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참을 수 없는 관계의 모호함 Nov 9. 2023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자신의 분수를 알지 못하고 어거지로 더 나은 사람을 따라하려다 감당하지 못해 탈이 나는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 Sinosuthora webbiana)의 신장은 황새(Ciconiidae)의 10분의 1 수준이니 일리 있는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더 극적이어서 뱁새들이 백 배 혹은 천 배 큰 걸음을 시도하려는 때가 있습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가랑이가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겠지요.
원활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선 나의 분수와 위치를 비교적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작정 웅크리고 위축되어 있으라는 게 아니라 현재 참여 중인 인간관계에서 나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기쁨이가 나를 '그림자'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곱씹어보았습니다. 그림자의 속성은 무엇일까요.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잠시 나타났다가 저물면 깜깜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원래의 형상을 닮은 듯 보이지만 테두리만 흉내 냈을 뿐 속은 그늘진 음지에 불과합니다.
내가 그에게 그림자라는 전제가 맞다면 이따금 그의 앞에 나타났다가도 이내 자취를 감춰야 하고, 그의 앞에 있는 모습이 일견 자연스러워 보일지라도 자세히 살피면 어딘가 어색한 기색을 숨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뱁새의 상태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에게로 가는 길을 황새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갈 수 없기에 뱁새의 종종걸음으로나마 달려가보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상술하였듯 10분의 1도 안 되는 짧은 신장으로는 아무리 잰걸음으로 향한다 한들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정으로 나의 것을 내주기 주저하고 별 의미 없는 대화만 늘어놓는 인상을 풍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쁨이는 그림자 내지는 뱁새 같은 모습에 짜증이 난다고 했습니다. 난 여전히 그가 반갑고 그리운데 돌아오는 얼굴은 차갑고 어딘가 일그러져 있을까 두렵습니다. 죽은 고양이와 죽지 않은 고양이가 중첩된 상황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가 사고실험 자체가 폐기될 위험에 처해버렸습니다. 아무래도 낙산공원의 슈뢰딩거가 번지수를 잘못짚었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