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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Nov 29. 2022

22년 부국제(BIFF) 리뷰(1)

영화 리뷰 

부국제가 끝난 지 한 달이 훨씬 지나서야 리뷰를 남길 마음을 먹었습니다. 올해는 게스트 좌석에도 온라인 예매가 적용되면서, 영화제가 끝나고 보니 실물티켓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리뷰라도 남겨놓지 않으면 올해 부국제를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느즈막히라도 남겨봅니다.  



<아줌마> 6일(목) 20:00 * P&I


시민평론단 자격을 유지하려면 영화제 첫 주말 오전까지 첫 글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 관계상 다른 선택이 없어 선택한 영화입니다. 예매할 여유도 없어 P&I로 봤어요. P&I는 Press & Industry의 약자로, 영화 관계자나 기자, 게스트들에게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따로 운영하는 상영관입니다. 그러다보니 좌석이 없을 걱정은 없습니다. P&I관을 갈 때마다 빈자리가 많았던 것 같아요.(올해 영화제에서는 이 P&I 때문에 신기한 경험도 했었는데, 그거슨 다른 일자 리뷰에 남길게요.)


여튼 그래서 퇴근 후 부랴부랴 ‘아줌마’를 보러 상영관에 갔습니다. 싱가포르 감독이 만든 싱가포르, 한국 합작 영화라는 정보는 알고 갔습니다. 그래서인지 배우도, 제작진도 양국의 인력이 함께합니다. 싱가포르에 사는 주인공 리메이화는 한국드라마를 좋아해요. 여진구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게 그녀의 낙이죠. 아들과 같이 한국패키지 여행을 가려했으나, 아들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혼자 한국으로 여행을 오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의 주 스토리입니다. 


중년의 여인이 길 위에서 만난 유사가족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아가는 스토리는 제법 진부합니다. 영화를 빛내고 있는 건 주연배우 홍휘팡, 한국배우 정동환 두 배우예요. 두 사람의 우정과 호감 사이의 그 무언가, 결국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이 영화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어요. 반면 여행가이드 권우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한국꼰대남자 얘기 그만 좀 해라 싶고, 리메이화의 아들 스토리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죠. 


자잘하게 흘린 떡밥들은 착실하게 주워가는 영화고, 적당한 재미와 감동이 있는 영화긴 하지만, 추천하라고 하면 망설여지는 영화였어요.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 8일(토) 13:00


시평단 사전모임 때 평론가 쌤이 추천한 영화 중 한편이라 망설임 없이 예매했는데, 영화 시작 후 5분 만에 깨달았습니다. 내가 눈을 감는 순간 바로 잠들 영화겠구나. 이 영화는 일본감독 & 프랑스감독 합작이에요. 동명의 일본 그림책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합니다. 원작의 내용까지 가져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자체가 정말 그림책 같아요. 


일단 대사가 없습니다. 설원, 아이, 그리고 이를 담는 카메라가 전부인 영화입니다. 오로지 프레임 안에 담겨 있는 눈 쌓인 풍경과 아이가 만들어내는 생동감이 영화를 끌고 갑니다.(지인은 이를 ‘정중동(靜中動)’이라 표현하더라구요. 탁월하죠?ㅋ) 주인공 타카라가 새벽수산시장에 일하러 간 아빠를 찾아 떠나는 작은 모험이 주 스토리예요. 대사가 없기 때문에 그림책 보듯 프레임 안의 배경 변화와 유일한 동체(動體), 타카라의 행동을 보며 추측해야 해요.(그러고보니 평론가 쌤도 애가 계속 달리는 영화라고 했었어;;) 여튼 그렇게 타카라가 아빠를 만나러 떠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영화예요. 


과연 내가 전날 야근을 하지 않고, 오전에 병원 찾아 삼만리를 하지 않고, 맑은 정신에 봤다면 관객들의 대화에서 발언하는 저 관객들처럼 볼 수 있었을까 싶었던 영화였어요.(그리고 나는 평론가쌤 추천작을 더 이상 예매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미 대왕> 8일(토) 16:30


작년 부국제에서 ‘거대한 자유’를 못 본 것이 한이 맺혀서 예매한 영화입니다.(근데 왜 아무도 ‘거대한 자유’를 수입 안 하는 거죠? 전 대체 언제 볼 수 있는 거죠?) 영화제 상영작 중 LGBTQ 작품에서 작년 ‘거대한 자유’처럼 수작이 나오곤 하는데, 올해 ‘개미대왕’은 그 주인공이 아니었나봅니다. 13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비해 지루하지 않게 본 편이지만, 주인공 알도에게 그닥 호감이 안 가더라구요. 현학적인 멘트를 고압적인 태도로 윽박지를 때는 정말 참고 들어주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그런 알도가 젊은 청년들을 모아놓고 인문학 교수 노릇을 하는데, 그를 추종하는 무리 중 한명인 에토르와 사랑에 빠졌다고 영화는 이야기해요.(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기분이 좀 묘해집니다.) 


1960년대 이탈리아가 배경이라 에토르는 가족에게 납치되다시피 정신병원에 갇히고, 알도는 ‘도덕적 예속죄’라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됩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가스라이팅, 그루밍범죄, 위압에 의한 성폭행 정도쯤 될 것 같아요. 여튼 영화에서는 ‘도덕적 예속죄’라는 죄목을 끌고와 재판부가 어떻게 동성애자를 처벌하고 공격하는지를 보여줘요. 


영화에서는 알도와 에토르가 서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 알도와 에토르의 나이차는 상당하고, 실제 사제지간이기도 하고, 알도는 인문학적 지식으로 에토르를 현혹하고 있기도 해요. 그리고 재판부가 에토르에게 알도의 유죄를 종용하는 상황에서도 에토르는 끝내 알도를 사랑했으며,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였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실제 가스라이팅 혹은 그루밍범죄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고문에 가까운 치료 이후, 자신은 차라리 정신병원에 있는 게 낫겠다고 체념하게 된 에토르가 알도와의 시간마저 부정하면 마지막 자존감까지 무너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랑이라고 믿고 싶은 건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여튼 그 둘의 스토리는 차치하고, 그나마 영화적인 재미는 후반부 재판과정에 있습니다. 보다보면 재판부의 억지가 골 때려서 흥미롭게 보게 돼요. 그리고 재판정 밖 소위 젊은 지식인들의 시위와 번갈아 보여줍니다. 영화상에서 감정이입이나 호감이 비교적 쉬운 인물인 기자의 비중이 커지기도 하구요. 기자의 사촌이 시위의 주요인물이기도 하죠. 주인공을 받쳐주는 주변인물들의 비중이 커지자 영화적 재미가 느껴지는 아이러니. 여튼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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