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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이 Nov 22. 2021

'미안해'는 셀프로

사과가 어려운 8살

'와르르'

플라스틱 보드 게임 조각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다리 아랫쪽에 있던

둘째의 머리에 맞고  쏟아져 내리는 순간,

'그냥 내가 가지고 내려 올껄' 하는 후회가 스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불길한 예감대로 여지없이 벌어져버린 상황에

대상을 찾기 어려운  짜증이 인 것도 솔직한 심경이었다.


아파트 탑층에 있는 우리집 거실 위쪽

사다리로 연결된 다락방이 있다.

올초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그곳을 아이들 장난감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주었다.

주말 아침, 엄마와 보드게임을 하고 싶다는

째의 부탁에, 선심쓰듯 흔쾌히

그럼 다락방에서 하고 싶은 게임 가지고 내려와!

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첫째 아이가 보드게임을 가지고 내려 오다가

그만 손을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순간 멍했던

둘째는 정신을 차린 듯 이내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서둘러 둘째를 끌어안고

다친덴 없는지를 살피며 울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친덴 없어 보였지만

플라스틱 조각들의 불의의 일격에 놀랐는지

한번 터진 울음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품에 안은 둘째의 등을 토닥이고 있자니,

또 다른 이유로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손가락 두마디만한 플라스틱 조각들이

거실 여기저기에 흩뿌린 듯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첫째 아이가 그것들을 주워 정리하는 중이었다.

정리정돈은 내가 늘상 강조하는 일 중에 하나긴 하지만

내 생각에 지금 큰 아이가 해야 할일은 그게 아니었다.


다른 감정을 최대한 섞지 않으려 애쓰며

차분히 첫째의 이름을 불렀다.

"정리는 나중에 해도 돼,

그보다 지금은 동생이 아파서 우니까

 괜찮냐고 먼저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


말을 마치고 가만히

큰 아이의 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사이,

쭈뼛쭈뼛 대답이 없던 큰 아이 역시

작게 울음을 터뜨렸다.

저도 놀랐겠지

손에서 보드게임 상자를 놓치던 순간도 놀라고

동생이 그에 맞아 울음을 터뜨린 순간에도

철렁했을 터였다.

짐작컨대 제딴에는 저질러 버린 잘못을 수습하는 일밖에

우선 생각나지 않아  열심히

게임 조각들을 주워 정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잘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는 건 엄마도 알아.

하지만 실수로 그랬어도

이럴 때는 미안하다고 하고,

괜찮냐고 묻는게 먼저야"


말을 마치고 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굳게 다문 아이의 입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분명 미안해하고 있으면서...

가끔 저렇게 고집스럽게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솔직한 감정 표현에 서툰 큰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어쩐지 그 기분이 전이되어 이해가 되면서도

엄마로서 걱정스러운 기분이 든다.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괜찮냐며 달려와 동생의 얼굴부터 살피는 모습으로

표현되길 바라는 마음도

한 존재의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에 관여하려는

엄마의 욕심인가


막내의 울음도 그쳤겠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생각을 정리해 보라며

두 아이를 놓고 자리를 뜨자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함께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어울려 논다.


내가 원인이었던가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부터 엄마의 개입이 없었다면

자연스레 사과하고, 받아주고 끝났을 지도 모르겠다.

당황의 순간 엄마의 등장에 뻘쭘해진 큰 아이가

무안함에 입을 굳게 봉인시킨건지도.


그 날 하루가 끝날 때까지 끝내 큰아이는

사과의 말을 동생에게 건네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미안하다고 하자~는

말에 슬쩍 고개를 끄덕 하는 걸 보고

그래 이걸로 됐지, 뭐~ 싶어 넘어갔다.


내 실수가 명백할 때에는

고집부릴 일 없이

산뜻하게 인정하고 사과해버리면

쉽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는 걸  

그렇게 해결이 되기도 한다는 걸

 언젠가 직접 해보면 알게 되는 때가 있겠지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 역할의 8할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느긋하게 가자고 다짐했다.


"미안하다고 해!"라는 말의

 효용성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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