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넬리몰리 Nov 05. 2021

인생이란 이 동네를 마치면 다음 동네로 가지

젊은 아파트, 젊은 엄마와 늙은 고양이


 "망원동에서 계속 살고 싶어. 여긴 살면 살 수록 계속 더 좋아져." 결혼 이야기가 한창 오가던 때였다. 예비 배우자는 내게 신혼집 소재지로 망원동을 줄기차게 피력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돌아오는 말은 "동네가 예뻐서"다. 나는 이 문장에 동의한다. 외관적인 모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분위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자연과 가까운 정도 등이 종합되어 나오는 표현이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이사와 초반엔 그저 예쁘기만 했던 망원동이 결혼 준비를 시작하고 나니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파트 때문에 하늘이 아이 보이니


 우리가 이사 왔을 때, 막 신축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정문에 붙은 노란 스티커를 막 떼어내고 있었다. 망원 한강 공원으로 나가기 위해 도로변을 걷다 보면 아파트 2, 3층에 사는 사람들이 베란다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거나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았다. 그러면 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곤 했다. 우와, 이쪽 하늘은 한강에 붙어 이렇게나 예뻤구나. 망원동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거리에 시선을 두겠지만 망원동민인 우리는 하늘도 보고 스트레칭도 하고 쓰레기 수거 공간과 주차라인도 봐야 한다. 현실적인 땅 위에 발 붙이고 산다는 건 결코 이쁜 일만은 아니다.


 집을 구할 때가 되니 그제야 아파트가 돈으로 보이는 기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한강 산책로에 위치한 저 아파트는 11억 언저리. 한강과는 좀 거리가 있는 오래된 이 아파트는 전세도 6억 언저리. 아, 망원동이 미쳐가는 건가 세상이 미친 건가?


 나는 그제야 내 나이 또래의 신혼부부들이 어떻게 집을 구하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망원동에 보금자리를 꾸렸다는 모 연예인은 20평대의 아파트를 샀다고 했다. 친구 중 누군가는 서울을 감당할 수 없어 김포로 나간다고도 했다. 서울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유지하기엔 하루하루 집에서의 일과가 너무 소중하고, 신혼이라는 시기를 포기할 수가 없다고. 그 외의 대부분은 내가 혼자 살며 자취했던 크기 정도의 비좁은 빌라에 전세계약을 했다. 좁은 평수지만 꽉꽉 눌러 담아 2룸도 나오고 3룸도 나왔다. 그야말로 매직이었다. 건물 하나에 집주인이 몇 명인가. 저 비좁은 집 안에서 유럽 열강 식민지 가르기 하듯 화장실을 두 개로 늘리고, 거실과 주방은 뭉그러져서 하나가 된다. 몇 달에 이르는 시간 동안 나는 망원동에 신혼집을 구하겠다는 희망을 버렸다. 어디가 되었건 알맞은 가격대에 알맞은 평수로 나오는 전셋집이 있다면, 거기가 우리 집이 되리라.


 나도 다른 많은 이들처럼 20대를 제물로 바쳐 내게 '집'이 어떤 것인지 확인했다. 나의 홈웨어는 어떻고 냉장고를 어떻게 운영하며 취침시간은 어떤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를 오랫동안 살아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들이 많으니까. 나는 월세방, 원룸, 1.5룸, 룸 셰어, 전세 등등을 경험했고 그 20대의 기억은 30대의 나를 만들었다. 돈이 궁하고 가치관이 야들야들하던 시절의 경험은 그 존재만으로도 꽤나 제약이 된다. 나는 좋은 인테리어를 보아도 좋은지를 모르고, 거실의 존재가 정신적으로도 여유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모른다. 큰 집에 살아야 더 큰 집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망원 한강 공원으로 이르는 길을 산책하면서 우리는 한동안 우리보다 젊지만 몸값은 훨씬 비싼 아파트를 쳐다보았다. 예식 전에 집을 구하겠다는 계획은 버렸다. 집은 우리가 찾는 게 아니라 하늘이 점지해주시는 건가 봐. 물론 하늘이라 쓰고 대출이라 읽는다.


 이곳 망원동 깊숙한 곳에서 예쁜 카페와 핫한 길목을 찾긴 쉬워도 하늘을 쳐다본 적이 많지 않다. 이 동네를 우리는 머물다 갈 곳으로 여겼나 보다. 20대 때 겪은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일상을 함께 보내고 결국은 떠나게 될 곳. 이제 정말 집으로 삼을 곳을 구하려고 보니 대출 끼고 11억이 필요하네.




