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오찬 May 26. 2024

Since 1968, 무가 들어간 옛날짜장을 아시나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주로 256 「죽산분식」

최근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 바로 노중훈 작가의 「할매, 밥 됩니까 ; 2020년 중앙북스」이다. 노중훈 작가가 사랑한 골목 뒤꼍 할머니 식당에 관한 이야기인데 맛집 소개서라기보다는 정감 넘치는 방문을 기록한 에세이라고 봄이 마땅하다.

노중훈 작가와 그의 저서, 「할매, 밥 됩니까」

그는 "할머니 식당은 제게 우주"라는 표현을 책에서 사용했는데 내게 있어 노사부가 주방을 지키는 노포 중식당 역시 우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주방을 지키는 중식당의 노사부는 내게 늘 존경스러우면서도 애달픈 존재이다.

죽산분식의 최만복 사부 (84세, 71년 경력)

1960년대 중반부터 정부가 추진한 혼분식 장려 운동의 영향으로 중국음식점과 분식집 등이 외식 시장에 대거 등장했으니 1968년 안성시 죽산면에 개업하여 여전히 죽산분식 주방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80대 중반의 최만복 사부는 이제 앞으로 점점 더 뵙기 힘들 1세대 중식당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짜장면이 대중 음식으로 크게 사랑받다 보니 오히려 정부의 물가 중점 관리 품목으로 지정되어 한식당과 일식당에 비해 버는 돈도 상대적으로 적었을 테고, 식당마다 음식에 대한 편차가 크지 않으니 다른 분야 주방장과 비교해 사회적 인식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을 테고, 엄청난 화력에 맞서 평생 웤질을 하셨을 테니 장년 이후 대부분 관절염으로 크게 고생하는 것이 대한민국 노사부들이 지금껏 살아오신 불편한 현실이다.


죽산분식의 간짜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여전히 주방에 들어서는 노사부들의 업장은 흔해빠진 동네 중국집 짜장과 확연히 다른 음식을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죽산분식」의 간짜장이 바로 그러하다.


우리가 짜장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오해가 있으니..

춘장에 캐러멜 소스가 들어갔으니 맛이 달고, 영화식품의 사자표 춘장이 시장 점유율 80%를 점하고 있으니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맛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다.

쥬키니호박과 양파, 양배추 등을 넣고 볶아낸 간짜장

그러나 중식 마니아들은 알고 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고유의 맛을 내는 짜장면에 들어간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춘장을 볶는 기름만 해도 채소유인 식용유를 사용하는가, 동물성 유지인  돼지비계 기름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맛이 다르고, 웤질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재료의 식감이 달라진다. 


죽산분식의 짜장에는 조각무를 넣고 조리한다.

60여 년 업력의 이 집은 돼지비계에서 뽑아낸 유지에 대파를 넣어 잡내를 제거하고 풍미를 더한 기름을 사용하는 데다 다른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무」를 짜장 재료로 쓰는데 이렇게까지 세세한 부분이 바로 팔순을 훌쩍 넘긴 노사부가 지키는 원칙이자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맛의 비법이다.


이제는  「무」를 사용하는 식당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본래 1960년대 무말랭이는 짜장면의 주요 재료 중 하나였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보관이 용이하고 가격이 저렴한 데다 물에 불렸다가 볶아서 사용하면 돼지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선사했다.


먹거리가 흔해진 지금 과거와 같은 용도로 무를 사용하기엔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가는 「비효율」일 텐데 죽산분식의 노사부는 전통과 맛을 위해 기꺼이 그 비효율을 감수한다.


야채와 춘장 본연의 맛이 일품인 죽산분식의 간짜장

첨가제 사용을 최소화했는지 쫄깃함보다는 부드러운 식감의 면, 웤에서 방금 볶아내어 먹음직스럽게 스뎅 그릇에 담아준 간짜장 소스를 받자마자 괜히 행복감이 차올랐다. 상상했던 대로 여타 식당의 달디 단 감칠맛은 배제되어 있었고 그 자리를 식감을 살려 볶아낸 야채 본연의 맛과 춘장의 구수함이 차지했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옛날 볶음밥

정말 정말 보고 싶었던 돼지고기가 들어간 옛날 볶음밥도 미치도록 반갑다. 기름을 적게 쓴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볶아내어 볶음밥을 들어 올려도 그릇에 기름기 하나 보이지 않는 데다 밥알 하나하나 코팅되어 입안에서 노니는 식감이 참 행복하다.


죽산분식의 2대 주방장, 최병학 사부

최만복 사부(1대)는 팔십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호령하고 있지만, 이제 주방에서 웤과 까오기를 들고 불에 맞서는 실질적인 주인장은 노사부의 아드님이신 최병학 사부(2대)이다.


참 다행이다.

죽산분식의 전통과 원칙, 맛이 그대로 대물림되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Since 1979, 물짜장을 아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