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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Mar 07. 2023

위버멘쉬, 나를 위한 독서, 맥주 줄이기

화이트보드를 채우다

방에 4절지 정도 크기의 화이트보드가 하나 있다. 거기에 한동안은 공모 응모용으로 집필하던 미니시리즈의 대략적이고 전반적인 인물 관계 구성이 쓰여있었다. 어떤 부분에 어떤 감정이 들어가야 하고, 관계의 형태는 어떠하며 어떤 목적의 장치가 들어가야 한다는 대략의 밑그림이다.

     

글쓰기를 삶의 중심에 놓지 않기로 한 후에도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몇주 전에 다 지웠다. 이제 이 새하얀 것 위에 다른 것이 쓰여질 차례다. 그런데 무엇을 쓸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미니시리즈를 집필하는 동안 관계 구성이 그랬던 것처럼, 늘 염두에 두어야 할 뭔가가 생기면 써보자 막연히 그렇게만 생각했다.     




새로운 직장(학원)으로 이직을 했으나 마음이 가지 않는다. 할 일을 찾아서 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알면 알수록 내가 찾는 안정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거짓말처럼 90% 가까이 내가 딱 원하던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좌절에 쉽싸여있던 차에 설상가상 집안에서 미끄러져 발가락을 삐었다. 발가락 조금 다친 것뿐인데 병원에서는 무릎 아래까지 깁스를 하라고 한다. 하, 이틀 뒤 새 학원에서 첫 강의인데!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이제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구나! 잠깐이지만 부정과 피해의식에 휩싸여 도무지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한동안 비어있던 화이트보드가 보였다. 애초에 내가 글쓰기를 그만두고 살아보려던 삶이 무엇이었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흔들리고 괴로울 때마다, 부정한 감정에 휩싸여 패닉이 올 때마다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을 적어보자 싶었다.     



가장 먼저 쓴 말은 ‘위버멘쉬’   

언제나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과 세계를 긍정하는 존재.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딘가와 어딘가를 잇는 다리로 존재하는 사람. 니체가 제시한 인간의 상이자, 삶의 지향점이다. 철학 수업에서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이대로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싶었다. 나는 늘 작가가 되기 위해서 한곳에 머무르려, 안간힘을 썼다. 나와 세계를 긍정하는 것은 내게 쉽지 않았다. 늘 나를 극복하려 애쓴 것은 사실이고 일부 그렇게 되었으나 성공했는지 알 수 없다. 자세히 공부해보진 못했지만 수업 시간에 듣기로 위버멘시는 기존의 나의 삶과 전혀 다른 것 같았다. 그러나 글쓰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곳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곤 아래에 보통의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 하려 했던 것을 썼다. 

운전면허, 취미찾기, 그리고 이곳과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버멘쉬의 오른쪽엔 이런 말들을 썼다.

 ‘나를 위한 독서’, ‘맥주 줄이기’

글 쓰며 어느 순간 자료조사를 위한 위한 독서를 주로 하게 되었다. 글로 써내야하는, 빠르게 소비되는 독서다. 이제는 정말로 내 안에 담아둘 독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맥주 줄이기 뭐, 이젠 정말로 해야 할 숙원이다. 노후의 건강을 위해서.          


우선 ‘나를 위한 독서’를 시작하기로 했다. 미루고 있던 니체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려 한다. 위버멘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살까 하다가 워낙 어렵기로 알려진 책이라 혼자 읽을 수 있을까 두려워졌다. 그러다가 대중서로 베스트셀러인 다른 책을 발견했다.      

<마흔에 읽는 니체>  마흔을 앞둔, 위버멘쉬를 꿈꾸는, 니체를 공부하고 싶은 내게 딱 맞는 책... 

맞을까? 최대한 빨리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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