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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May 09. 2024

Since 2000, 달인 여장부가 끓여낸 폐가짬뽕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성송반점」

고창군은 전라북도 서남부에 자리 잡은 인구 6만의 작은 지방 도시에 불과하나, 이 땅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독특한 매력은 몇 마디 문장으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한 곳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고창읍성길

역사적으로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자리한 곳이고, 민중이 주체가 되어 사회개혁 의지를 처음으로 드러낸 전국구 혁명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민권(民權) 운동인 동학 혁명의 시발지이기도 하다.


생태학적으로는 국내 방문하는 철새의 핵심 서식지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고창 갯벌과 생물 다양성에 대해 배우며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운곡람사르습지를 품고 있다.

고창군 청보리밭 축제 (24. 4. 20 ~ 5. 12)

또한 봄이면 청보리와 유채꽃이, 가을에는 선운사의 꽃무릇이 장관을 이루는 데다 풍천장어와 복분자, 땅콩과 수박이 유명하여 사시사철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작은 거인'같은 매력을 가진 도시이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공부 삼아 떠나는 우리 가족의 지방 도시 여행은 보통 해당 지역의 박물관에 들러 역사적인 인물을 만나게 하고 이곳만의 문화와 관습에 대한 교육적인 경험을 「시각적」으로 쌓은 뒤 향토음식을 다루는 오래된 밥집에 들러  「미각」으로 지역을 체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 중 꼭 한 번은 방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노포 중국집에 들러 유년 시절 추억의 맛을 찾아다니곤 한다.

최근 간판을 세운 성송반점 전경

고창의 풍천 장어와 복분자를 맛보고, 다음날 상경하기 전 찾아간 곳은 고창 시내를 한참 벗어난 시골 마을인 성송면의 「성송반점」이다. 주중 평일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가긴 했어도 이 마을에는 사람이 과연 살고 있긴 하나 싶을 정도로 한적한데 파출소와 우체국, 그리고 작은 시골점빵 하나가 이 마을이 간직한 인프라의 전부이다.


조용한 이 마을에 활기가 찾아오는 시간은 마을회관 옆 허름한 중국집, 「성송반점」이 문을 여는 11시부터 폐점하는 16시까지일 뿐 그 이후 이 골목은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는다며 주방을 지키는 안주인께서 푸념하신다.

식당의 총주방장이자 안주인인 신문옥 사부

보통 중식 노포라고 하면 바깥어른이 주방에서 웤을 잡고, 안주인께서 홀을 담당하는데, 이 집은 반대로 안주인께서 주방을 보고 계신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2000년 고향으로 내려와 허름한 건물을 얻어 중화반점을 열었는데, 식당의 개업 동기 자체가 음식 솜씨가 좋으니 장사를 하면 돈을 벌겠다고 주변에서 권해서 시작하게 된 데다가 바깥어른께서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하니 안주인께서 모든 음식을 조리하신다.


번듯한 간판을 세우기 전 성송반점의 허름한 외관

텔레비전 어느 프로그램에 나온 식당의 외관이 어찌나 허름한지 호사가들은 이 집의 추천 메뉴를 「폐가짬뽕」이라 부르기도 한다.

성송반점의 인기 메뉴, 짬뽕

그릇에 쌓아 올린 음식의 양과 재료의 가짓수로 보면 과연 '전국구 짬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오징어와 갑오징어, 쭈꾸미, 홍합과 바지락, 호박 양파, 청양고추 등이 푸짐하게 들어간 데다 특이하게 물만두가 토핑되어있다. 짬뽕의 사전적 의미는 중국의 면(麵) 요리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뒤섞인 모양새'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성송반점의 짬뽕은 후자에 가깝다.


시골 마을에서 만나는 한국식 중식당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후한 인심을 반영하듯 과하게 뿌려진 참깨인데, 이 집은 참깨 대신 '참기름'을 사용하였다. 바로 이 대목이 호볼호 요인일 수 있는데 이러한 특징적인 요소는 이 집의 짬뽕을 '독창적'으로도 혹은 '당혹스럽게' 할 수 있을 듯싶다.

부추와 옥수수가 토핑된 성송반점의 울금짜장면

짬뽕을 보고 갔는데 오히려 더 매력적인 음식은 「짜장면」이다. 부추와 옥수수가 토핑으로 올라간 짜장 역시 참기름 꼬순내가 전반적인 맛을 지배하는데 의외로 춘장과 어울리기도 하고, 울금으로 반죽한 부드러운 식감의 면과 시너지도 참 좋다.


맛으로만 보자면 분명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집이나 아무것도 볼 게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오로지 이 식당의 음식을 맛보고자 하루 평균 4백여 명의 손님이 찾아온다면 앞서 설명한 고창군처럼 '작은 거인'같은 매력을 가진 중식당인 것은 분명하다.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푸짐하게 음식을 내주는 성송반점

입담 좋고 친절하시고 손 큰 안주인, 엄마를 도와 주방에서 묵묵히 일을 도와주는 아들, 파킨슨병으로 불편한 몸을 끌고 홀과 주문을 담당하시는 바깥어른이 만들어내는 따스한 가족애는 음식 자체가 주는 맛 이상의 뜨거운 울컥함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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