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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Nov 22. 2021

홈카페 인터뷰 #4
사적인 서점 대표, 정지혜

치열하게 일에 몰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사적인 이야기.

한 사람만을 위한 맞춤 책 처방전을 오랫동안 지켜온 서점. <사적인 서점> 의 대표 정지혜 님을 만났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한 뼘 나아가, 일터인 서점에서 커피를 즐기는 분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사적인 서점과 코케는 맞춤 추천이라는 점에서 꽤 닮아있으며 책과 커피 역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커피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사람 사는 이야기로 귀결된 시간이었다. 치열하게 일에 몰두하고, 이후에 밀려 들어오는 허무함에 괴로워하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서서히 나아간 사람. <커알못>이기에 깊이 탐구하게 된 나라는 사람에 관하여.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지혜 님. 반갑습니다. 사적인 서점, 세 번째 공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겠어요?


책을 처방하는 서점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데요. 2016년 10월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어요. 홍대와 신촌 사이에 있는 창전동에서 시작을 했다가, 시즌1을 종료하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가졌어요. 시즌2는 작년 7월, 교보문고 잠실점 안에서 숍 인 숍 형태로 운영을 했고요. 이제 시즌2를 종료하고 올해 10월, 시즌3을 이곳 성산동에서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적인 서점은 예약제 서점인데요. 한 사람을 위해서 시간과 공간과 마음을 내어드리는 서점이에요. 예약하고 오신 분들만 입장하실 수 있고 오시면 저와 대화를 나눈 후에 손님에게 맞는 책을 처방해드리는 <책처방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이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셨는지도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책장은 시즌 1 때부터 가지고 있던 책장이에요. 아이네클라이네라는 소규모 가구 공간 브랜드랑 시즌 1 때부터 공간에 맞게 맞춤 가구 제작을 했었거든요. 이 책장을 그때부터 계속 가지고 있었고. 시즌3을 오픈하면서는 약국 느낌이 날 수 있는 카운터랑, 상담이라는 컨셉에 맞게 둘이서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테이블이 중요했거든요. 오롯이 둘이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을 낼 수 있도록 카운터와 테이블을 시즌 3에 새롭게 제작 했습니다. 그다음에 식물을 많이 넣고 싶었어요. 오시면 제일 많이 물어보시는 게, 이거 생화냐며.(웃음) 전부 생화이고요. 식물 큐레이션, 심다라는 브랜드와 시즌2부터 같이 서점에 놓는 꽃들이나 식물들을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저희랑 결이 맞는 소규모 브랜드들이랑 같이 협업을 많이 하려고 해요. 오셨을 때 책처방을 많이들 책을 추천받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하시는데요. 저는 그게 단순히 책을 추천하는 행위라기보다는 한 사람을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공간에 들어오셨을 때 이 공간 자체가 <나를 위해 준비된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벗어나 나에게 선물해주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늑한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음악, 식물이라던지, 조명이나 디퓨저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소품 하나하나가 다 맞춤으로 꾸려진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코케 홈카페 인터뷰는 다 집에서 이루어졌는데요. 그때 인터뷰이의 집마다 자신의 개성이 가장 잘 구현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적인 서점 역시 <집>이라는 공간과 비슷한 것 같아요. 


맞아요. 작은 브랜드들이 운영하는 곳들이 좋은 이유가 주인의 취향이 오롯이 반영된 공간일 수밖에 없어서거든요. 제가 자주 하는 생각인데요. 작은 서점 같은 경우에, 저희가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다 보니 여기서 일을 하는 저의 만족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돈을 많이 벌게 아니면 일하는 내가 이곳에서 가장 즐거워야 한다. 저한테 사적인 서점은 업무 공간이기도 하지만 저의 이상향을 구현해놓은 공간에 가까워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아껴 고른 소품들만 진열해두고, 아침에 출근했을 때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리는 행위 자체가 내게 좋은 공간을 선물해주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는 작은 브랜드들의 공간을 가보면 그런 주인들의 취향이나 선택이 느껴지는 게 좋거든요. 저희 서점도 그런 식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서점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그걸 느끼실 것 같아요. 주인의 취향이 얼마나 잘 반영되어 있는지, 

이 공간에 내가 발을 들일 때 나라는 사람의 세계는 어떻게 확장이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요.



저는 책 처방이 단순히 책을 추천하는 행위라기보다 한 사람을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코케 인터뷰에는 인터뷰이가 내려주는 커피를 함께 마시는 시간이 있다. 지혜 님이 고르신 원두는 <커피가게 동경>의 르완다 미레레. 커피를 즐겨 마신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우려와는 무색하게 깔끔하고 상큼한 향미가 돋보였다. 


제가 커피 내리는 게 엉성할 수 있어요. 

완전 커알못이라.(웃음)

괜찮아요. 책도 수준보다 취향의 문제라고 이야기를 해주신 것처럼, 커피 역시 취향을 탐구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어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하하)


 

지혜 님은 평소 어떤 커피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진한걸 잘 못 마셔요. 연하게 마시는 편. 이 로스터리, 커피가게 동경 되게 좋아해요. 집 근처에 있거든요. 저는 커피맛도 잘 모르고 라떼나 단 것만 마시거든요. 아메리카노는 거의 안 마셔서. (웃음) 근데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이유는 맛보다는 내리는 행위가 좋거든요. 커피 향을 맡는 것도 좋고요. 


