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억 여행을 한다. / 에세이
좋아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그것도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동안 미루었던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로 떠났다. 최종 목적지는 마이애미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미국 최남단 바다의 섬들로 이어져 있는 끝, 쿠바를 멀리서 볼 수 있는 ‘키웨스트’였다.
마이애미에 도착해서 헤밍웨이가 7년간 살면서 집필했고, 이번 여행에서 빠져 아쉬웠던, 쿠바를 느끼기 위해 쿠바촌에 있는 전통 음식점을 찾았다. 그곳에서 ‘추로스’와‘브로체타’를 안주로 ‘부카네로’를 마시며 밤늦게까지 쿠바를 만끽했다.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까지는 3시간 이상 거리였기에 아침 일찍 서둘렀다. 플로리다 반도에서 US-1번 국도로 연결되어 섬과 섬 사이로 이어진 ‘세븐 마일 브리지’를 통과하는 고속도로는 미국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차는 마이애미를 벗어나 바다만 보이는 길을 달렸다.
키웨스트는 미국 최남단에 자리한 관광지다. 키(Key)는 섬을 뜻하며, 수많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길을 운전을 하며 달리는 기분은 무엇으로도 형언하기가 어렵다. 그 많은 다리들 중에 영화에도 나왔던 유명한 다리도 보였다. 지금은 짤록한 구다리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위를 한 줄의 도로를 따라, 때로는 다리를 건너 양쪽의 수평선을 가로 지으며 달렸다. 하늘에 펼쳐져 있는 뭉게구름은 달리는 차의 속도를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때로는 잠시 쉬어가라고 손짓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청새치를 잡았던, 멕시코만에서 저 멀리 쿠바가 보일 듯했다. 헤밍웨이가 즐겨 먹었던 ‘모이또’를 한잔 하면 어떨까 하는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다 위로 펄쩍거리는 물고기들이 부르고 있다.
작은 섬들을 지나며 도로가에는 많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나무들은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방향으로 쓰러져있는 광경이 측은하게 다가왔다. 현지에 도착하기 얼마 전, 플로리다 반도를 통과하는 허리케인의 강타로 키웨스트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접했던 그 상황이 눈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다리를 지나자 키웨스트의 팻말이 선명하게 보였다. 키웨스트 다운타운은 걱정과는 달리 지나오면서 보았던 폐허의 모습은 평화로움으로 다가왔다. 오는 동안 느꼈던 염려와 피로가 한 방에 훅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중심가를 지나면서 멋진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닷가 주변에는 별장과 요트들이 즐비하게 채워져 있었다. 파스텔톤의 집들이 바다와 조화를 이루며,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쿠바, 바하마, 미국의 여러 문화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분위기였다.
헤밍웨이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읽었던 그의 소설들이 나이가 들면서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동병상련(同病相憐)때문이었으리라. 제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상실감과 정신적 소외를 느낀 젊은 세대를 그린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6.25 전쟁을 겪었던 한국 젊은이들의 그 당시 모습을 보았다. 이 먼 곳까지 온 목적은 바로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에서 그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살던 집은 허리케인의 여파로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매표소 직원들이 졸다 방문객을 보자 반갑게 맞이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현관과 정원에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에 익숙한 듯 태연스럽게 손님을 맞이했다.
이층 서재에는 그가 사용하던 타이프라이터가 그대로 책상 위에 놓여있었다. 이곳에서 ‘노인과 바다’를 마지막으로 집필했던 곳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거실에는 배와 낚시에 관련된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그가 낚시대회에 나가 우승한 사진 속에 그의 모습이 당당해 보여, 그가 겪었던 잃어버린 세대의 상실감은 보이지 않았다. 정원 한쪽에는 그가 사랑했던 고양이들의 이름이 기록된 무덤이 있었다. 저택 뒤의 정원 옆에는 넓은 수영장까지 갖춘 아름다운 이곳이 헤밍웨이가 살았던 바로 그 마지막 집이었다.
키웨스트에는 헤밍웨이가 7년간 살면서 집필활동을 했던 쿠바를 멀리서 볼 수 있는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Southernmost Point'가 있다. 헤밍웨이가 쿠바 혁명으로 추방당한 후, 돌아가지 못한 그곳을 바라보던 장소에는 큰 시멘트 말뚝에 노란색으로 ‘90 miles to Cuba’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바로 길 옆 바닥에 희미하게 쓰여 있는 글이 보였다
Ninety Miles
Oh, Havana
Coffee-colored dreams of rainy streets
Boys playing with balls
La Playa Santa Maria
If only I could get to you
And your people could come to me
- Jennifer Grafiada -
나는 키웨스트 중심가에 있는 헤밍웨이가 자주 들렸다는 유명한 펍, ‘Sloppy Joe`s Bar’로 갔다. 식당 안은 상당히 넓었고, 내부 사면에는 헤밍웨이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실내는 엔틱 분위기로 장식되어 있어 그 당시로 돌아 간 느낌이 들었다. 낚시를 좋아했던 그가 직접 잡은 큰 물고기들을 들어 자랑스럽게 웃는 사진 속 그의 모습을 보면서, ‘노인과 바다’ 같은 대작이 탄생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끌벅적한 바에서 젊은 바텐더와 웨이트리스가 잡담을 나누다 손님 눈과 마주치자,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녀의 가무잡잡한 피부와 매혹적인 분위기 속에서 쿠바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오리지널 슬로피 샌드위치와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던 ‘모히또’한 잔을 주문했다.
혜밍웨이를 찾아 떠났던 여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가 남긴 흔적만큼이나 가볼 곳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킬리만자로가 있는 케냐, 내전의 포화 속에 있었던 스페인, 이번에 가보지 못한 쿠바로 다시 떠날 것이다. 자살로 끝난 그의 생애가 너무 아쉬워서 더욱 그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