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힌 Oct 17. 2021

#14 독서

너와 함께 지지배배(遲㢟蓓㟝) - 더디게 걸어갈지라도 너와 함께 꽃 피울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글을 좀 깨우쳤던 시절부터 지겹게, 아주 지겹게 들어왔던 말이다. 그 때야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어린아이였기에 곧이곧대로 가을에는 책을 읽어야 되나 보다 하고 여겼지만, 지금은 다시 생각해본다. 가을이 왜 독서의 계절로 정해진 건지를. 그리고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아, 나가서 놀기 좋은 날씨인 가을에 왜 다소곳이 앉아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오히려 춥고 눈이 많이 내려서 집 안에만 있게 하는 겨울이 책 읽기에 딱이지 않나 싶었다. 뜨끈한 방바닥에 푹신한 담요를 두르고 손이 노래질 정도로 귤을 까먹으면서 책을 읽는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하지 않나? 겨울밤, 흰 눈에 반사된 밝은 달빛으로 책을 읽는다는 고사성어도 있기도 하니, 적어도 내 견해로는 겨울이 더 책을 읽기 좋은 계절임에 틀림없다. 한 편으로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가을은 결실을 맺고 추수를 하는 계절이니 농사일을 끝내고 휴식을 갖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고하는가 싶기도 하고, 먹을 것이 풍부해져 걱정은 사라지고 여유가 생겨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아니, 역시 난 그래도 가을에는 밖에 나가 빨갛고 노랗게 새 옷 단장한 가을의 풍경과 마주하며 맛난 음식을 먹고 싶다. 달밤에 포장마차 안에서 쌀쌀한 공기와 살을 부딪치는 것도, 소주가 찰랑이는 잔을 부딪치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대다수가 그렇듯, 나는 십 대에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 교과서 제외하고도 제일 다독했는데, 만화책과 소설책을 즐겨 봤다. 아이러니하게도 운동 혹은 요리를 하는 주인공이 성장하고 주변 사람들이 따스히 느껴지는 스토리의 만화책을 읽었던 반면에, 인간의 어둡고 칙칙한 부분을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의 소설책을 애독했다. 변신, 사빈느, 쾅,쾅,쾅, 터널-제목이 기차였는지 터널이었는지는 좀 가물가물하다.-같은 소설들이 마음을 잡아끌었다. 만화책을 보며 사람들의 따뜻하고 선한 모습을 동경하면서, 인간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소설을 탐독하면서는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이 옳다고 믿었다.


 아마 이쯤부터 생각의 타래들이 좀 꼬이기 시작했다. 이상이 각각 너무도 다른 두 종류의 생각이 159cm의 작은 체구 안에 한데 모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공간은 좁은데 생각들이 자꾸만 뭉게뭉게 부풀어 올랐다. 두 타래의 생각 한 올 한 올이 소중했던 건지 적당히 속아낼 줄 몰랐던 건지, 찢어질 듯 가득 차는 사념들을 나는 버릴 줄을 몰랐다. 그래서 제일 사고가 팽창해 빵빵했던 이십 대의 내가 몸도 힘들었고 마음도 힘들었나 싶다. 몸은 가장 가벼웠던 때가 마음은 가장 무거웠단 게, 지금 돌이켜 보면 좀 우습다.


 십 대에 그렇게 많은 책을 보던 내가, 현재는 부끄럽게도 그만큼 독서하지 않는다.(‘못한다.’라고 썼다가 양심에 찔려 지웠다.) 심지어 매주 글을 쓰고 있음에도 그렇다. 책을 읽지 않는 수많은 핑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다른 이의 글을 보고 나도 모르게 모방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 어쩌면 이건 참고할 만한 다른 서적을 정독하지 않아도 집필할 수 있을 거란 오만일지도. 두려움과 오만,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크고 작은 이유로 나는 책과 잠시 이별했다. 연인도 헤어지면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했던가? 나 역시 그랬었나 보다. 독서에 대한 그리움에 서점에라도 가게 되면 눈에 띄는 책들을 사서 품에 꼭 안고 갔더랬다. 그러다 집에 도착하면 나중에 읽어야지 하곤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서랍 한 편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렇게 모셔둔 책이 점점 쌓여가던 어느 날, 글쓰기에 벽에 막혀 제자리걸음을 하던 내게 오빠와 새언니는 몇 권의 책을 건네주었다. 나와 비슷한 글 결의, 혹은 계절별로 나뉜 유사한 구조의 책들이었다. 목차와 처음 몇 문장을 읽고 머릿속에 쌀쌀한 바람이 들어왔다. 정말 이대로 있음 안 되겠다. 갖가지 핑계들은 걷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 책들은 꼭 읽어야 해. 이런저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서 잠시 동안의 휴재를 결심했다. 책도 차곡차곡 씹어 먹고 싶고 꽝꽝 닫혀있던 머릿속을 시원하게 환기시키고 싶었다. 지체 없이 연재하고 싶은 맘 때문에 가슴이 까끌거렸지만, 좋은 글을 쓰고 싶단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작은 여유의 시간을 갖고 책들을 찬찬히 음미했다. 안 읽히는 부분은 책장을 다시 넘겨 읽고 또 읽었다. 좋은 구절도 몇 번이고 읽었다. 탐독하고 난 다음 날, 손 안의 모래처럼 문장들이 잘 떠오르지 않고 쉬이 부서져 슬퍼하기도 했다. 과연 이렇게 독서한다고 내 글이 탄탄해질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들이 끝나고, 나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깜빡이는 커서를 한참이고 쳐다보다, 떠올랐던 글 구상을 적어둔 메모장을 꺼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쓸까 고심하다, 어렵게 무거운 손가락을 움직여 눈앞의 백지 위 한 줄 써 내려갔다. 한 줄이 써지니 다음 줄이 써졌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손가락도 나풀댔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곧장 컨트롤키와 S키를 눌렀다. 그리고 춤을 추고 있는 커서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드디어 글 하나를 써냈구나.             


  



ps. 나의 이 후련함이 너의 독서를 통해, 그대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글 쓴 동생 - 율힌 yulhin

그림 그린 오빠 - 토마쓰리 Thomas Lee



시누이와 새언니

새언니의 집 다용도실엔 수많은 책들이 산다.

그림책도 있고 산문책도 있고 전문서적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는 책 제목 말고도 몇 개의 수식어가 더 붙는다.

읽으면서 울었던 책, 

가장 좋아하는 책, 

한 장 한 장 넘기기 아까워 조금씩 아껴 읽는 책 등등

새언니는 하나하나 이름 붙여준다.

이름을 붙여준 탓일까 새언니는 다용도실에 사는 모든 책들을 기억하는 듯하다.

어떤 글이 좋을까 어떤 그림이 좋을까 고민하는 시누이에게

사랑스러운 책들을 몇 권 뽑아 한아름 가져다준다.

시누이는 꿈꾼다.

나중에는 나의 책을 행복한 표정을 꺼내 드는 새언니의 모습을.

새언니의 마음을 간질이는 그런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주기를.

작가의 이전글 #13 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