커피를 내리는 행위가 지혜 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오늘 기분에 따라 잔도 고르고 원두도 고르는 재미가 있어요. 책 처방하다 보니 잔을 많이 갖고 있거든요. 예쁜 빈티지 잔 수집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오늘은 좀 고소한 원두를 먹는다던지. (맛도 잘 모르지만요. 하하.) 패키징 예쁜 거 고르기도 하고요. 이렇게 데워서 내리는데 한 10분 정도 시간이 들잖아요. 근데 뭔가 되게 여유 있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리추얼 같은 기분으로 내리면서 맡는 커피 향도 너무 좋고요. 그 행위가 주는 안락함 때문에 집이나 서점에서 스스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충분한 예열시간을 가지고 시작하는 하루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그럼 평소에 커피를 마시면서 뭘 하시나요? (노래를 듣는다던지, 글을 쓴다던지...)


일을 합니다.(웃음) 확실히 커피는 노동과 뗄래야 뗄 수 없는...(생략)


불가분의 관계죠. 원래는 차를 드시다가 최근 커피에 입문하셨다고. 


맞아요. 한 2~3년? 된 것 같은데요. 제가 이전에 근무하던 직장이 땡스북스라고 2015년까지 근무를 했었는데요. 원래 커피를 아예 모르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커피를 알게 된 거예요. 커피 음료를 서비스했던 곳이라서 커피머신이 있었어요. 그 전에는 스타벅스 가서 '캐러멜 마끼아또'만 마시는 정도? (웃음) 땡스북스 입사를 했는데 커피를 내릴 줄 알아야 된다고 해서 머신을 처음 배웠어요. 저는 그 당시에 아메리카노와 라떼 차이도 몰랐고, 왜 라떼가 카푸치노랑 다른 지도 몰랐거든요. 그런 걸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커피 내린 걸 배우게 된 거죠. 그라인더 갈고 샷 해서 스팀도 내려보고. 그런 걸 배워서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커피를 마시게 되었어요. 제가 직접 만들어서 '아이스 라떼'를 마신다던지 바닐라 시럽을 넣어서 '바닐라 라떼'를 마신다던지. 그러다 조금씩 어느 순간부터는 시럽 넣어서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이제는 시럽 없이 마시게 되고. 


그래도 커피를 즐기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는데요. 제가 사적인 서점 시즌1을 종료하고 군산에서 2년을 지냈었거든요. 군산에서 서점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안식년으로 해외 나가시면서 서점을 대신 운영해줄 사람을 찾아서 저를 부르셨어요. 그렇게 사장님이 사시던 집에서 제가 살게 되면서 서점을 보게 되었는데요. 그 사장님이 커피 드시는걸 너무 좋아하셔서 집에 핸드드립 도구가 다 있던 거예요. 그전까지는 머신으로 커피를 내릴 줄은 알았지만 핸드드립은 한 번도 접해본 적 없었거든요. 사장님이 해외 떠나시기 전에 2~3달을 같이 살았었는데요. 사장님이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걸 매일 보는데 그 행위들이 되게 좋아 보이더라고요. 향기나 분위기가. 아침에 식탁에 같이 앉아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아, 이게 되게 기분 좋을 행위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군산에서부터 커피를 집에서 내려 마시기 시작했어요. 그때 마침 드립백도 선물 받아서. 드립백으로 집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내려마시기도 하고요. 아 드립백 하니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떠올랐어요. 


어떤 에피소드인데요? (기대)


제가 처음으로 드립백을 내려 먹는데 티백 타듯이 우려서 먹었거든요. 어느 날 친구 집을 놀러 갔는데 친구가 드립백 윗부분을 뜯는 거예요(!) 이거 왜 뜯냐고, 뜯는 거 아니라고 제가 놀라서 그랬더니 무슨 소리하는 거냐며.(웃음) 지금까지 이렇게 먹었냐며 친구가 황당해하더라고요. 저는 티백처럼 은은하게 먹으라고 드립백이 있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게 불과 작년이었어요. 그때 완전 문화충격. 그렇게 먹는 거라곤 상상도 못 해봤어요.(하하) 근데 왠지 저 같은 분 많으실 것 같아요. 저는 그냥 그 드립백 손잡이가 잡고 흔드는 줄 알았거든요.


기억에 남는 커피 한 잔이셨겠어요.


맞아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가 드립백 입구를 찢는 걸 본 순간의 충격이란... 처음에 잘 몰라서 드립백을 다른 방법으로 마시긴 했지만 저는 이게 정말 좋았거든요. 커피를 워낙 연하게 마셔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혜 님 주변에 커피를 즐기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되게 많아요. 제 주변에는 집을 홈카페처럼 쓰는 친구들도 많아요. 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 쓰는 작가님들. 작업하면서 늘 커피는 같이 즐기시더라고요. 주변에 카페를 하는 친구들도 많고. 아, 저 블로그 이웃 중에 작사가 rimko님 (코케 3번째 인터뷰이)이 블로그에 코케 글 올려주신 거 보고 코케 계정을 팔로우하게 되었어요.