 이 젊은 엄마들은 어디에서 쏟아져 나오나


 망원동에는 늙은 인구와 젊은 인구가 섞여서 여기저기 쏙쏙 박혀있다. 유동인구는 대부분 젊은 세대고, 이들이 오고 가는 것에 대해 동네 사람들은 초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 오래된 식당에는 젊은이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망원동에서 핫한 식당과 카페들은 대부분 외부에서 젊은이들이 들어와 새로 차린 곳들이다. 물론 그런 유동성이 크기 때문에 활기가 유지되는 것이긴 하지만.


 한 번은 내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그랬다. 망원동에 미용실을 차린 지 몇 년이 넘어가도록 이 동네 토박이 손님이 찾아온 일은 손에 꼽는다고. 망원동 어르신들은 새로 차린 가게엔 찾아가지 않고, 오래된 미용실 원장들이 부리는 텃세에 한 손을 거들어 준다고. 텃세라 표현하긴 했지만, 주말에 미어터지게 찾아오는 젊은이들도 비슷한 이치로 망원동의 오래된 상권에 아주 큰 보탬이 되어주진 않는다. 멀리서 여기까지 찾아와 동네 골목에 자리한 순댓국집이나 기사식당에 들어가진 않으니까. 망원시장의 특수성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이런 세대차이는 계속 재생산되는 것 같다. 살고 있는 사람 따로, 오가는 사람 따로.


 한데 내가 직장을 쉬고 망원동의 집값 탐방을 다니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평일 낮 시간대에 망원동 거리를 걷다 보면 수없이 많은 어린아이와 젊은 엄마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거다. 나는 망원동에 이렇게 많은 새댁들이 사는 줄 몰랐다. 주택가에 신혼집으로 빌라를 얻어 사는 가구가 많은 게다. 옹달샘 어린이 공원 같은 소규모 공원들이 많은 것도 그런 이치였다. 물론 직장인들과 주말에 오가는 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들이 눈에 띄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게 두고, 젊은 엄마들끼리 놀이터가 보이는 통창의 카페에 앉아 한 눈은 아이에게 고정한 채 커피 마시는 모습을 보자니 느낌이 새로웠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머리 한편엔 이들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주저앉아 "저기요, 그 집은 전세가가 얼마인가요? 어느 집에 들어가 사시나요?" 이렇게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아이를 보는 삶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요? 평일 낮에 여기 있다는 건, 직장에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이런 현실적인 질문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두 달간 평일 낮 망원동을 쏘다녔지만 젊은 아빠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들 여성들에게 무엇이건 묻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내가 혼자 껴안고 골몰하기엔 너무 무자비한 주제였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것 같기도 했다. 높이 솟은 아파트와 주택가 사이를 누비며 미쳤다, 미쳤다를 연발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이곳에 집을 구해 살고 있다. 내 개인적인 삶에서 망원동이 30대의 깊숙한 골짜기로 다이빙하기 직전의 숨 고르기 같은 공간이었다면, 이들은 망원동에서 집으로 부를 무언가를 찾아냈거나 그 과정에 있는 거겠지.


 마포 동네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플랫 슈즈 위의 커리어우먼들만 보아 왔던 내게 이 발견은 아주 새삼스럽게도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내게 '망원동'으로 상징되는 이 역동의 시기도 결국은 내가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동네에 놀러 오는 젊은이이기도 하고, 조만간은 놀이터가 보이는 카페 안이나 마을버스의 플랫 슈즈 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새댁이 될 것이며, 어느 미래엔 텃세를 부리는 동네 주민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주택가들처럼 망원동에는 길고양이가 득실득실하다. 주인 따라 산책 다니는 강아지와 마주치면 후다닥 사라지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사람에게 익숙한 어떤 고양이들은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이 많은 주택가에서는 사료를 얻어먹으려 주차장에 출몰하는 고양이 때문에 차의 도색이 긁히거나 발자국이 찍히는 일도 허다했다.


 어느 날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 여러 마리를 보았다. 마침 리모델링을 해서 아주 깔끔해진 어느 빌라의 페인트 냄새 풀풀 나는 주차장이었다. 그중에 그리자벨라처럼 늙고 지친 길고양이가 끼어 있었다. 한동안 눈이 마주쳤는데 고양이는 도망가지 않았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던데, 저 녀석은 망원동에 산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아파트도, 신혼부부들도, 시장과 오래된 주민들도 점점 젊어져만 가는데 길고양이만 동네와 함께 늙어가는 것 같다. 새로 도색한 주차선 안에서 늙은 고양이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전세 유목민의 이삿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