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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고래 Apr 03. 2023

시간에 대하여

창백한 푸르름과 농악의 가을의 낙엽색이 섞여있는 색

 시간에 대하여 마음에 변화가 왔다.  예전에는 시, 분을 나누어 쓰면서 알차게 채워간다는 의미였다면 지금은 그냥 흘려보낸다는 느낌, 그 속에서 조금은 생경하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는 이마에 실금처럼 가는 주름이 생겼다. 웃을 때는 양쪽 눈 가장자리에 내 천자((川))가 가로로 새겨졌다. 목에는 깊은 주름이 2줄이나 확연히 드러났다. 팽팽하던 볼이 조금씩 꺼져가며 처지고 늘어지는 중이다. 몸의 여기저기가 고장 나기 시작했고 챙겨 먹는 약의 가짓수도 자꾸 늘어났다. 낯설다는 말이 딱 어울릴 만한 느낌의 세월에 나이 듦을 알아차렸다.      


 퇴직하면 마냥 자유롭고 편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동안 몸에 익은 습성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었다. 한동안 마트에서 이것저것 음식 재료를 사다가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처음에는 여유 있게 집밥을 해먹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경제적인 이유로 망설이며 사지 못한 것들을 눈에 보이는 데로 사들이며 한풀이를 한 것이었다. 이런 모습이 미련 맞게 아팠다.

허전해서 그랬다. 그것이 허전함인지 알기까지 나는 열심히 마트를 오가며 냉장고를 채우고 있었다. 다 먹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미련을 떨었다. 그 후에도 한가한 일상을 즐기지 못하고 소소한 일거리들을 만들어냈다.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하루에 주어진 24시간에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려고 했다. 처음에는 뭉텅뭉텅 비어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혼자서 뒤처진 느낌,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퇴사하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책상 서랍에 써놓은 사표를 일 년에 한두 번쯤 만지작거리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어쩌자고 이런 결정을 했을까, 60세까지는 다녔어야 했던 데라며 너무 이른 퇴사를 한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안정되지 않은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구르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속도만큼이나 걱정도 늘어났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불안했다. 가만히 쉬지를 못하는 것. 스스로 일 중독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일시적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독하게 겪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마치 인생의 한 축을 돌아보며 긍정하게 되기까지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를 돌아온 느낌이었다.  

   

우선은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을 비워보았다. 타인이 살아가는 속도와 내가 살아가는 속도를 닮아보려 하지 않기로 했다. 조급한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트렸다. 그러다 보니 삶의 여유가 무엇인지를, 어떻게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기준이 생겨났다. 평소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시작해 보지 못했던 것들에게도 조금씩 시간을 나누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영역으로만 생각했던 그림을 겁 없이 시작했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이젤 앞에 앉아있는 그 시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연필 소묘로 시작해서 수채화, 아크릴화까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온전히 그 시간에 몰입하는 재미를 느낄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꼬박 석 달이라는 시간을 들여 완성한 액자를 벽에 걸어놓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 시간이 느리게 우려낸 홍차의 쌉싸름한 향처럼 은은했다. 그림의 완성도가 부족해도, 어설픈 구석이 있어도 마음에 미련이 남지 않았다.   

    

 예전에는 책을 보는 것에만 집중했었는데 이제는 리뷰하는 시간도 생겼다. 산책하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났다. 평지를 걷는 것에서 야트막한 산을 힘들지 않게 넘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에는 더 많은 시간을 쓰고, 불편한 것에는 적은 시간을 쓰고, 혹은 비껴가기도 하고, 가끔 멍하니 지내는 시간에 쌓이는 불안감도 옅어졌다.

이제는 시간의 무게를 버겁게 여기지 않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지만, 한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조차 추억이 되어 남은 시간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특별함이라 이름 지어 놓지 않고 쫓기지 않는 일상의 여유를 느끼다 보니 한동안 잊고 살았던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가만히 누워 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쫓아 시선을 옮겨보는 시간, 천천히 산책하며 달차근한 낙엽 냄새를 즐기는 시간, 밤새도록 영화를 보고, 아침 해가 기울어 저무는 시간이 될 때까지 늦잠을 자도 되는 시간, 가자미회가 맛있다는 친구 말에 망설임 없이 기차 타고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시간은 퇴직하고 난 후에 여유롭게 생겨난 시간이었다.  

    

 우연히 “처지에 맞게 늙어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나보다 더 나이 든 어른의 말씀을 들었던 날, “그래 맞다, 인생을 잘 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얼굴 붉히는 일은 하지 말고 곱게 나이 들어가자. 지금의 이런 시간이 지루해질 때쯤 내 마음은 또 변하겠지, 인생이 뭐 별것 있겠는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음에 부대끼지 않고 순응하며 살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 오겠지. 그때가 되면 지금껏 산처럼 쌓아놓고 지냈던 시간의 더미를 아쉬워하지는 말자. 그저 고맙게 잘 쓰고 간다고 무겁지 않게 가벼운 인사라도 건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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