저희는 사실 서점이지만 <한 사람을 위한 맞춤 책을 처방>하는 곳이잖아요. 브랜드는 전혀 다르지만 코케도 손님한테 커피를 제안해주는 곳이어서 어떤 방식으로 추천하는지 궁금했어요. 제가 기획 아이템을 얻는 방식이, 저와는 전혀 다른 업계에서 하는 것들을 많이 보는 편이거든요. 책 처방도 사실은 1인 미용실, 장싸롱을 이용하면서 '왜 1인 미용실은 있는데 1인 서점은 없지?'라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된 거였고요. 책을 읽다가 덴마크 주치의 제도를 보면서 '어, 뭔가 서점에도 주치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확장해가는 편이거든요. '다른 업계에서 하는 행위를 서점에서 한다면 어떨까? 이걸 책으로 한다면?' 이렇게 아이디어를 되게 많이 디벨롭하는 편이에요. 코케를 딱 봤을 때도 여기는 커피를 어떤 식으로 추천할지, 취향을 찾아줄지 궁금했어요. 이런 방식을 보다 보면 사적인 서점에서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팔로우를 하고 있었어요.  


Connecting the Dots처럼 모든 영감은 이어져 있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을 위한 원두 맞춤 추천과 책 맞춤 추천. 나중에 재밌는걸 함께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오, 좋아요!)



아침에 식탁에 같이 앉아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아, 이게 되게 기분 좋을 행위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사적


커리어 전환 계기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출판사 편집자, 서점 판매원, 그리고 지금은 사적인 서점 주인까지. 어떤 이유로 직업을 바꾸게 되셨을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책을 되게 좋아해서 진로 고민은 크게 한 적이 없었어요. 뭐가 되든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확신은 있었는데요. 대학교 졸업하고 책 만드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출판사 편집자>로 첫 직장을 들어가게 되었어요. 저는 글 쓰는 것도 워낙 좋아했고, 기획하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너무 나랑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까 나랑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우리가 <편집자>라고 하면 글 쓰는 능력이 가장 중요할 것 같잖아요? 근데 막상 일을 해봤을 때 제가 느낀 건, 편집자는 PM(Project Manager) 역할이어서 한 권의 책이 완성될 때까지 모든 단계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디자이너, 마케터, 작가, 인쇄소 분들 등) 저는 그 과정이 너무 힘든 거예요. 작가님이 내고 싶어 하는 책 제목과 회사가 원하는 책 제목의 방향이 다를 때 이걸 설득을 해야 되는 부분들. 또는 디자이너나 작가가 원하는 방향이 다를 때, 아니면 인쇄사고가 생겼을 때. 이런 갈등을 해결하는 부분에서 되게 취약하다는 걸 일을 하고 나서 깨달았어요. 또,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초년생이라서 <가슴 뛰는 일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어, 왜 가슴이 안 뛰지?', '이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일은 따로 있나?', '그럼 다른 걸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해서 퇴사를 했죠. <책을 만드는 걸 해봤으니 이번엔 파는 걸 해보자>라고 생각해서 땡스북스로 이직을 하게 되었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서점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요. 만드는 일보다 판매하는 일이 생각보다 저랑 너무 잘 맞는 거예요. 출판사에서는 제가 싫어하거나 관심 없는 분야의 책도 만들어야 하지만, 서점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만 힘주어서 판매하고 추천하면 되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책을 만드는 것과 파는 것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글을 사람들한테 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요. '이런 좋은 책을 쓴 사람이 있어, 한 번 읽어보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게 사실 책을 판매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더라고요. 그렇게 서점에서 일하는 것들이 재미있어서 즐거움을 키워나갔죠. 내 서점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마침 작은 서점들이 생기던 시기기도 했고요. 원래는 되게 먼 미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내 서점'을 만드는 일이요. 그런데 5평짜리 서점이 생기던걸 보고, '오 저런 건 나도 지금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29살에 <사적인 서점> 시즌1을 열게 되었죠. 빨리 도전해보고 만약에 망하더라도 1살이라도 어릴 때 다시 취직하면 되니까.(웃음) 저는 일하면서도 '내 서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컸거든요. 집중이 잘 안될 때도 있었는데 이런 마음으로 일하느니 차라리 빨리 그냥 해보자. 안되면 회사 열심히 다니자. 이런 마음으로 연 <사적인 서점>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죠. 



#서점


<사적인 서점>은 5년 동안 4번의 이사를 다니며 시즌 3번째를 맞았어요. 시즌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지켰던 것과 변화를 주었던 포인트가 있다면요?


좋아하는 걸 더하고 싫어하는 걸 빼는 방식으로 저를 위한 <맞춤 옷>같이 세팅한 게 시즌1이었어요. 저는 책을 소개하면서 손님들과 직접적으로 교감하는걸 되게 좋아했거든요. 손님과 소통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고요. 그래서 내 서점을 한다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방식으로 하자'라고 결심해서 <한 사람을 위한 사적인 서점>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운영을 해보니 저한테도 너무 재밌고 즐거웠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사적인 서점이 예약제로 운영을 하다 보니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인 거예요. 그래서 좀 더 '접근성이 높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방식'으로 서점을 하면 어떨까 하는 궁금함이 늘 있었어요. 


