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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현 Jun 30. 2021

신세병

배우 신세경 이야기인 줄 알고 이 글을 읽으러 왔다면 미안하다.

나의 병명인 신세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신세병 (내가 내린 나의 병명)


줄 줄 만 알고 받을 줄 은 모른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돌려줄 땐 내가 좀 더 돌려줘야 마음이 편하다.

거절은 잘하지만 싫은 소리는 못한다.

남들이 나에게 신세 지는 건 전혀 아무렇지 않다.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고, 자립을 하고, 독립을 하며 모난 것 없이 자랐다.

부모님 도움 없이 젊은 시절부터 부모님께 도움을 드릴 정도의 능력도 갖췄었다.

어려움 없이 쭉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좋을 때가 있으면 힘들 때가 있고

여유로울 때가 있으면 100원에도 연연할 때가 있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서 부모님께 양해를 구했다. 

내가 여유가 없으니 신세 좀 지겠다고.

독립해서 10년 이상을 나와 살다가 부모님 집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나의 병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 커서 들어간 부모님의 공간엔 내 공간은 사라져 있었고

내가 있을 만한 공간을 마련해기 위해선 정리해야 했고 버려야 했다.

어렸을 때 그 집 그 방에 살았는데,, 그 집 그 방이 너무 낯설고 어색했다.

아마도 그걸 보는 내가 작아져 있기 때문이겠지..


그 집을 들어간 그 순간부터 나는 부모님께 신세를 지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부터 운동과 일을 하시는 부모님이다 보니 

아침에 나갈 때 혹여나 내가 일어날까 조심하시는 모습 

내가 일어나서 점심을 잘 챙겨 먹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일찍 들어와서 밥을 차려주는 모습 

두 분의 빨래만으로도 꽤 될 텐데 내 빨래까지 해주시는 모습

내가 일찍 나갈 때, 늦게 들어올 때 부모님이 깨실까 미안한 마음

밥 먹으면 엄마가 설거지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다.. 다... 신세 지는 것 같다.


남도 아닌데 뭘 그렇게 까지 생각해


가족, 지인 모두가 다 하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근데, 모르겠다. 그게 잘 안된다.

내가 뭐라도 움직여야 할 것 같고 , 내가 도움되는 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내 몸안 어딘가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어쩔 줄 모르겠다의 감정이 너무 간지럽다.


포털사이트에 ‘신세병’을 검색하면 검색 결과가 없다고 나온다

이걸 검색하는 사람도 없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으니 그런 거겠지.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난 신세 지라면 엄청 잘 질 수 있으니까 신세 질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긍정인가 부정인가.. 다행인 건가.. 아닌 건가..

아무래도 내가 다시 능력을 갖추고 나올 때까지는 

이 병은 지속될 것 같다.


그리고 안타까운 건 이병은 가족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라는 거다.


치유병은 나만 안다. 

그러지 않으면 된다.

그게 쉬우면 병도 안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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