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옥션에서 근무할 때, 백남준의 작품을 보다 전문적으로 다루는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 작품을 조립하고 설치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작품을 구매한 고객을 위해 설치 설명서를 제작하는 일도 담당했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고, 백남준의 작품 메커니즘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특히, 내가 원래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오디오 시스템의 구조가 백남준의 작품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그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백남준이 음악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음악을 전공했으며, 졸업 논문 역시 쇤베르크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자연스럽게 존 케이지나 플럭서스(Fluxus) 운동과 가까워졌고, 초기에는 음악적 퍼포먼스를 주된 표현 방식으로 사용했다.
이후 그의 작품에서 매체가 음악에서 비디오로 변화했지만, 비디오 신호를 여러 개의 TV 브라운관에 분배하고 출력하는 방식은 오디오 시스템의 메커니즘과 유사했다. 어제 이종기 작가님과 오디오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디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인풋 신호를 스피커로 출력하는지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오디오 시스템을 살펴보면, 소리는 플레이어(턴테이블, CD 플레이어 등)에서 인풋 신호로 입력된다. 이 신호는 앰프를 통해 증폭되고, 최종적으로 스피커에서 출력된다. 이 과정에서 보다 정밀한 사운드 구현을 위해 고음, 중음, 저음과 같은 음역대로 소리를 나누어 개별적인 스피커에서 출력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분리된 신호 처리는 소리의 퀄리티를 높이고, 보다 풍부한 사운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시스템도 이와 유사한 방식을 따른다. 하나의 비디오 소스를 여러 개의 모니터에 출력하기 위해, 비디오 신호는 증폭기를 거쳐 분배된다. 이 과정에서 증폭기(앰프)가 신호를 증폭하는 역할을 하며, 다수의 모니터는 마치 오디오의 개별 스피커처럼 신호를 나누어 출력하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오디오에서 음역대를 나누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작가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의 학력과 백그라운드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백남준의 경우, 음악적 사고방식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의 비디오 아트 메커니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단순히 시각적인 미디어 아트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음악적 리듬과 신호 처리 방식이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백남준의 작품을 감상할 때, 단순히 TV 화면을 나열한 형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가 구축한 시스템이 어떻게 신호를 분배하고 조율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음악적 사고와 어떤 연결성을 가지는지를 함께 고려해보는 것도 유의미한 접근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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