군산에 2년 동안 머물면서, 사실 2020년 12월까지 군산에 있을 예정이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해외에 계시던 사장님이 3월에 돌아오셨거든요. 원래는 12월이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시즌2에 대한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은데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돼서 당황을 하던 시기였어요. 그때 마침 교보문고 측에서 숍인 숍 형태로 제안을 주셨죠. 마침 저도 준비가 안되어있는 상황에서 코로나 시기에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게 무섭기도 했고요. 유동인구가 많은 곳, 접근성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서점을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있는 상태여서 '1년 정도는 실험하듯이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교보문고 안에서 숍인 숍 형태로 <사적인 서점> 시즌 2를 하게 되었어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점도 있었고 안 좋은 점도 있었는데요. 일단 좋은 점은, <사적인 서점>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들이 교보문고를 통해 알게 되신 경우가 생겼다는 점이에요. 독립서점에 관심이 없었거나, 책은 좋아하지만 이런 문화는 잘 모르셨던 분들이 새로운 고객층이 되었죠. 안 좋은 점은, 교보문고 안에 있다 보니까 항상 오픈되어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책 처방>과 같은, 저희가 갖고 있던 시그니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가 사실 쉽지 않았어요. 책을 소개하고 보여주는 방식에서 전통적인 서점의 역할엔 충실했지만, 오히려 저희가 갖고 있는 시그니처 아이템은 충분히 활용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손님들과 밀접하게 이야기를 하거나 관계를 맺기가 어렵더라고요. '사적인 서점은 사적인 서점답게 가야겠다.'라는 것도 그때 느꼈어요. 


그리고 이건 되게 사소해서 놓쳤던 부분인데요. 시즌 2 때는 매장이 지하에 있었고, 교보문고에서 트는 음악을 같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시즌 1 때, 그리고 군산에서도 빛이 서점에 들어오는 시간들이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또는 날짜에 맞게 음악을 고르거나 기분에 따라 디퓨저를 고르는 재미랄지. 일하기 전 커피를 내려 마시는 즐거움이랄지. 너무나 사소해서 몰랐는데 사실은 <일의 질>에 영향을 많이 끼쳤던 부분이더라고요. 근데 시즌 2에서는 그걸 못하는 환경이 되니까 생각보다 업무 환경에 대한 질이 크게 떨어진다고 느꼈어요. 매일매일의 사소한 즐거움들이 사라지니까. 지하에서 바깥의 날씨를 파악할 수 없고 음악도 항상 교보문고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듣다 보니. 커피도 내려마시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고요. 그러다 '아, 독립된 공간, 좋아하는 환경에서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돈을 100만 원, 200만 원 더 버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환경에서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을 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 더 크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딱 1년 계약기간 채우자마자 나가서 독립된 공간에서 새롭게 맞이한 사적인 서점이 시즌3 였어요.


그래서 시즌 3에는, 빛이라던지, 능소화라던지. 서점에서 보이는 풍경을 중요하게 여겼어요. 동네의 분위기도 한몫했고요. 교보문고가 있던 잠실은 동네에 고층빌딩이 많아 숨이 막히는 분위기였는데, 여기는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하천도 있고 좋아하는 카페도 많거든요. 지금 제가 생각해보면, 시즌1 때는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건 일단 다 해보자.' 두서없이 이것저것 다 시도해봤던 시기, 시즌2 때는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고 다른 가능성을 확인해본 시기, 시즌3은 이전 시즌에서 느꼈던 장단점들을 가지고 와 가장 저희에게 잘 맞는 방식으로 최적화해서 꾸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훨씬 만족도도 높은 것 같고요. 


시즌 1과 시즌 2 사이에 군산에서의 방학은 어떠셨어요? 


군산에서 1년 6개월을 있다 왔는데요. 사실 내려가기 전에는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그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시즌 1이 워낙 잘 되었거든요. 그걸 이어가지 않고 갑자기 뚝! 끊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군산이라는 지방에 내려가서 2년을 지낸다는 게, '사람들이 그 사이에 사적인 서점을 다 잊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있었고요. 한창 커리어적으로 외부활동을 많이 해야 할 시기인데. 아무래도 지방에 있으면 서울에서 일정을 소화할 수 없잖아요. '이게 과연 잘하는 선택일까?'라는 고민도 있었죠. 


그러다가 당시 제가 굉장히 지쳐있던, 번아웃 시기였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쉬는 휴식 시간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적인 서점이 사실 당시만 해도, '사적인 서점 = 정지혜'여서 부담감이 컸거든요. 예전에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했는데, 어느새부턴가 '저 사람이 고르는 책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대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책을 고르고 추천할 때에도 그런 평가들을 의식하게 되고. 사람들이 저를 만날 때 갖는 기대감도 있었고요. '저 사람은 이야기를 잘 들어줄 거야. 저 사람은 상냥하고 친절하고 다정할 거야.'라는 기대감이나 평가들에 되게 많이 지쳐있던 때라서. 군산에 가면 거긴 아무것도 없는 곳이니까. 똑같이 서점을 운영하더라도 그런 기대나 평가가 없는 거예요. 그런 곳에서 1년 6개월을 지내다 보니까 서서히 저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어요.


