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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Apr 10. 2024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도전기

최근에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했다. 작년에 자서전 쓰기 모임에서 만난 어르신을 통해 이곳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엄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엄마 안에 저장된 동화 창고가 있는 듯 한 가지씩 꺼내 언제나 들려주셨다. 

그런 엄마가 신기해서 하루는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어떻게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엄마가 대답하시길 "너희 할머니가 엄마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야. 할머니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해달라고 조르곤 했었어."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할머니의 따뜻한 품까지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많지 않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할머니는 늘 나와 함께 있었다. 내 자녀를 키울 때 나도 엄마가 내게 들려주셨던 옛날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 주웠다. 


'아름다운이야기할머니'사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곧 은퇴예정이고, 뭔가 보람 있는 일을 찾고 있었는데, 이 일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올해 운 좋게 합격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년부터 아이들을 만나 활동할 수 있으니, 올해 은퇴예정인 내게 적격이었다.


'아름다운이야기할머니'는 이름처럼 아이들 앞에서 옛날 동화 이야기를 암기해서 들려준다. 구연동화는 과장된 목소리로 연기하듯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는 옛날 할머니가 손주에게 하듯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합격을 한다고 해도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후 한국국악진흥원에서 제공하는 교재 속 이야기를 한 주에 한 편씩 외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가서 들려주어야 한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경쟁률이 높은지 많이 놀랐다. 올해 선발인원은 500명인데 서류접수 인원 3,445명이다. 경쟁률 6.9:1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세종시라 충청권에 해당되는데 64명을 뽑고, 그중 세종은 5명이 선발된다.


평소 암기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 도전해 보고 싶었고, 어린아이들을 만나는 일이며 이 일을 주최하는 한국국악진흥원의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있었다. 열심히 이야기를 잘 암송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실함만 있다면, 그래서 이야기 할머니만 나타나면 아이들이 좋아하고 잠시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정말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 영상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팠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을 보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요즘 외부에 나가면 이런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다 보니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던져주고 편안하게 식사를 하거나 자신의 시간을 갖는다. 어른들조차도 어디서든 각자 스마트폰을 보느라 같이 있어도 분리된 느낌이 드는 세상이다.


'아름다운이야기할머니'는 매년 1회의 선발과정을 갖는다. 매년 2월에 '응시지원서'가 공지에 올라온다. 지원서는 온라인으로 제출해도 되고 우편으로 작성해서 보내도 된다. 시험은 1차 서류심사 통과 후 2차 면접을 통해 합격이 결정된다. 면접에서 통과된다고 해도 최종 합격은 거의 6번의 교육과정을 통해 11월에 최종 합격된다. 내가 보기엔 2차 면접시험에 합격하면 거의 최종 합격한 것과 같아 보였다. 최종 합격하면 내년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면접은 '아름다운이야기할머니'에서 올려준 이야기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서 완벽하게 암송해야 한다. 암기는 30%이고 면접이 거의 70% 인지라 합격 여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나는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면접일자가 잡혔다. 면접장소는 대전에 있는 '예람인재교육센터'라 남편과 서둘러 도착했다. 내 마음이 긴장되서인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벌써 많은 분들이 오셔서 바짝 긴장된 모습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암송하고 있었다.

약간 일찍 도착했더니, 대기실에 들어갈 수 없어 처음에는 남편과 다른 곳에서 머물렀는데, 그곳은 바로 면접을 보러 들어가는 통로였다. 할머니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면접위원을 만나러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날 날씨는 약간 쌀쌀했는데 내 마음도 몹시 추웠다. 그리고 면접장소는 그리 따뜻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꾸 몸이 달달 떨려서 계속 손으로 몸을 비볐다. 따뜻한 물이라도 보온병에 담아 올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이런 나를 본 남편이 따뜻한 음료를 구하러 바깥에 나갔는데 근처에 살 만한 곳이 없었는지 구해온 것은 따뜻한 쌍화탕이었다. 왠지 먹으면 입에서 한약 냄새가 날까 봐 먹지 않았다. 남편은 긴장하지 말라며 옆에서 격려해 주었지만 그 소리가 들릴 리 없다. 


