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23년의 끝이 보인다. 시험 하나로 이렇게 피폐해질 수 있구나를 느껴 본 해였다. 미치고 돌겠음의 어딘가, 끊이지 않는 한숨, 녹아내릴 것 같은 뇌, 도망가고 싶어, 내 머리는 장식일까. 이상하게 이런 것들만 기억난다.
DO, MAY, CAN, SHOULD, MUST OR NOT. 내적으로 많이도 다퉜고 학위 과정과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그 과정 속에 새로운 나를 발견하며 성장한 해이다. 그걸로 충분했지. 그래서 나름 잘 견뎠다는 결론으로 급히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해야 흑역사를 잘 덮을 수 있지.
11월 10일. 바 시험 결과가 나왔다. 예상대로 Fail. 알고 있었지만 올해는 제대로 되는 게 없단 생각에 울적했다. 오늘은 뭐라도 되는 걸 하자. 헬스장으로 향했다. 뛰는 내내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언젠가의 나. 쌓고 기다리자. 중꺾그마.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바프랩을 시작했다. 내년 7월로 응시 예정이나 품을 항상 더 들여야 하는 나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
모르는 영어 단어를 검색하면 한국어 의미를 모르겠고 페이지는 언제 넘어갈지 모르고 한 단락을 읽으면 앞 단락 내용을 잊고. 그렇게 2년을 넘게 보냈다. 그런 내가 이젠 알아듣고 이해를 한다. 생각이란 걸 한다. 영어로 듣고 이해하는 게 꽤 편해졌다. 교수의 농담에 웃기도 한다. 걱정과 달리 나는 따라가는 중이다.
주말에도 5시에 일어나는 루틴을 반복 중이다. 남보다 몇 시간을 더 준비해 들어가도 본전이다. 피곤하고 부끄럽다. 그러나 묻고 배워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적응해야 한다. 그 마음을 파트너들은 알아준다. 그러다 보면 너도 할 수 있어라는 기운도 솟아난다. 좋아하는 건지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이 좋은 것을 보니 할만한 거겠지 싶다.
크리스마스에도 스터디는 계속 됐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싶으면서도 지금 그럴 때냐, 아무렇지 않게 문제를 푸는 멤버들. 도망치지 않고 해 줘서 고마웠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오늘만큼만 해냈으면 좋겠다. 에세이도 잘 좀 적어 내려갔으면 좋겠다. 에세이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치민다. 제발. 짠.
이 시험이 잘 끝나면 무엇을 할 건지 물으셨다. 이번에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항상 무언가를 계획했고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고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의 내가 배운 건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론 틈을 허락하고 나를 안온케 해주고 싶다. 오늘 할 일을 잘하고 싶고, 그 일을 해내는데 오늘을 애쓰고 싶고, 안 되면 "내일은 더 잘 해낼 거다. 인생 안 끝난다." 라며 맛있는 걸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털어 버리려 한다. 부수적으로 얻는 것들에 의미를 둔다. 내가 생각하는 그 언젠가의 나를 생각하되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들에 매달리지 않는다.
올해 목표를 마무리 후 다음 계획을 준비 중이다. 모처럼 안 하던 기도를 한다. 내가 아는 신은 모두 부른다. 누울 때면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이 정도 노력이면, 신이 있다면, 언젠가 나에게도 그 기회를 허락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 기회가 허락하는 날까지, 24년에도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