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화 Feb 19. 2024

불행할 때 함께여서 행복했어

왕가위, <해피 투게더> (1998)

끔찍하게 헤어졌다고 사랑 그 자체가 엉망은 아닌 것과 같은 이유로 아름다운 이별은 아름다운 인연에서나 가능하다. 끝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이다. 실상은 상대방과의 기억을 추억으로 느낀 것이다. 그러니 만남과 헤어짐은  부분일 뿐 사랑에 있어 영원하고 확정적인 매듭은 없다.


홍콩 반대편의 세상에서 두 홍콩인은 우리가 종종 외면하는 사랑의 이면을 보여준다. 때로는 집착하고 속박하고 폭력적인, 외로운 달의 뒤편 같은 사랑. 아휘는 회상하는 장면에서 보영이 아플 때 자신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다른 남자의 목소리 한 마디에 보영은 아휘와 그의 관계를 의심한다. 이처럼 그들은 함께일 때 자주 대립한다. 아휘는 오히려 친구인 장 옆에서 편안하고 솔직하게 대화한다.


건강한 관계를 꿈꾸지만 순수한 사랑은 때로 사람을 버린다. 조건을 따지는 마음은 결국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영이 다른 놈들과 놀다 실컷 얻어터져 돌아와도, 아픈 아휘를 깨워 배고프다고 해도 아휘가 밥을 차려내는 까닭이다. 그들의 사랑은 경제적, 사회적,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순수함의 절정이다.


아휘와 보영이 함께 가고자 했던 이과수 폭포는 램프에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이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이과수 폭포로 향하는 길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 사랑이었다. 함께해서 불행했던 그들은 불행할 때 함께여서 행복했다. 이과수 폭포의 실패는 우리가 잊고 있는 사랑의 속성을 역설한다. 이상향도 이상형도 없이 사랑은 존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흔들리며 피는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