군산에 있을 때 정말 <산책>을 많이 했거든요. 바로 옆에 '월명공원'이라는 좋은 공원이 있어서, 거의 매일 산책을 했어요. 쉬는 날에는 거의 4~5시간, 거의 10km씩 걸었던 것 같아요. 자연을 곁에 두고 사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충만하게 해 주는지도 느꼈어요. 제가 <사적인 서점>을 할 때는 뭔가 성과가 나야지만, 이걸 해서 뭔가 잘 되어야지만 기분이 좋았거든요. 근데 이 성과가 좋아서 생긴 기분은 길어야 일주일을 못 넘겼어요. 다음에는 이걸 더 잘해야지만 더 기분이 좋아질 수 있었고요. 근데 군산에서 산책을 할 때는 아무 조건도 필요 없더라고요. 그냥 걷기만 하면 기분이 좋아졌어요. 행복 버튼 같은?(웃음) 


내가 어떤 사람이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걷고 있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무용한 행복>이 있구나. 쓸모 있는 유용함이 아니라, 무용함이 주는 행복이 있구나. 라는걸 느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바쁘게 지낼 때는 날짜 개념도 없고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잖아요. 맨날 틀어박혀 있으니까. 근데 군산에서는 매일매일 산책을 하는데 매일매일 풍경이 다른 거예요. 어제는 없던 꽃이 오늘은 폈고, 나뭇잎 색깔도 바뀌었고, 비가 오는 날에만 보이는 풍경이 있고. 그런 것들을 정말 온몸으로 느끼니까 너무 충만한 느낌이 들었어요. 되게 많이 채워지는 느낌. 그렇게 1년 반을 외부 자극을 다 끊고, 저에게만 집중하면서 보내니까 '이제는 정말 서울에 와서 다시 잘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건, 내가 걷기만 해도 주변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 기쁨. 어떠한 수고를 들이지 않음에도 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되게 높아지더라고요. 내 발자국마다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요.



군산에서 매일 산책 하면서 무용한 행복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쓸모 있는 유용함이 아니라, 무용함이 주는 행복이요. 



 #서점과 사적인, 그 중간 사이


시즌1 때 번아웃을 겪으셨고, 극복하시게 된 경로도 궁금해요.  


