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종교(宗敎)
about story / 에세이
니체가 '신은 죽었다 (Gott ist tot)'라고 했다. 그는 신에게 복종하고자 하는 목표를 상실하게 한 인간은, 이제 어떤 목표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를 얘기해봐야 한다고 했다. 신에게 복종한 적도 없는 무신론자인 나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주변에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을 보면, 대부분 얼굴에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사회봉사에 헌신하며, 국가와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 그런 그들이 부러워서 종교를 가지고 싶은 적도 많았다. 가끔 친구들의 권유로 종교의식에 참여도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무신론자인 나는 교리에는 관심이 없다. 다양한 종교를 통해서 자기 성찰(自己省察)과 사회 참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해외출장이나 여행 중에 주로 방문하는 곳이 종교시설이다. 그곳은 정신적인 장소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나의 작은 정성을 남겨 놓고 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머니가 불교 신자로 어릴 적부터 절에 따라다녔다. 어머니가 법당에서 1,080배를 하는 동안 옆에서 ‘참선’을 했다. 스님이 가르쳐준 자세를 취하고 조용히 앉아서 눈을 반쯤 감고, 무념무상(無念無想) 한 상태에 들어서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등산이나 여행 중에 절이 있으면 들어가서 간단한 예불(禮佛)을 올린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가 미션스쿨(Mission School)이라서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 및 성경 시간이 있었다. 예배 시간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싶어서 참석했고, 성경 시간은 선생님의 허락으로 자율 학습을 했다. 종교의 지유에 대해서 배려해 준 학교와 성경 선생님께 아직도 감사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이슬람국가에서 근무할 때, 가끔 금요일(이슬람국가는 금요일에 대 예배를 한다)에 사원으로 간다. 그곳에 앉아있으면 수 없이 지나가는 사자(死者)들의 관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알라신에게 먼저 간 것을 생자(生者)들이 기뻐하는 모습들 보면서 ‘인샬라(in shā΄ Allāh)’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년 시기에 방황하면서, 항상 ‘나는 왜?’라는 저주 속에서 살다가, 친구에게 받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저서 ‘너 자신을 사랑하라’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는 ‘나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모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무신론자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