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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오찬 May 03. 2024

Since 1972, 파란 지붕 · 빨간 벽돌의 중국집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우강반점」

한반도에서 중식으로 이름난 도시를 꼽으라면 짜장면의 탄생지인 인천, 중식 만두의 성지인 부산, 짬뽕으로 이름난 곳이자 물짜장을 경험할 수 있는 군산 등이다. 중식으로 유명한 도시가 모두 근대 시기 외국 문물을 받아들였던 <개항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 (개항을 계기로 유입된 중식)

인천과 부산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개항장이 되었고, 군산 역시 1899년 일제 강점기 미곡항으로 개항되었더랬다.


개항장은 일제의 수탈이 이뤄진 전초 기지이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거점 지역이기도 했는데, 우리가 즐겨 먹는 중식 역시 근대 개항장 화교의 유입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식의 도시는 곧 개항장'이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최단 해상 교통로였던 산동반도와 당진의 거리

다만, 개항장도 아닌데 희한하게도 수십여 년 업력의 노포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당진>이다. 당진은 삼국시대부터 중국 당나라로 가는 항구도시였으며, 조류와 바람을 잘 만나면 이틀 만에 중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하니 중국과의 교류 측면에서는  오히려 인천과 부산보다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새벽녘 귀를 기울이면 산둥반도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을까?

당진 솔뫼성지의 김대건 신부상

실제 중국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의 유입 경로 역시 당진이라 솔뫼 성지와 신리 성지 등 초기 천주교 교인들의 순교지가 많은 것 역시 이 지역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생가 역시 우강반점이 소재한 당진시 우강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당진시 우강면에 소재한 우강반점

서울에서 출발해 서해대교를 건너 당진에 다다르면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우강반점에 도착하게 된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적갈색 타일을 외벽에 두르고, 하늘색으로 칠한 양철 지붕을 이고 있는 건물의 외관은 식당의 오래된 업력을 짐작케 한다.

올해로 일흔 중반을 넘긴 최종묵 사부가 운영하는 우강반점은 이 자리에서만 오십여 년을 버티고 있는 옛날 짜장면집이다.

우강반점의 간찌징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필자가 국민학생이던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가출한 꼬맹이들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제 발로 중국집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던 시절이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의 한 세대 앞만 하더라도 부모님의 최종 학력이 국민학교, 중학교 졸업인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니 그만큼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대였는데, 우강반점의 노(老) 사부는 그랬던 시절인 60년대부터 중국집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의 인생이 담긴 짜장면 한 그릇이 귀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가 주문한 것은 간짜장과 탕수육이다. 주문과 동시에 재료를 손질하는지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주방에서 들려오는 제트 엔진 같은 웤 소리가 경쾌하기만 하다.

물기없이 잘 담아낸 면과 식감을 살려내 질 볶은 간짜징 소스

간짜장은 전분기 없이 고열로 각종 재료를 볶아냈는데 익힘 정도가 매우 훌륭하다. 거기에 더해 분명 익숙한 「사자표 춘장」을 사용했음에도 이 집만의 비법이 따로 있는 모양인지 여타 중국집의 짜장면과 달리 거북한 단맛이 배제되어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강반점의 탕수육

탕수육 레시피도 재미있는데, 특이하게도 튀김 겉면에 계란옷을 입혀  튀겨내었다. 쫄깃한 식감의 돼지 등심과 부드러운 튀김옷 등이 케첩 소스와 어우러져 다른 중국집에서는 만나기 힘든 독창적인 맛을 구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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