시즌1이 끝난 직후에 방탄소년단에 입덕을 하게 되었어요. 입덕을 하게 된 게, 저도 충격적이긴 했는데.(웃음) 제가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고 있거든요. 근데 계속 상단에 BURN THE STAGE 라는 게 계속 뜨는 거예요. 저는 사실 그전까지 BTS가 방탄소년단 인지도 몰랐거든요.(웃음) 아이돌은 사실 관심이 거의 없어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연예인 덕질을 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제 주변에 덕질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 굳이 저렇게까지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고. 저한테 그전까지 방탄소년단은 '데미안을 앨범 콘셉트로 해서 데미안을 많이 팔게 한 아이돌' 딱 그 정도였어요. 근데 자꾸 'BURN THE STAGE'라는 영상이 뜨길래 집에서 쉴 때 1화를 한 번 클릭했는데, 그날 앉은자리에서 하루 만에 다 봤어요. 알고 봤더니 투어 뒷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더라고요. <BURN THE STAGE>가 불이 타고난 뒤에 재가 남잖아요. 무대 위에서 화려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조명한 이야기였던 거예요. 근데 제가 느끼는 감정하고 너무 똑같았어요. 번아웃 왔던 당시의 감정하고요. 그걸 다 보고 정말 펑펑 울었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 자기 일을 반짝거리면서 즐기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무대 뒤에선 똑같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악플에 대해서 신경 쓰는 모습들을 보면서요. '어? 나와 다르지 않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번아웃 때 되게 힘들었던 지점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힘들다'라는 거였거든요. 이것보다 좋아하는 일이 없을 것 같은데 힘드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예전에 편집자 때는, '아 이것보다 좋아하는 일이 더 있나 봐, 이게 내 일이 아닌가 봐.'라고 생각하고 다른 일을 찾으면 되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것만큼 내가 좋아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힘드니까.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하지?' 되게 막막했어요. 다들 어릴 때부터 '꿈을 으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막상 꿈을 이룬 다음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저는 꿈이었던 책방을 열었고, 심지어 그 책방이 잘 되기까지 했는데, 그러고 나서 너무 허무하니까 '이다음에 나는 뭘 해야 되지?'라는 생각이 많았어요. 근데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또는 '네가 좋아하서 하는 건데 힘들면 하지 마.'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 저한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말인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듣던 차에 그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 그게 저에게 닿은 유일한 위로 같은 느낌이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힘들 수 있어. 우리도 힘들어. 근데 같이 열심히 해보자. 이런 느낌. 누가 들으면, 방탄소년단에 저를 대입해서 공감한 거니까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저는 그 당시에 저한테 딱 필요한 모양의 위로였어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힘들 수 있고, 힘든 게 당연한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때 느끼는 감동이나 희열이 있고.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을 들게 해 준 친구들이었어요. 그래서 입덕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입덕을 하고 나니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예요. 저는 사실 완전 워커홀릭이어서, 쉬어야 된다는 걸 알아도 내가 일이 있으면 그 일에 집중하는 타입이었는데요. 덕질을 하고 나면 떡밥이 생기잖아요. 이 떡밥은 밀리면 안 되거든요.(웃음) 원래 같았으면 밤새서 일만 할 거였는데, 이제는 하루에 2시간은 적어도 나의 재미를 위해 살자. 그 2시간은 무조건 Off 하고 방탄소년단 떡밥 보면서 기분 좋게 잠들고. 그 친구들이 갔던 전시, 들었던 음악. 따라 듣기도 하고요. 저는 원래 POP을 아예 들은 적이 없었는데요. 이제 방탄소년단이 그래미 가고 빌보드 가는걸 생중계로 챙겨보다 보니까 '저 가수 무대 되게 괜찮네. 콜라보한 이 사람 무대 되게 좋다.' 하면서 어느 순간 플레이리스트에 POP이 되게 많아졌더라고요. 새로운 아티스트도 알게 되고요. 그리고 저는 여행을 좋아하긴 했지만 영어를 못해서 혼자서 미국이나 유럽을 갈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러다 영국에서 방탄소년단이 <웸블리 콘서트>를 한다고 했을 때 '저건 무조건 가야지.'라고 생각해서 혼자 런던을 바로 다녀왔거든요. 그 콘서트 때문에.(웃음) 여행 간 김에 그 친구들이 여행 리얼리티를 찍었던 <몰타>에서 휴가도 보냈어요. 너무 가보고 싶었거든요. 몰타 야경을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런 나라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살았구나.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었으면 살면서 몰타의 야경을 보는 날이 있었을까?' 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럴 때 되게 사는 게 재밌더라고요. 인생은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구나. 번아웃이 왔을 때 제일 힘든 게 <무망감>이었거든요. 기대되는 게 아무것도 없고, 좋아하는 게 잘 되었는데도 이렇게 허무한데 다른 거 해서 뭐해라는 무력감과 절망감. 이런 것들이 되게 커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기대되는 것도 없었고요. 그런데 덕질을 하게 되니까 제 인생에서 기대되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이 친구들의 콘서트는 다음에 어디서 열릴까, 그때 나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그런 식으로 처음 해보는 일들이 늘어나고, 기대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되게 자연스럽게 번아웃이 사라졌어요. 좋아하는 마음에 기대어 뭔가를 배우고 깨닫고 제 세계가 넓어지는 게 너무 좋아서 그 경험을 또 책으로 썼죠.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이게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어딜까지 데려갈지. 저는 책을 좋아해서 서점 주인이 되었고, 그 경험을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라는 책으로 썼어요. 책을 좋아하던 <독자>에서 <작가>가 되었죠. 그리고 저는 그게 끝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또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두 번째 책을 쓰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라는 책으로 저를 알게 된 분들한테 저는 진짜 작가님인 거예요. 사적인 서점 대표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저를 알게 되는 분들이 생기고. 또 다음에는 내가 어떤 책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고.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좋아하는 마음은 멀리 간다> 말이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막 열심히 하거나, 뭔가를 무릅쓰고 시도해보게 하잖아요. 안 해봤던걸 해보게 하거나. 싫어했던 걸 좋아하게 되거나. 그런 걸 하면서 사람의 세계가 넓어지게 되고요. 그런 것들이 저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아하는 마음을 좇아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서 번아웃을 극복했어요.


예전에는 하나가 인생의 전부인 사람들이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저 같은 경우에는 <책>이 그게 전부였다가 한 번 엎어져봤잖아요. 그러니까 좋을 때는 그만큼 더 좋을 수가 없는데, 그것 때문에 힘든 시기가 되면 도망갈 곳이 없는 거예요. 근데 방탄소년단으로 도망을 가봤잖아요.(웃음) 근데 <덕질>도 사실, 힘들 때가 있거든요. 콘서트에 추첨이 떨어져서 못 간다거나, 안 좋은 스캔들이 터진다거나. 이러면 멘탈이 나갈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산책>을 하면서 기분을 풀고. 좋아하는 세계를 여러 개 만들어 놓으면 이 세계가 힘들게 할 때 다른 세계로 도망치면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기댈 곳이 많아지는구나. 하나를 깊이 있게 좋아하는 것도 좋지만, 요즘은 다양한 세계들을 많이 만들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혜 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방탄소년단이 좋아져요. (웃음) 보통 아이돌을 무대 위에서 모습만 보고 멋있다고 좋아하는데, 무대 뒷모습을 보고 좋아하게 된 거잖아요. 


