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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이야기: 새끼 골든두들 키우기

by 고들정희

새끼 골든두들, 데이지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보름째 되는 날.

평소처럼 5시에 일어나 데이지 펜스로 가서 인사를 하러 갔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자기 공간 안에서는 절대 응가를 하지 않는 아이인데, 배드옆 발매트 위에 뭔가를 쏟아놨다. 색을 보니 응가와는 다르게 연하며, 모양도 좀 다른걸 보니 아무래도 전 날 먹은 것을 토한 것 같다. 소화가 잘 안 되었는지 사료가 그대로 뭉쳐 나와 있었다. 사실 낮에도 매트 위에 비슷한 것이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응가 실수를 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그때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너무 급하게 먹은 걸까? 게다가 화장실 안 배변패드 위에는 여러 번의 설사 흔적까지 있다. 밤에 가끔 쉬를 해놓는 경우는 있지만, 응가는 보통 아침에 마당에 나가서 하는데, 밤새 속이 안 좋았던 걸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데이지가 혹시 아픈 건 아닐까?


태어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골든리트리버는 덩치는 커 보여도 아직 아기다.(엄청난 점프력이나 발버둥 치는 힘을 본다면 믿기지 않겠지만!) 면역력이 완전하지 않기에 큰 공원에 가는 건 피해야 하고, 체력도 약하고 체온유지도 아직 잘하지 못하는 퍼피이기 때문에, 하네스 훈련 겸 산책도 집 앞에서만 15분 정도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조심할 것들을 피하고, 나름 잘 케어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산책할 때나, 마당에서 다른 동물들의 배설물을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워낙 뭐든 입에 넣는 걸 좋아하는 아기 강아지이고, 아직 백신도 다 맞지 않았으니 기생충이나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도 크다. 머릿속에 온갖 걱정이 스쳐 갔다. 아직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본 적도 없는데, 많이 아프면 어쩌지? 갑작스러운 걱정에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새벽부터 식은땀이 흘렀다.


그제야 생생하게 현실감이 느껴졌다. 미래에 맛보게 될 인형처럼 예쁘고 든든한 대형견의 로망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생명 덩어리, 말 못 하는 동물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이렇게 막대한 책임감을 져야 하는 존재를, 깊은 고민 없이 선뜻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다. 내가 앞으로 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아들 셋을 키우면서, 어릴 때 어디가 아프거나, 열이라도 나면 말 못 하는 아기 때는 얼마나 답답한가. 어디가 안 좋은지 모르니 밤새 불덩이 아이를 업고 잠을 설치고, 열을 재고, 병원에 가서 맘을 졸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퍼피 또한 그런 아기를 키우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


우선 당황하지 말고 내가 먼저 차분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AI에게 도움을 청했다. 토사물과 변의 사진을 올리고 증상을 설명했다. 몇 가지 가능성 중 사료를 급하게 먹고 소화가 안 된 것 같다는 추측이 맞는 것 같았다. 아직 소화력이 약한 퍼피에게는 사료를 물에 불려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데이지가 퍼피 사료를 먹을 때 과자 먹듯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내며 씹어 먹는 것이 늘 신기하고 재미있다고만 생각만 했는데, 그걸 불려서 줄 생각을 못했다니. 그래서 그런 걸까. 가끔 밥을 먹다가 나를 쳐다보며 먹는 걸 중단하거나, 몇 번에 걸쳐서 먹을 때도 있고, 다 먹고 나서 딸꾹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혹시라도 열이 나거나, 피 섞인 변이 보이거나 계속 설사를 해서 힘이 없어 보이면 바로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좋다는데, 다행히 평소보다 힘은 없어 보이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아 마음이 놓였다. 전날 먹은 것을 게워내고 설사까지 했으니, 속을 진정시켜야 해서 일단 아침 첫끼는 금식하기로 했다.

첫끼를 건너뛰고 두 번째 식사 때부터 닭가슴살을 삶아서 가늘게 찢어서 밥과 닭고기 삶은 육수를 조금 섞어 주었다. 급하게 먹다 체하지 않게, 닭가슴살은 손톱 크기로 작게 하고, 밥은 살짝 진 밥으로 만들어 속을 달랬다. 데이지는 첫끼에 금식을 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나. 처음으로 먹어 본 닭가슴살밥을 게눈 감추듯 싹 다 먹어 치웠다. 다행히 내 정성이 통했는지, 데이지는 맛있게 밥을 먹고, 아주 건강한 변으로 다시 돌아왔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닭가슴살과 밥 양을 줄이고, 불린 사료를 조금 섞어 주고, 이제는 다시 사료만 원래 양대로 불려서 주는데, 남기는 법 없이 한 번에 깨끗하게 다 먹고 그릇 청소까지 싹 해준다.

아이들 키울 때 밥만 잘 먹어도 엄마 마음은 뿌듯한데, 데이지를 키우면서 그런 감정을 다시 느낀다.


겨우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데이지를 키우는 건 여전히 쉽지는 않다. 아직 유치 때문에 이가 가려운 데이지는 벽 모서리와 가구를 갉아먹고, 바짓가랑이를 물며 가끔 발등을 깨물기도 한다. 아프진 않지만, 이런 습관이 성견이 되었을 때 위험해질 수 있으므로, 물면 안 된다는 것을 단호하게 훈련시키고 있다. 그런데, 에너지가 폭발하면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아, 나에게 점프하거나 바지를 물고 으르렁 될 때면 아기 강아지라도 나도 모르게 등줄기가 오싹할 때가 있다.

아이들을 키울 때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광고문구가 실감 났다면, 요즘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플러스 "깨물지만 말아다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데이지는 나를 정말 엄마로 알고 있는 것 같다.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드는 건 단순히 기분 좋다는 신호가 아니라 "상황과 감정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 다르다고 하는데 엄마인 나에게는 꼬리를 한없이 크게 흔들고, 온몸을 흔들면서 흥분한다. 특히,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부엌일을 할 때 내 뒤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무한 신뢰 애정뿜뿜이다. 눈빛도 한없이 부드럽고, 목과 귀가 뒤로 젖혀져서 낮은 자세로 앉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기다린다. "나만 바라봐~" 노래가 절로 나온다. 내가 일을 하다 뒤돌아보면 귀여운 꼬리가 더 세차게 왔다 갔다 한다. 그래.. 내가 밥 주는 엄마였지? ㅎㅎ

밥 줄 때 "앉아" 하면 이내 똑바로 앉고 "기다려!" 하면 내가 먹으라고 명령할 때까지 눈을 말똥이며 꼼짝 않고 기다린다. 그리고, 어디에 있던지, 내가 "데이지!" 하고 부르면 온몸을 내던지며 내게 달려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찌 데이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데이지가 들어온 순간부터 내가 원하는 깔끔한 인테리어는 꿈꿀 수도 없고, 1층 화장실은 데이지의 전용 화장실이 되어 버렸고, 각종 냄새와 날리는 털로 여전히 전쟁 중이다.

끊임없이 큰 개를 키우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던 남편의 소원을 이루어주려 했지만, 막상 데려와보니 나처럼 강아지 키우는 데는 초보에다, 데이지는 오히려 나를 더 따르니, 결국 내가 모든 것을 케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이 작은 생명과 함께 하나씩 헤쳐 나가야 할 거 같다.


그리고 이제는 데이지를 잘 키우는 게 내 사명이 되어버렸다...


초보 개엄마여!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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