면접 시간이 가까이 오자 먼저 면접 대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그곳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준비한 내용을 암송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분이 오셔서 면접 관련 안내를 했다. 긴장감을 풀어주시려고 오신 것 같았다. 그분의 얘기가 재미나서 다들 웃었다. 먼저 여러분들의 모습이 '할머니'가 아닐지라도 여기서는 다 '할머니'라고 부르니 마음 상하지 말라는 말씀과 합격 발표 이후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불합격 소식을 들은 할머니가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전화를 주셔서 힘들었던 일. 어떤 때는 할아버지가 전화를 주셔서 우리 아내가 떨어졌다고 하루 종일 울고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전화가 온단다. 그분은 면접 합격 여부에 대해서는 주최 측은 준비만 할 뿐 선정 기준은 전혀 모르니 전화를 주지 말라는 당부 말씀도 하셨다. 

"그냥 다른 사람이 나보다 운이 좋았나 보다" "그날 나보다 조금 더 잘했나 보다"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거의 7:1 경쟁률이니 누군가는 떨어져야 한다. 나만은 안 떨어졌으면 좋겠지만 어쩌겠는가!!


면접장에는 세 사람이 들어간다. 면접위원은 두 분이셨는데, 중후한 남성분과 노련해 보이는 여성분이 계셨다. 돌아가면서 각자 이야기를 암송했고, 그다음에는 두 분의 질문을 받았다. 면접을 봐본 지 너무 오래되긴 했지만 두 분이 질문 수준이 높아서 연실 마음을 졸이면 대답을 했다. 나는 두 번째 자리였는데, 어찌 보면 약간 시간을 벌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암기한 부분은 처음에는 잘 외웠으나 마지막에 잠깐 멈칫했다가 겨우 잘 마쳤다. 그렇게 달달 외웠던 내용인데 약간 아쉬움이 남았다. 면접위원의 질문은 다양했는데, 세 사람에게 공통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각자에게 다른 질문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라고 하셨다. 다른 분들처럼 나도 꼭 합격해서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 분이 '준비를 많이 하신 것 같아요'하며 칭찬해 주었다. 많이 떨었던 것 같은데 그분의 말이 그래도 위로가 되었다.




합격 발표가 어제 났다. 아쉽게도 합격하지 못했다. 

"누군가 나보다 더 잘하신 분이 계셨겠지!"

"나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로서 활동하실 분이 합격된 거야."


누군가 내게 '할머니'라고 부른다면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뒤늦게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학교행사에 참석할 때면 혹시 내 모습이 나이 들어 보일까 봐 걱정했었다. 어떤 직원은 "언니! 학교 갈 때는 마사지받고 예쁘게 정장 입고 가세요."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런 내가 '할머니'라는 소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도전한 것은 신기할만하다. 아직 딸은 고1인데 말이다.


앞으로 실버세대들이 늘어날 것이고 이분들이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사실,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는 매주 이야기를 암기해야 하고,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세상 매체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의 인성을 길러주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사명감이 있지 않고는 즐겁게 지속할 수가 없다.


'아름다운이야기할머니'의 월급에 대해 궁금해하실 것 같다.  1시간 활동으로 1일 수당이 4만 원이다. 한 달에 최대한 받게 될 돈은 50만 원 안쪽으로 들었다. 어떤 분은 교통비 빼고 나면 거의 남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돈보다는 이 일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실 분들이 도전하는 것이 좋다. 


봄날의 연가처럼 올해 나의 도전은 끝났지만, 합격한 많은 할머니들이 멋지게 준비될 것이다. 실버세대가 늘어나는 만큼 점점 이 사업은 커질 것 같다. 스마트폰 세대의 아이들에게 더 많은 할머니들이 등장해서 그 아이들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스토리'가 대세인 요즘, 이야기 할머니는 소중한 우리의 것을 아이들에게 전함으로서 좋은 인성으로 자라나길 바라는 신박한 일이다.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그때는 좀 더 편안한 할머니가 되어있으려나!!



아름다운이야기할머니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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