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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Aug 26. 2021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것에 관하여

형법을 공부하다가 살인죄 관한 어느 판례를 읽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둘은 전날 밤을 모텔에서 함께 보내고 나오는 길이었다.—구체적으로 어떤 사이인지는 모름—차 안에서 남자는 한 손으로만 핸들을 찹은 채 운전했다. 그리곤 다른 한 손으로 여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여자는 가만히 있다가 차의 창문을 내렸다. 그리곤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도로 위로 떨어진 여자는 즉시 사망했다.


 사건에 관하여 남자에게 과연 강간치사 또는 자살방조죄가 적용되느냐가 문제였다 살인죄냐 싶겠지만, 피해자가 강간범을 피하려 모텔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잘못 뛰어내려 피해자가 사망할 경우, 강간범에게 강간치사죄가 적용되기도  사건의 결론은 무죄다. 남자가 여자의 행동을 예측할  없었고 전날밤은 추정상 강간이 아닌걸로 판명사건 직후 남자는 매우 당황해했으므로 짐작, 남자는 어떤 죄목으로도 기소당하지 않은 것이다.

 

이 판례를 처음 읽고서는 조금 멈칫했다. 고작 한 문단으로 정리되는 심플한 사건이지만, 다른 어떤 사건보다 더욱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여성은 어째서 갑자기, 차창 밖으로 몸을 던졌을까. 그 남자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전날 밤에 둘이 어떤 대화를 한 걸까. 실은 허벅지를 쓰다듬은 남자의 행동은 연인 사이라면 문제 될 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녀가 순간 자살충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최근에 직장 동료로부터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겠다."라는 표현을 들었다. 동료가 애인과 싸웠을 때를 회상하며 말한 것이다.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하던 와중이었기에 당시엔 그 표현에 대해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집에 돌아와서부터 전에 공부했던 위 판례가 그 표현과 디졸브 되어 떠올랐다. 오랜만에 떠오른 이 판례는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공부했던 그때. 내가 판례를 처음 읽고서 멈칫한 이유도 지금은 알 것 같다. 판례 속 여성이 지닌, 그 어떤 무언가가—그것이 사랑이던, 자기혐오던, 분노이던, 희열이든 간에—그녀에게 몸을 던지는 용기를 쥐어줄 만큼 파괴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감히 내가 겪었던 것일 수도, 혹은 앞으로 겪을 수도 있겠다는 그런 직감 때문에. 멈칫했던 것 같다.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저 <왜 창밖으로 몸을 던졌을까>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오해는 하지 말기를. 나는 자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 우울한 이야기는 나도 싫다. 그저 내가 말하려는 건,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픈 충동에 사로잡히는 그 찰나의 '무엇'이다. 그의 손길이 허벅지에 닿았을 때의 그녀가 느꼈을 기분. 조용히 창을 내리는 버튼을 지그시 누르며 그녀가 했을 생각. 내려진 창 너머로 불어오는 도로 위 거친 바람을 쐬던 그 순간. 그리고 안전벨트를 풀고서 빠르게 몸을 던진 그때. 그녀가 바라본 건 무엇이었을지.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충동에 사로잡히는 건, 어쩌면 그 충동을 주는 원인에, 내 온몸을 걸고 있다는 증명일 수도 있다. 만약 그녀가 그를 사랑했다면, 그러나 그는 그녀를 가볍게 생각했다면. 그녀는 온몸을 내던진 채 그를 사랑했던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그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그를 가볍게 생각했다면, 그녀가 온몸을 내던진 채 버리려 한 건 강렬한 수치심일 수도 있다. 또는 그녀가 뛰어내린 건 전혀 그와는 관련 없는 차 밖 다른 무언가였을 수도 있다.


그녀의 죽음이 그녀에겐 자기혐오에 빠진 채 비관적으로 생을 마감한 자살이 아닌, 어떠한 희열이었을 수도 있다. 무언가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희열.


그래서 나도 가끔은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죽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저 창밖으로 몸을 던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거주하는 그 공간을 벗어나고픈 충동일까? 그 공간 너머에 있는 거대한 인간관계의 벽이 무서워서일까? 아니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을 뫼비우스 띠 같은 일상이 싫어서일까? 오늘도 실은 창밖을 바라보며 여러 번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출근을 할 때. 오후에 정신없이 뛰어다닐 때. 그리고 집에 와서 저녁노을을 바라볼 때. 나는 내가 온몸을 걸고 있는 무언가가 아예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텅 비어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렇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결코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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