되게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약한 모습을 가리거나 드러내지 않을 수 있잖아요. 지금은 못 건드리는 아이돌이지만, 그전에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으로 놀림도 많이 받았거든요. 아이돌이 힙한한다고 욕도 많이 얻어먹고. 본인들도 그 사실을 알고 되게 괴로워했거든요. 욕먹어서 힘들었던 거, 정체성에 대해서 흔들렸던 거. 노래 가사나 무대에서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줘요. 그러면서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니 '이 사람들이 약해 보이지 않고 되게 강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나쁜 게 아니구나.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고독한 직업>이라는 책이 있거든요. 거기 나온 구절 중에 진주로 비유한 이야기가 있어요. 힘들게, 고통스럽게 이겨내서 나온 진주 알갱이처럼 오히려 자기 결핍이나 힘든 것들과 싸워내서 이겨낸 것들에게 느껴지는 어떤 <단단함>이 있다고. 그게 느껴지는 친구들이 이 방탄소년단이라고 생각해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요.


맞아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채널예스 인터뷰 시리즈에서, 사적인 서점을 방문하신 손님 중 한 분이 자신을 '구원받았다'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근데 BTS를 좋아하시면서 지혜 님이 구원받으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최근에 황정은 작가님이 <일기>라는 산문집을 쓰셨어요. 거기에 <누군가 애쓰는 모습이 멀리 있는 누군가를 구한다>라는 구절이 있거든요. 그 채널예스에 인터뷰했던 그 손님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 손님이 저한테 써주신 편지 중에서 '서점원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일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게 자기한테 구원이 되었다'라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저도 사실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점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구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모습이에요. 요즘엔 <스우파>에 빠져있는데.(웃음) 스우파도 사실은 '우리가 왜 저렇게 좋아하지?'라고 생각해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정말 열심히 알리려 하고, 동료들이랑 힘내려는 모습에 우리가 감동받는 거잖아요. 누군가의 열심히 애쓰는 삶이 멀리 있는 누군가를 구한다는 구절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내 모습이 다른 사람한테 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업계에 있는 분들을 통해서 영감을 받을 때도 있지만, 각자 다른 삶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분들. 

최전선에서 늘 애쓰시는 분들을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맞아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힘들 수 있어. 우리도 힘들어. 근데 같이 열심히 해보자.
이게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어딜까지 데려갈지.


#손님


그럼 사적인 서점을 방문한 손님들 중에,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을까요?


사실 기억에 남는 손님을 정말 많아요. 지금 기억에 남는 분을 한 분 꼽자면요. 그분이 저희 서점에서 책 행사를 할 때 오셨는데요.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라는 엄마들을 위한 북 토크 행사였어요. 아들한테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어머니셨어요. 음식 알레르기가 있어서 먹는 걸 굉장히 신경 쓰고 주의를 해야 하는데, '자기는 이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지만 오히려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걸 알고 나서 소수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함부로 음식을 먹으면 안 되다 보니 처해지는 환경이 있잖아요. 저는 그 말이 너무 인상 깊게 남아있었거든요. '어떻게 이 상황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씀하실 수가 있지?'라고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던 손님이었어요. 


그분이 몇 달 뒤에 책 처방을 받으러 오셨어요. 아들을 위해 비건 베이킹을 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먹거리를 아무거나 줄 수 없으니 비건 베이킹을 배우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이걸로 나중에 내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꿈이었었고, 언젠가 가능하다면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진짜 응원한다고 말씀드린 게 <사적인 서점> 시즌 1이 종료될 때쯤이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 시즌 2를 오픈하는데 제 앞으로 갑자기 택배가 온 거예요. 


고마워서그래라는 이름으로 그래놀라가 왔는데, 그분이 오픈한 가게에서 편지랑 같이 오픈 소식을 전해주시더라고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음식이라고... 그 편지 받고 되게 마음이 좋았어요. 물론 당연히 그분의 힘이 가장 컸겠지만, 책 처방하면서 나왔던 이야기들, 처방받은 책이 응원이 많이 되었다고 해주셨거든요.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도 많이 힘을 얻었다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때부터 인연이 되었죠. 시즌2에서 자주 뵙고 인사하고 지내다가, '제가 방탄소년단 좋아하듯이, 지혜 님이 저의 아이돌'이라고 하시면서 어느 날 교보문고에 돌리라고 그래놀라 조공을 해주신 거예요! 연예인들 커피차같이. 기죽지 말라면서.(하하) 저희 시즌3 오픈했을 때도 책 처방받고 가셨는데 이제 자영업자 동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사적인 서점이 5년이 지나는 동안, 처음에는 음식 알레르기로 고민하던 손님으로 만났고, 비건 베이킹을 배우면서 꿈을 키우는 걸 봤고, 그다음엔 꿈을 이루는 걸 봤고요. 지금은 손님이자 같은 자영업자 동료로서 서로 응원해주는 관계가 된 거죠. 그런 관계들이 사적인 서점에서 되게 많거든요. 저는 이걸 <인생의 목격자>라고 이야기해요. 느슨하지만 이 분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힘든 시기를 어떻게 통과해서 어떻게 가는지를 서로가 서로를 지켜봐 주는 느낌이 들어요. 그 과정에서 응원과 위로도 해주고. 용기도 서로 주고받고요. 그런 관계가 되게 많아요. 그게 제가 사적인 서점을 하는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사적인 서점이 시즌 1에서 시즌 2, 시즌 3으로 이어지는 동안 그분과의 인연도 계속 이어지고. 

