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 에세이
막 서른이 되었을 때 정말 무언가 되어야만 하고 해야만 할 나이라는 생각이 가득했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십 대 때는 언급도 하지 않았던 키워드들을 다루었다. 그 중 가장 많이 다뤘던 건 ‘결혼’에 대해서였다. 그리 깊이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가치관이 어떤지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대화의 끝은 항상 부정적이었다. 과거와 현재는 그렇지 않더라도 미래만큼은 희망찰 거라며 낙관했던 나에겐, 이야기를 나눌수록 마주하는 사실이 생겼다.
'결혼은 정말 현실이구나. 그래. 현실이 희망차지 않은데 어떻게 결혼 또한 희망차겠는가.'
어느덧 나도 결혼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면 결혼에 관한 얘기를 먼저 꺼내고는 했다. 이전엔 결혼을 빨리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하기 싫어진다는 내 마음을 비췄다. 물질적인 게 우선시되는 결혼이 옛날 정략결혼과 다를 게 뭐냐며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은 것 같다면서. 이 얘기를 들으신 아버지는 장남이라는 이유로 결혼에 너무 강박을 가질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다. 요즘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져서 결혼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거라며. 하지만, 아버지 주위에 결혼 안 한 사람을 봤을 때 행복해 보이냐는 내 질문엔,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고 말씀하셔서 정말 아이러니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라는 무심한 단어들의 조합으로 시작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뫼르소는, 어머니가 죽었음에도 자신의 삶에는 바뀌는 것이 없다고 여기는 냉혈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여자친구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결혼하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네가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다는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뫼르소가 여자친구와 함께 친구의 별장에 놀러 갔을 때, 친구의 배우자와 웃고 떠드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며 뫼르소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결혼을 하게 되겠다고 진정으로 생각한 것 같다."
이 책을 네 번이나 읽었음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내용이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친구가 자신의 친구 배우자와 웃으며 떠드는 걸 보고 왜 결혼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상하게도, 이런 아이러니들을 동생 상견례 자리에서 이해하게 됐다. 뫼르소와 같이 연인을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이방인>에 처음 등장하는 문장과 같이, 인생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단어들의 조합이라는 걸 몸소 느낀 것이다. 상견례에서 만난 매제의 가족들은 어쩌면 나와 전혀 연관이 없던 이들이지만, 동생이 결혼한다는 이유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았던 두 가족간에 유대가 형성됐다. 서로의 가족에 관해 얘기를 나누며 함께 웃었고, 상견례 날이 마침 내 생일이어서 두 가족에게 함께 축하를 받기도 했다.
이 상황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끝도 없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 갖고 보니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었다.
결혼은 분명 행복과 동시에 불행도 존재하는 모순으로 가득차있다. 하지만, 강가에 살려면 악어와 친해져야 한다는 말처럼, 좋은 것일수록 거기에 따르는 리스크도 커지고 감수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결혼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도 긍정적인 일이기에 그런 것이지 않을까. 평생 위험을 피하기만 하며 살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만 추구하고자 모순적인 걸 배제하면 인생에 남는 게 얼마나 되겠는가. 결국 연관성 없어 보이는 아이러니들이 연결되고 연결되는 게 인생인데, 이를 깊게 생각하는 시간은 별 의미가 없을 지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는 삶. 여기에 하나의 선만 그으며 살아가기에 인생은 너무도 짧다는 걸 느꼈다. 동생의 상견례 자리에서 정말 의도치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