 시원한 매트하나만 깔고 자지. 엄마는 어디서도 잘 자고 베개만 베면 9시에 잔다아이가~"

"엄마, 다락방에서 가위 눌러본 적 없나?"

"가위는 무신~~ 내는 잠만 잘 오드만~~"


엄마는 불심으로 물리치셨나?

ㅎㅎㅎ 어쨌든 내가 잠을 잘 자는 건 그저 엄마의 유전자 덕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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