위치도 정말 재미있게 변하고. 관계도 더 깊어진 것 같아요. 그분은 처음에 어떤 책을 처방받으셨나요?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라고. 제가 뭔가 자기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그거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아니면 창업에 대해서 두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시작하는 방식도 있어요.라고 소개해주는 책이거든요. 또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라는 책이 있는데 그게 일본에서 10년 넘게 여행사 직원으로 일을 하다가 지방에서 로스터리 카페를 차린 사람의 이야기예요. 그리고 10년의 기록을 낸 책인데 그런 내용들이 되게 좋아요. 기본 원칙을 지키는 거. 손님이 있든 없든 항상 정해진 시간에 문을 열고. 가게라는 건 언제까지나 정해진 것을 정해진 자리에서 매일 같은 방식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고. 사람들이 화려한 마케팅을 생각하지만, 기본 원칙을 잘 지키면 알아주는 사람들은 알아서 온다라는 마음으로요. 자영업 시작하는 분들이 읽으시면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거기에 나오는 내용 중에, 사람들이 늘 효율적인 거, 지름길만 생각하려고 하는데 '내 세계는 이거야.'라고 단정 짓는 순간, 그 세계는 멈춘다라는 표현이 있거든요. 열려 있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 의외의 뭔가를 발견하는 재미. 실패를 안 하려고 하다 보면 뜻밖의 즐거움이 없다고 하는 구절도 그 책에 나오거든요. 그런 삶의 태도가 저는 좋았어요.


좋네요.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는 코케 손님들에게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이라는 책이요. 하루키의 소확행 같은 내용인데요. 맥주 마실 때 기쁨, 겨울에 스웨터 입는 것,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과 같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글로 쓴 거예요. 이 책이 좋다고 생각했던 게, 출판사에서 안유진 작가님한테 그림을 의뢰해서 중간중간 그림이 들어가 있거든요. (몽글몽글한 그림체.) 맞아요. 짧은 글에 그림이랑 같이 있는데 저는 이 책이 아침에 읽기 되게 좋더라고요. 하루를 시작하실 때 여유 있게 일어나서 커피 딱 내려놓고. 앉아서 커피 향 맡으면서 한 꼭지 정도 읽고 출근을 하면 하루가 되게 달라질 것 같아요.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이 작고 평범한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 같아요. 정말 사소한데 일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여서. 코케 손님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저는 이걸 <인생의 목격자>라고 이야기해요. 서로가 서로를 지켜봐 주는 느낌. 
그런 관계가 되게 많아요.
그게 제가 사적인 서점을 하는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진짜 진짜 마지막 질문이요. 지혜 님과 같은 <커알못>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좋아하는 행위에 대해서 어떤 우열이 없다고 생각해요. 원래 커피를 제대로 한다고 치면 린싱, 뜸 들이기와 같이 해야 되는 기준들이 있는데요. 왠지 '그걸 모르면 커피를 하면 안 될 것 같아'라던지, '제대로 하는 게 아니면 어디 가서 커피 좋아한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라는 걱정은 누구나 있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즐기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드립백을 티백처럼 우려서 마실 때도 되게 좋았거든요. 이렇게 연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그게 제가 좋으면 된 거잖아요. 내가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잔을 고르고 좋아하는 원두를 고르는 행위 자체를 즐기시는 것도 커피를 즐기시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원두를 알아가게 되고, 커피를 더 맛있게 타 먹고 싶어 지고. 자연스럽게요. 책도 마찬가지인데, '저는 가벼운 책만 읽어요, 추리 소설만 읽어요'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추리 소설을 5년, 10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다른 걸 읽고 싶어지는 때가 자연스럽게 올 수 있어요. 그걸 억지로 뭔가 하길 보다는, 제가 지금 좋아하는 방식대로 충분히 즐기시고 마음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가 되면 그렇게 가면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이유는 다 다양한 거니까. 그리고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지금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충만하게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진짜 귀한 것 같아요. 뭔가를 좋아하는 마음이요. 


그래서 인물이든 물건이든, 다음에 제가 좋아하는 게 생기면요. 저는 진짜 열심히 좋아하고 싶어요. 

후회하지 않도록. 그 시간이 너무 짧거든요. 

뭐든지 식기 마련이라.


오늘 나눴던 이야기랑 다 이어지는 맥락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마음에는 자격이나 정답은 없고 

그저 선택이나 취향이 있을 뿐이라는.


그때그때 나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무언가에 대해 

마음 가는 대로 좋아하면 될 것 같아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리추얼 같은 기분으로
내리면서 맡는 커피 향도 너무 좋고요.
 
그 행위가 주는 안락함 때문에
집이나 서점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걸 좋아해요.
 
코케가 지혜 님에게 추천한 원두 : 르완다 미레레 (by 커피가게 동경)

균형감 있고 산뜻한 원두를 좋아해요. 먹고 맛있다고 느끼는 단순함을 좋아해요.

본 인터뷰는 <집으로 카페를 들인 Cafe-in 이야기> (서점 ver.)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Original Content by k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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