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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by 고들정희

얼마 전 강주은의 유튜브 채널을 보았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결혼 전까지 살았던 캐나다 토론토의 동네를 다시 찾은 영상이었다. 지금은 다른 주인이 살고 있는 옛 집앞을 찾아가서 추억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다셨다는 가라지 전등, 가제보, 창가의 꽃 화분걸이등이 여전히 있었고, 집 앞 아스팔트 위에는 그녀가 어릴 때 새겨둔 J 이니셜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과 놀았던 비치와 비치 앞 노천상점들을 따라가다 그녀는 그만 그 길 위에서 울컥해 버렸다. 결혼과 함께 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해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한다. 오랜만에 들른 swiss chalet 식당에서 어릴 적 먹던 닭고기를 특제 소스에 찍어먹으며, 닭고기 맛 하나만으로도 시간 여행을 한 것 같은 마음에 울컥해하는 주은 씨.


캐나다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한 집에서 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녀 역시 초등학교부터 결혼 전까지 같은 집에서 살았고, 그래서 모든 추억이 그 집과 동네 곳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40살이 넘어서 캐나다로 이민 왔다. 캘거리로 이사오기 전, 사스카츄완주 리자이나에서 4년을 살았다. 지금 살고 있는 캘거리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보낸 곳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보내며 많은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리자이나에 처음 정착해 살았던 집은 8 가구가 붙어 있는 작은 타운하우스였다. 막내 동욱이는 기저귀를 차던 두 살 무렵부터 집 앞 유지원에 다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막내는 그곳에서 놀던 어릴 때의 기억을 생생히 기억하며, 가끔 리자이나 이야기를 하면 "아~ 그때 너무 좋았는데" 라며 그리워 하곤한다.

우리집은 거실 창이 두면으로 나있어, 북향이었지만 볕도 잘 들어오고 밝았고, 여름엔 에어컨을 켠 듯 시원했다. 열 발자국 거리에 있는 파크는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해질 때까지 잔디에서 구르며 놀았다.

타운하우스에는 또래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어, 눈뜨면 곧장 테라스로 나가 소꿉장난하고, 동네 아이들과 햇살 아래 테라스 의자에 앉아 비눗방울, 물총놀이, 그림 그리기로 하루를 다 보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던 시절이다.


특히, 큰아이 준혁이는 친구들과 자전거 부대를 결성해 집 앞 잔디파크의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마치 영화 ET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자전거를 탔다. 그 시절의 준혁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얼굴이 밝고 좋았다. 6학년 무렵, 꽤 끈끈한사이가 된 친구들이 생기고, 친구들과의 만남에 설레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제는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은 나이가 되었구나"를 새삼 느꼈었다.


4년 후, 우리는 영주권을 따고, 캘거리로 이사했다. 그때는 다시 처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친구 관계도 모두 리셋이 되었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학교, 그리고 조금 더 커진 집..

동욱이는 1학년, 승환이는 4학년, 준혁이는 중학교 1학년.

둘째와 셋째는 어려서 금세 적응했지만, 큰아이 준혁이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중학교 때 전학 가서 새로운 친구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당시엔 어쩔 수 없었지만, 한해만 일찍 캘거리로 이사를 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생각이 든다.

그때까지 엄마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모든 것을 이해해 주던 사려깊은 큰아이 준혁이는 캘거리에 와서 조금 말이 없어졌고,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으며, 엄마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말은 안했지만, 편하고 잘 맞는 친구들을 사귀는데도 조금 시간이 걸렸던 듯하다. 다행히 중학교때 만나,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생겼고, 이제는 대학을 다니는 청년이 되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 리자이나에서 밝게 웃던 준혁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

그때가 참 그립다. 아니, 그때 그 스윗보이였던, 엄마를 보면 늘 활짝 웃던 준혁이의 웃음이 참 그립다.

무뚝뚝해진 준혁이가 얼마 전 입양한 골든두들 데이지에게는 참 상냥하게 대해준다.

아침마다 데이지에게 와서 인사를 나누고 가는 걸 보면, 왠지 다행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살짝 아리는 건 왜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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